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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읽은 것에 대해서

'그럴 수 있어' 양희은의 노래와 여행, 그리고 가족이 있는 삶을 담담한 필체로 기록한 책

kimdirector 2023. 10. 23. 08:05 

 

 

 

 

 

그럴 수 있어

저 양희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07.04 · 에세이

 

2023.10.18 ~ 10.20 · 4시간 6분

 

 

 

 


 

 

 

 

 

오랜만에 에세이를 꺼내 읽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에세이는 특정인의 사적 이야기 또는 주관적 사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타며 읽지 않아도 되는, 중간부터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담 없이 편하게 읽다 보니 잊을만하면 한 권씩 꺼내 읽는 것이 좋다.

 

양희은이라는 가수는 어릴 적이 즐겨 듣던 노래들이 참 많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한 사람이었던 때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이제는 아련한 추억놀이로 그의 노래들을 하나씩 되뇌어 보기도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을 아침, 작은 연못, 하얀 목련, 아침이슬, 한계령, 늙은 군인의 노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등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럴 수 있어’ 이 책은 양희은 님의 70년을 넘게 산 자신의 기억과 추억들을 소환해 다양한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들춰내 자신만의 필체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노래와 무대에 대한 이야기, 20년 넘게 이어온 라디오 방송 ‘여성시대’ 이야기, 가족 또는 친구들과 다닌 여행 이야기, 소소한 일상과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며 담담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확행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럴 수 있어’ 이 말은 긍정적인 힘을 갖게 되는 묘한 느낌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나도 가끔은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부러 많이 쓰는 말은 아니지만, 상대방한테는 위로와 같은, 배려를 위한 말이 아닌가 생각할 만큼 좋은 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서야 배우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양희은 님 만의 억양을 활용하면서 읽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방송에서 보면 양희은 님 만의 독특한 억양이 독특해서일까. 그 억양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읽는 내내 흉내를 내며 읽은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가끔씩 읽다가 피 씩 하고 짧은 웃음이 나고 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안 그러려고 해도 습관처럼 특정 부분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흉내를 내는 데 오히려 그런 부분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집중력이 생기는 것 같다. 암튼 재미있게 읽은 책 증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럴 수 있어’ 이 책은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사랑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양희은 님만의 사색적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양희은 님의 모든 살아온 이야기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희은 님이 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반추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70이 넘는 양희은 님과 어머니의 연세가 90이 넘으면서 자신과 노모와의 이별을 생각하고, 자신의 이별을 자신만의 이별 노트를 준비하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의 이별 전화를 받으며 써 내려간 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리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별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럴 수 있어’ 이 책은 에세이답게 양희은 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재미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로도, 사랑하라는 얘기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뿐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가족, 나의 인생,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하게 그냥 양희은의 이야기네…라는 식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양희은만의 화법으로 읽는이, 즉 바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느껴지는 바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상적인 글

단단하게 잘 만든 곡은 무반주로 불러도 가슴으로 온다. 그러나 히트시키려는 욕심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반주나 안무가 없을 때는 이상하게 삐걱대며, 부르기 민망하다. 노래에 사심이 있으면 누구를 매료시킬 수 없다. 노래도, 사람도, 나무도, 세월을 이겨낼 든든한 골격이 없으면 금세 시선을 돌리게 된다.
- "그럴 수 있어"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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