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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읽은 것에 대해서

'황산' TV 리얼리티 쇼를 통해서 미디어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

kimdirector 2023. 6. 28. 08:02 

 

 

 

황산

Acide sulfurique

 

저 아멜리 노통브 · 역 이상해 · 문학세계사 · 2015.07.10 · 프랑스소설

 

독서기간 : 2023.06.23 ~ 06.26 · 3시간 19분

 

 

 

 


 

 

 

 

지금까지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중에서 조금은 아니 많이 결이 다른 소설일 것으로 생각된다. ‘황산’은 아멜리 노통브의 14번째 소설이기도 하지만, 출간 당시에는 혹평도 많이 받은 소설이기도 한 작품이다. 아멜리 노통브를 향해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고 잔인할 정도의 비평들을 늘어놓았다. “매년 한 권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에서 이제는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부터 해서 “황산은 졸작이다” 까지 평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아멜리 노통브는 이 소설을 출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창조가 이루어진 다음 신의 임무는 뭐였더라? 그것은 아마도 책이 출간된 다음 작가의 임무와 유사할 것이다. 자신의 텍스트를 공개적으로 사랑하고, 칭찬, 야유,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것, 비록 그들이 옳다 하더라도 작품을 바꿀 수 없는데도 꼬치꼬치 작품의 결점을 지적하는 독자들과 맞서는 것. 작품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멜리 노통브는 프랑스가 낳은 천재 소설가로 유명하고, 그가 내놓은 모든 소설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대중들은 아멜리 노통브에게 높은 기대치가 있었던 탓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내가 읽은 ‘황산’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중에서 가장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미없는 또는 재미있는 식의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소설로 보여진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다시 표지의 제목을 보았을 때, ‘황산’이라는 글자가 소설 속의 내용과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황산’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일반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서 집단수용소라는 곳에 보내지게 된다. 집단수용소는 2차 세계대전에서 있었던 유대인들을 수용하는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한 방송사가 리얼리티 쇼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국에 생방송된다. 그리고 집단수용소에 보내진 사람들은 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이름 대신 불리게 되고, 포로 생활을 시작하며 카포라고 하는 관리인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폭행을 당하며, 매일매일을 힘든 노동을 하며 힘겨운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매일 아침에는 사람들 중에서 적응을 못하는 부적격 포로들을 골라 처형을 한다. 시청률은 매 회를 거듭할수록 사상 최대치의 시청률을 경신하게 되지만, 시청률이 정점에 이르자 시청자들이 직접 처형시킬 포로를 투표하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

 

극 중에서 주목할 만한 주인공이 있다. 등록번호 CKZ 114로 불리며 이름은 ‘파노니크’라는 여대생은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집단수용소에 끌려왔고, 카포라고 하는 관리인들에게 저항하며, 포로들에게는 구원자가 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카포라고 하는 관리인 중에서 유독 파노니크를 혹독하게 다루는 즈데나 카포가 있다. 즈데나도 일반 사람으로 집단수용소에 자원하게 되고 시청자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시청률에 기여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결국 파노니크에 동화되어 간다. 즈데나 카포는 파노니크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는데, 파노니크와는 동성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극의 흐름은 대부분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황산’을 읽으면서 느낀 충격적인 부분은 집단수용소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이다. 집단수용소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또한, 리얼리티 쇼를 바라보며 반감을 가지게 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물들어 가며, 더욱 자극적인 것들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노니크는 급기야 카메라를 응시하며 “시청자들이여, TV를 끄십시오. 가장 큰 죄인은 바로 당신들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시청률만 부추기는 꼴이 된다. 결국 모두는 TV에 노예가 되어, 안 보면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안 보면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은 현재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결국, 파노니크와 즈데나 카포의 힘으로 포로 모두는 집단수용소에서 빠져나오게 되지만, 과연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암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미디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들에게도 ‘황산’이 가지는 의미는 조금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다. 건강한 국민이 건강한 언론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황산
25세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천재의 탄생이라는 프랑스 비평계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거머쥐었던 아멜리 노통브의 열네 번째 소설. 사람들을 집단 수용소에 강제 이주시키는 리얼리티 쇼를 통해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며 작가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뛰어난 대화감각으로 버무려내고 있다. 시청률이 지상과제인 한 방송사가 '집단 수용소'라는 리얼리티 쇼를 기획한다.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된 나치 수용소를 재현해놓고 선량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여 등록번호를 새기고 수감시킨다. 그리고 가혹한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포로들을 골라 처형한다. 첫 방송이 나가자 언론의 성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점점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마침내 방송 제작자들이 시청자들의 투표로 처형시킬 포로를 뽑는 쌍방향 방송을 계획하며 절대 시청률을 꿈꾸는 동안, 식물원을 산책하다 잡혀온 아름다운 여대생 파노니크는 자신에게 푹 빠져 있는 즈데나 카포와 시청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내기를 준비하는데….
저자
아멜리 노통브
출판
문학세계사
출판일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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