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달리, 책방을 매개로 한 사회적·정서적 연결을 탐구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정보를 파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을 대신하거나 위로하는 매개, 타인과 소통하게 하는 도구로 그려진다. 올드 하우스(book shop)은 개인적 이상과 공적 요구의 갈등을 유발하는 매개체로 이용되며, 보수적인 사람에게는 곧 ‘제도화된 문화’가 실제로는 무엇을 가리는지에 대한 은유가 된다. 또한 주인공 플로렌스의 시도는 개인의 작은 저항이 어떻게 공동체의 규범과 충돌하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북샵
La libreria, The Bookshop, 2017
감독 이사벨 코이셋
드라마 · 영국, 독일, 스페인 · 112분 · 2021.06.24(kor)
출연 에밀리 모티머 · 빌 나이 · 패트리시아 클락슨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유튜브에서 천 원을 지불하고 본 영화인데,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라는 생각과 함께 천 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았고, 오히려 저렴한 금액으로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본다는 것에 기쁘기까지 했을 정도다. 특히,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 비가 오는 저녁에 보는 영화와 날씨, 그리고 어둑어둑해져 가는 시간과 이상하게 맞물려서 보게 되는 영화는 나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북샵>은 2021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인데, 원작이 있었다. 1978년에 출간된 La libreria, 페넬로페 피츠제럴드 작가의 소설이다. 소설을 알기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원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원작인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도 상당히 인상적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만큼 추천하고픈 영화가 될 듯싶다.
<북샵 >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있다. 주된 배경은 1950년대 후반으로 전쟁이 끝나고 주인공 플로렌스(에밀리 모티머)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작은 바닷가 마을 ‘하드 버러’로 이사를 오고 작은 책방을 열면서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 작은 책방이 마을 사회와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감독인 연출가 ‘이사벨 코이셋’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갈등을 통해서 시대적인 상실과 연대를 생각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한, 작은 책방이 겪게 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으키는 저항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배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섬세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여느 다른 영화들처럼 대단하게,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치닿는 클라이맥스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연기의 감정선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눈빛, 사소한 몸짓을 담은 영상미도 세련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섬세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배치까지도 디테일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것도 인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인지 엔딩 크레디트가 끝나 갈 때까지 여운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여운 때문에 더욱 깊게 나의 뇌리에 남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이사벨 코이셋’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된 감독으로 어떤 감독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물론 이 영화 한 편으로 그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바닷가 마을이지만, 바닷가 마을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만 가끔 등장할 뿐, 구체적인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바닷가 마을이 주는 풍경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이러한 마을 주변의 풍경,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여줄 듯 싶지만, 그런 장면은 배제하고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책방에서의 다양한 앵글 속에서 보여주는 책 표지, 책 진열장을 비추는 앵글이 인상적인 샷으로 보이고, 주인공인 플로렌스가 책을 읽는 모습을 근접 촬영으로 앵글을 담아낸 모습에는 읽는 행위 자체를 미화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책방에서 보이는 흩날리는 먼지의 디테일과 오래된 목재에서 느낄 법한 거친 질감들이 플로렌스의 섬세한 감정선과 잘 맞물려 있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책방의 짙고 탁한 느낌의 초록색 톤을 통일되게 표현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사소한 작은 일에도 큰일이 난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은 감독인 이사벨 코이셋의 연출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샵>은 주인공인 플로렌스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자신의 삶을 다시 되찾고자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의 오랫동안 비워있었던 건물을 임대하여 책방을 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책방을 연다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관심과 보수적인 반응으로 대응하고, 책이나 문학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채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책방을 열고 자리를 잡아가던 때에 마을 유지인 여성 ‘바이올렛 게임트’라는 사람과 갈등이 시작된다. ‘바이올렛 게임트’는 책방을 없애고 그 자리에 문화센터를 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마을 유지인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 ‘에드먼드 브런디쉬’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큰 저택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지만 책방 주인인 플로랜스를 만나며 변화를 겪게 된다. 바이올렛 게임트의 사회적 영향력과 보수적인 마을의 구조로부터 받게 되는 압박으로 인해 플로렌스는 점점 지쳐가게 되고,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서 책방을 다시 운영하게 된다는 내용을 암시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먼저 주인공, 에밀리 모티머(역 플로랜스)의 연기는 과장됨이 없이 진솔하고 진지함을 보여 주는 배우로 보인다. 분노와 절망을 담아내는 장면에서는 화가 날 법 하지만, 오히려 차분하고 냉정해지며 더 단단함을 보여준다. 책방에서 보이는 장면을 보면 꼼꼼함과 섬세함을 읽을 수 있어서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 속에서 성격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패트리사 클락슨(역 바이올렛 게임트)은 마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마을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책방을 없애기 위해 계산된 행동과 말투에서 권력의 힘과 위압감을 보여준다. 빌 나이(역 브런디쉬)는 마을에서 영향력을 잃은 부유한 은둔자로 광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성격이 꽤나 거칠지만 마을에 책방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플로렌스를 초대하기도 한다. 이렇게 세 사람을 통해서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개인적으로 주인공인 에밀리 모티머의 연기력에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단순하게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극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따라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장치들이나 액션 없이 오로지 극의 흐름에 맡겨지는 듯한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를 단순하게 본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내용일 듯싶지만, 책방을 매개체로 사회적, 정서적 연결 고리를 사람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주는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 단순히 정보를 판다는 개념에서 책을 판다는 느낌이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책을 팔고 사는 느낌이 아닌 책을 통해 위로를 하거나 위로를 받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써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책방은 개인적인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으로 공공의 목적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바이올렛 게임트는 사유화되고 있는 것에 반기를 들어 책방을 제도화된 문화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은유적인 방식으로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플로렌스의 책방을 지키려는 의도는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로서의 가치와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북샵>은 책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그리고 개인의 가치와 사화적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치와 품격을 보여주는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느리다는 의미가 단순하게 속도에 기반한다기보다는 정서적인 디테일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고 그 디테일함에 감성적인 느낌을 더한다면 이미 그 속도는 느리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일 듯하다. 이 영화는 천천히 스며들듯이 불 수 있는 인내력을 요구할 수도 있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을 보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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