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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브랜딩에 대해서

[2013.01] 브랜드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기억시켜라

kimdirector 2020. 12. 28. 15:58 

음성검색 보편화된 시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려워

 

예전에는 아파트 이름에 회사 명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요즘은 '자이' '래미안' '푸르지오' 등 별도의 브랜드명을 붙인다. 포스코건설이 지은 아파트 이름은 '더샾(the #)'이다. '삶의 질을 반올림' 한다는 의미에서 음악 부호(#)를 사용한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한 조사에 의하면 '더샾' 거주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지만(전체 아파트 중 3위),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훨씬 못 미친다(7위)는 것이다. 포스코의 후광까지 생각한다면 저조한 결과다. 이유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아파트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택시 기사들도 "더샾에 가요"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기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보다 쉽게 기억시킬 수 있을까?

 

콘라드(Conrad)는 머릿속에 저장되는 정보의 기억 형태를 연구한 심리학자다. 그는 주어진 정보가 일단 단기 기억에 청각 코드(acoustic code)로 저장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기억을 되살릴 때 어떠한 실수를 하는지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콘라드는 사람들에게 여러 알파벳을 외우게 한 뒤 이를 기억할 때 어떤 오류가 생기는지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사람들이 M을 N으로, S를 F로, B를 P로, V를 B로 혼동하여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가장 흔했다. 정보는 일단 소리로 기억되는데, 발음이 유사한 다른 스펠링으로 혼동을 일으켜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piano-car-apple'의 세 단어를 사람들에게 차례로 보여주고 외우라고 하면 'piano-bar-apple'로 잘못 외우는 사람들이 있다. car를 외운다는 것이 발음이 비슷한 bar로 잘못 기억한 것이다. 정보가 저장될 때 발음에 의해 실수가 생긴다는 사실과 그 밖의 증거들을 보면 정보는 일단 소리로 기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눈으로 보더라도 머릿속에서는 이를 즉각 '삼성'이라는 소리로 전환해 인식한다. 그러니까 소리로 얼른 전환되지 않는 시각 정보(브랜드)는 소비자의 두뇌에 기억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 글자가 아니라 소리로 먼저 말을 배운다. 같은 이치로 브랜드는 눈이 아니라 귀로 먼저 기억시켜야 한다.

 

기업들은 평범하지 않은 브랜드를 만들려고 고심하면서 외래어를 사용하거나 복잡한 스펠링의 브랜드명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발음하기 어려워 글자가 곧바로 소리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브랜드명은 소비자들의 단기 기억에 저장될 수 없다.

 

고급 와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자들에게 좋아하는 와인 브랜드를 물으면, 흔히 '딸보(Talbot)'나 '끼안띠(Chianti)' 등을 거명한다. 탁월하게 맛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쉽게 기억되는 브랜드 음이기 때문이다. '샤또(Chateau)'로 시작되는 프랑스 와인 브랜드는 발음이 길고 어려워 잘 기억하지 못한다.

 

광고에서는 브랜드의 발음을 기억시키려는 시도를 흔히 보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하는 남편을 불러 세워 "화·이·투·벤"이라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약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든지, "일요일엔 역시 짜, 짜, 짜파게티~"라고 외치는 것이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또한 짧은 멜로디나 경쾌한 효과음을 이용하는 징글(jingle)의 반복도 브랜드의 발음을 기억시키는 한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브랜드명은 눈으로 보아서는 외국인이 얼른 발음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Hyundai(현대)'를 '휸대이', '히연다이' 등 각양각색으로 발음한다는 것은 외국인과 접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다수의 브랜드명이 영어로 표기했을 때 발음하기 어렵다.

 

반면에 일본어는 받침이 거의 없어 브랜드의 발음이 비교적 간단하다. 야마하(Yamaha), 도요타(Toyota), 스즈키(Suzuki)와 같은 일본식 브랜드명을 그대로 영문자로 옮겨도 발음에 무리가 없다. 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면 정보가 단기 기억에 저장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 기업은 브랜드명의 설정에서부터 벌써 일본 기업들보다 불리한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음성 검색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있는 모바일 시대에 브랜드의 발음을 정비하는 일은 시급하다. 외국인이 우리 브랜드의 정확한 발음을 몰라 검색을 쉽게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

 

일본의 닷선(Datsun) 자동차는 미국시장 개척 초기에 발음이 불편하다는 점을 고려해 닛산(Nissan·日産)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그 결과 브랜드를 쉽게 기억시켰을 뿐 아니라 호감도도 높이게 되었다. 'Sunkyong(선경)'도 'Sunk-yong'으로 끊어 읽는 경우가 많아 오해의 소지가 있었는데(sunk young으로 발음하면 초기에 침몰했다는 의미가 되므로), 'SK'로 바꿔 다행이다.

 

물론 읽기 쉽지 않은 스펠링의 브랜드라도 광고를 많이 해 발음을 억지로라도 학습시키면 그 특이함 때문에 기억에 더 잘 남길 수 있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니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단계에 있는 기업이라면 발음하기 쉬운 브랜드로 바꾸어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소니(Sony)가 전 세계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데는 쉬운 발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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