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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디자이너라면..

누구를 위해 디자인 할 것인가? (For whom design serves?)

kimdirector 2021. 1. 10. 19:25 

위 : 도시바 점자 휴대폰 콘셉트 디자인
아래 (좌) : 파니 카스트(Fanny Karst)의 노인을 위한 패션 디자인
아래 (우) : 노숙자 임시 거주지 디자인 ‘패러사이트(paraSITE)’

 

 

최근 십 여 년간 디자인은 ‘삶의 질 향상’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하여(For a Better Life)’를 목표로 달려왔다. 디자인을 산업 경쟁력의 조건으로 여기던 데서 나아가 디자인을 통해 삶에 편의를 더하고 생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개인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때로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손을 덜어 여유를 주기도 하고, 시각, 촉각 등의 감각적인 만족감을 더하는 디자인으로 감성적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디자인으로 얻어지는 행복을 위해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통한 더 나은 삶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일까? 대략, 평균 상품 가격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대중이라는, 매우 포괄적인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주류, 평균, 일반 그룹으로 분류되지 않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관심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일례로, 노인 문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근미래의 현실이고, 실업자, 도시 빈민의 문제 등은 디자인계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특히, 정부차원의 지원이 빈약한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과 이를 포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번 도시바의 점자 휴대폰 콘셉트 디자인은 이 문제를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다. 도시바의 디자인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촉각적 지각에 전념,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함으로써 시각장애인 휴대폰의 전형이 될만한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 휴대폰의 경우 브랜드마다 경쟁적으로 각기 다른 자판 배열을 실험하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에서만은 경쟁적 실험보다는 세계공통의 자판 언어를 지정하는 것이 보다 시급할 듯하다.

지난 8월 말에 보도된 프랑스 디자이너 파니 카스트(Fanny Karst)의 노인을 위한 패션 디자인 기사도 이 같은 맥락에서 다시 한 번 들춰볼 만하다.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의료 시설이나 노인 여가 시설 확충 등의 대처방안은 논의되고 있지만, 노년을 새로운 삶으로 인식하고 생산적인 삶의 단계로 이끌어갈 보다 적극적인 제안은 아직 미흡하다. 노인을 위한 패션은, 나이와 무관한 미적 감수성을 존중하고, 적극적인 자기 표현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재생산해 갈 수 있게 만드는 사회 심리적 접근이다. 노인층을 사회가 떠 안아야 하는 사회적, 경제적 부담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다이내믹을 만들어내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시도이다.

2009 인덱스 어워드 주거 부문에서 수상한 노숙자 쉼터 디자인 ‘패러사이트(parasite)’ 역시 디자인이 ‘누구의 삶을 향상시킬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적 소수를 위한 디자인을 부가적인 책무로 떠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구성원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만이 진정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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