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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애니에 대해서

[언어의 정원] 사랑보다 훨씬 더 이전의 고독한 사랑의 이야기!

kimdirector 2020. 12. 25. 15:40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애니메이션, 로맨 / 일본 / 46분 / 2013.08.14(한국)

감독 신카이 마코토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 다카오는 비가 오는 날, 오전에는 학교 수업을 빼먹고 도심의 정원으로 구두 스케치를 하러 간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유키노라는 여인과 정원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이 나중에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다카오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보다 연상이나 그리 현명해 보이진 않으며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여인이다. 그렇듯 나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예상치 못한 우연한 만남은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정원에서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비록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지만 걷는 법을 잊어버린 그녀를 위해 다카오는 구두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장마가 끝나갈 무렵 그들 사이에는 뭔가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는 듯하다.

과연 다카오는 그의 감정을 행동이나 말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

 

빗줄기 사이로 그리고 폭풍의 적막함 속에 언어의 정원에는 무슨 꽃이 필 것인가?

 

아름다운 영상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46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애니메이션이지만, 신주쿠에 있는 실제 정원을 화면 속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공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니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다루어지는 스토리이지만 스토리는 좋았다. 전체적으로 큰 임팩트 없이 끝까지 이어지는 점이 다소 지루함을 느끼게 할 것 같지만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인 것 같다. 또한, 감독이 신카이 마코토라면 기대하고 볼만한 것 아닌가.

 

비 오는 아침이면 오전 수업을 빼먹고 신주쿠교엔에 간다. 인적 없이 푸르고 축축한 정원엔 비와 선선한 공기가 그윽하다. 15살 다카오는 언젠가 멋진 구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연하 애인과 살림을 차렸고, 형이 독립을 시작하자 그는 혼자다. 6월의 비 오는 어느 날 공원 벤치를 찾은 다카오는 걷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이십 대 중반의 유키노를 만난다. 투명한 꿈을 품은 애어른 다카오와 ‘그날’ 이후 거짓투성이인 어른아이 유키노는 고즈넉한 공원 정자에 앉아 비 오는 날이면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네,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린다면, 당신은 여기 있어줄까? 일본 옛 시집 <만요슈>에 나오는 시에서처럼, 비가 와야만 함께할 수 있던 다카오와 유키노. 장마 그리고 이어지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도 소나기처럼 우연했던 이들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을까.

 

신카이 마코토는 전작을 통해 감성멜로와 판타지의 세계를 교차해 보여줬다. 그리고 분명 <언어의 정원>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초속 5센티미터>를 잇는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멜로다. 대기의 청량함, 하늘과 바람과 날씨, 계절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물질들의 세계가 담담하게 잘 살아난다.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이어주는 비는 제3의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문을 이루며 호수에 찰랑대는 가랑비에서 미칠 듯 퍼붓는 소나기까지 비의 향연은 주인공의 내면상태를 반영하듯 청량하고 소슬하다. 그리고 석양 속에 기적처럼 찾아오는 여우비 내리는 순간은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날씨가 인물의 정서에 관여하는 방식이 전작과 유사하여, 푸른 습기를 머금은 장마철과 인생 한 시절의 감성이 겹친다.

 

전작들에서 다소 소심하고 조심스러웠던 주인공의 내면이 보다 강건하고 굳세 졌다는 점은 작은 변화다. 결말을 열어두어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예감을 남겨둔다는 점은 여전하다. <언어의 정원>에는 개인의 내면에 폐칩되어 있던 정서를 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시키려는 감독의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내성적 순결성을 걷어내고 수긍 가능한 캐릭터를 살렸다.

 

비록 러닝타임은 46분으로 짧지만 서정적 전작들이 단편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서사적 안정성과 지구력은 늘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 배경엔 손그림을 기본요소로 하여 아날로그적 감성을 살렸다. 살랑살랑 벚꽃이 지는 순간처럼, 후두두 비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초속 5센티미터>가 봄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언어의 정원>은 소나기 틈새로 비친 햇살처럼 싱그러운 여름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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