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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director of/얕은 생각의 깊이

가끔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나에게 필요한 '넛지'는 무엇인가?

kimdirector 2021. 1. 22. 16:15 

‘성약설(性弱說)’... 일본 경영학계의 거두인 이타미 히로유키(伊丹敬之) 교수의 '인간관'입니다. 그의 저서 '경영의 다이내믹스'(가제)에 나오는 표현이지요.

이타미 교수는 '인간'에 대해 어떤 기본적인 전제와 생각을 가질 것인가가 경영 방식의 근간을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맹자의 성선설도, 순자의 성악설도 아닌, 성약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강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모든 인간은 어딘가에 약한 면을 갖고 있고, 그러면서도 선한 일을 하려 생각은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대다수 인간의 모습이고, 따라서 ‘인간은 선하지만 연약하다’는 전제를 갖고 경영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넛지'의 저자들도 비슷한 표현을 했더군요. 유혹을 이겨내고 자기 통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두 개의 자아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원시안적인 '계획하는 자아'(Planner)2)근시안적인 '행동하는 자아(Doer). 그 두개의 자아가 이따끔 우리 안에서 심각한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종종 유혹에 넘어가거나 관성에 따라 무심한 선택을 하게되는 이유가 그런 인간의 본성에 있다는 설명입니다.

종종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 때때로 멀리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 저를 돌아보거나 주변을 돌아보면 공감이 가는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지요.

실제로 인간이 그렇다면 저자들의 주장인 '넛지'(nudge)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기'로 번역되는 넛지. 주의를 환기하거나 부드럽게 경고하는 행동입니다.

항상 강인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가거나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곤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런 '자유주의적 개입'이 인간을 좀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게으르거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을 위해 '적절한 디폴트 옵션'을 설계해 제시해 주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학교 급식대에 디저트보다는 과일과 채소를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이 대표적인 넛지의 사례입니다. 물론 넛지는 강제적인 명령과는 다르기 때문에 해로운 음식을 금지하는 것은 넛지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슬쩍 과일을 잘 보이게 놓아두는 것이 넛지이지요.

 

 



흥미로운 실헙 결과가 있네요. 한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캠벨사의 토마토 수프가 담긴 커다란 그릇을 놓고 참가자들에게 원하는 만큼 먹으라고 요청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몰랐지만, 그 수프 그릇은 바닥이 없이 테이블 밑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와 연결되어서 자동으로 수프가 리필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험이 끝날 때까지 자신이 엄청난 양을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수프를 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건강을 위한 '넛지'는 '작은 그릇'을 준비해 사용하는 것이 되겠지요. 다이어트를 원한다면 음식을 작은 그릇에 담아 먹는 현명한 '넛지'가 필요한 셈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사례도 재미있습니다. 남자용 소변기 주변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공항은 색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스티커를 통해 "소변을 변기 밖으로 튀게하지 마시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소변기 중앙 부분에 검정색 파리를 그려넣은 것입니다. 그러자 남자들은 그 파리를 향해 소변을 보았고, 그 파리그림이라는 '넛지'를 통해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을 80%나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클러키'라는 자명종 시계도 흥미롭습니다. 이 시계는 바퀴가 달려 있어서 아침에 자명종 버튼을 누르면 침대 옆 바닦으로 튀어 내려와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숨어버린다고 합니다. 일어나 방 구석에 숨어 버린 자명종 시계를 찾다보면 잠은 달아나겠지요. 자명종을 끄고 다시 잠드는 것을 '선택'하곤 하는 약한 인간들을 위한 '넛지'인 것입니다.

종종 약해지기도 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기도 하는 나... 그런 나에게 지금 필요한, 내가 설정할 수 있는 '적절한 디폴트 옵션', '넛지'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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