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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디자이너라면..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kimdirector 2021. 1. 2. 17:13 

굿디자인은 굿 비즈니스다

Good Design Is Good Business
토머스 J. 왓슨 주니어 :: IBM CEO Thomas J. Watson Jr.(1914-1993)


굿 디자인은 없다. 다만 굿 디자인에 대한 신화가 있을 뿐. '굿디자인은 굿비즈니스다'라는 명제속에 숨은 의미를 푸코의 시각으로 짚어나간다면 그것이 가진 이데올로기성과 폭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지향적인, 그리고 판매 지향적인 주체들에게 디자인은 권력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수단이자 성공적인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 과시적 소비 수단으로 자리해왔다. 특히 굿 디자인이 제도화되는 과정은 굿디자인이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디자인의 가치측정이 기준이 비즈니스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굿 디자인의 신화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굿 디자인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꾸는 행위의 주체이기를 꿈꾸지 않는다. 자본주의 주체와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했을 뿐.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

Form Follows Emotion
하르트무트 에슬링어 Hartmut Esslinger (1944-)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에 대한 도전을 나타내는 이 명제는 에슬링어가 1982년에 애플컴퓨터의 디자인 개발을 계기로 설립한 프로그 디자인의 성격을 특징짓고자 한 말이다. 19세기의 미국 조각가 호레이쇼 그리너프로 거슬러 올라가 국제양식에서 정점을 이루는 기능주의적 형태의 오랜 역사를 상기해보면, 에슬링어의 이 명제는 기능주의에 대한 그야말로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다. 에슬링어는 형태오 기능이 맺는 관계에서 기능을 이탈시키고 이를 가정으로 대체하였다. 물론 그는 그 감정이 어떤 것임을 밝히진 않았지만 감정 또한 형태가 나타내는 기능임을 지적했다. 결국 에슬링어의 명제는 오늘날에 서구디자인의 다원주의 경향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기능주의의 경직성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I Shop, therefore I Am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 (1945-)

바바라크루거는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하여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神인 物神에 대한 현대인의 숭배를 풍자하였다. 흔히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이며 취향이야 말로 가장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기실은 사회 배경과 문화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가장 사회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시각적 취향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의 역사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표출하고자 하고 디자인은 이를 대변한다. 여기서 디자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기호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는 소비자의 능동성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생각있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더 중요한것 같다.

 

디자이너의 죽음

Designer's Death
에덤 리차드슨 Adam Richardson (1925-1998)

프로그디자인의 디자이너 애덤 리차드슨은 롱랑 바르트의 '저자의죽음'이라는 글을 패러디하여 디자이너의 죽음을 말한다. 사용자들의 '디자인의 형태'를 제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에서 디자인의 결과물의 형태가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해석되지 않을 경우 그 디자인에 디자이너의 모습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디자이너의 죽음이 이루어진다. 또 다른 죽음은 디자이너가 '기능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소외'되고 물건 생산에 대해 단지 그 기능을 형태로 포장하는 역할만 하는 데에서 온다. 리차드슨은 첫번째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꿈꾼다면 사용자와 제품의 상관관계를 밝힐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이론'을 찾아야 하며, 두번째 죽음에서 깨어나길 원한다면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결정하는 디자인의 기능에 대해 '근본적이고 도덕적인 질문'을 제기해야 한닥 주장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루이스 설리번 Louis Hennry Sullivan (1856-1924)

형태가 귀족들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화려해질 수록 거기에 따르는 비용은 높아진다. 산업혁명 전 시대는 장식의 시대였고, 구조적인 형태는 장식에 가려지고 부수적인 것이 되었다. 산업혀경 이후 철강의 대량생산, 엘리베이터의 발명, 도시로의 인구 집중화는 고층건물의 탄생을 낳았다. 비즈니스를 제대로 완수하기 위한 도구로서 고층건물은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구조를 요구했다. 이에따라 장식이 사라지고 순수한 구조, 기능적 형태가 전면에 부각되었다. 뉴욕, 시카고와 같은 자본이 축적되는 경제중심 도시는 이러한 고층건물의 경연장이 되었다. 시카고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잘 읽어냈다. 그가 말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는 현대 건축 디자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가장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적을수록 많다

Less is More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

자본주의의 엄청난 승리에 따라 새로운 시대를 연 브루주아 계층은 아직 그들의 미학언어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장식들을 재연하고 절충하는 역사주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바우하우스의 이상을 만들었으나 히털러 정권에 의해 미국으로 피신한 모더니즘의 이상주의자들은 미국의 자본가들이 진정으로 원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손에 쥐어줄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정신과 이상을 표현해준 가장 대표적인 건축가다. 그는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철골과 커튼월, 완전한 박스형으로 대변되는 고층건물을 창조했다. 이후 박스형의 커튼월 건물은 현대 자본주의의 신전이 되었고, 성공한 전세계 기업 건물의 표준형이 되었다. 적을수록 많다 는 이러한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과 단순하고 효율적인 모던 디자인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적을수록 지루하다 라는 말을 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권좌에 오를 때까지 그 위세는 꺾일 줄 몰랐다.

 

타이포그래피는 유리잔과 같아야한다

The Crystal Goblet or Printing Should Be Invisible
비어트리스 워드 Beatrice Warde (1900-1969)

모더니즘은 건축과 일상용품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도 독자들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타이포그래피의 모더니즘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타이포그래피는 유리잔과 같아야 한다는 명제는 유리잔이 그 속에 담긴 와인의 아르다운 색과 맛을 잘 드러내기 위해 투명해져야 하는 것처럼 타이포그래피 역시 장식적이어서도,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유럽으 ㅣ타이포그래피가 객관성과 명료성보다는 주관성과 표현성을 중시하는 아르누보의 지배를 받았다면, 20세기의 타이포그래피는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독자에게 내용을 전달하는데 충실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Design for the Real World
빅터 파파넥 Victor Papanek (1925-1998)

빅터 파파넥의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원제목은 '현실세계를 위한 디자인'이다. 번역서의 제목이 푸기는 감성적인 인상 때문인지 국내에서 오랫동안 필독서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소비주의가 팽배해 있던 1970년대에 불평등한 분배와 환경오염 등의 현상에 대해 디자이너의 윤리의식을 강조한 이 책에 대해 휴머니즘 적인 시각만 강조한채 자기반성없이 감성적 구호에 매달리는 자세는 위험하다. 현실세계의 문제가 정말 디자인으로 해겨로딜까? 제대로 된, 쓸만한 수준의 디자이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서 새로운 쓰레기를 만드는 오류를 피하는 것 만으로도 대단할 일일지 모른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이 요구한 수준이 정말 현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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