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저 정유정 · 은행나무 · 2011.03.23 · 한국소설
2025.05.01 ~ 05.08 · 12시간 43분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잊고 있었던 책이 내 기억 속에 다시 되살아났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먼저 떠오르는 책은 ‘종의 기원’이지 않을까 싶지만, 현재는 밀리의 서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다. 물론 오디오 북은 현재까지도 있지만, 오디오 북은 잘 읽히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오디오 북은 읽는다는 개념보다는 듣는다는 개념이 있기에 별로 흥이 나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테지만 그래도 듣는 것보다는 읽는다는 것이 더욱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종의 기원’이 없어서 대안으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고 한 책이라 조금은 기대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도 꽤 오래전부터 쌓아 두었던 책이기에 이번에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끝에 읽게 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 소설이기도 했고, 작가의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7년의 밤’은 살인자인 아버지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7년 후인 현재에서 사건이 있었던 7년 전 시기로의 과거로 돌아가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이어지면서 진행되고 대부분은 7년 전 사건 전후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과거 속의 주된 배경은 세령호라고 하는 곳인데, 댐 건설로 인해 저지대 마을은 수장되고 세령호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통제 구역이 된다. 그리고 댐을 관리하고 경비하는 주변 건물에서 그리고 사택이라고 하는 주거 건물이 있는 구역이 있는 곳에서 진행된다. 현재의 배경은 등대마을이라는 인적이 드문 바닷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외지인이 거의 오지 않는 곳으로 숨어서 살기에는 더할 나의 없이 좋은 장소로 설명되고 있다.
책 속에는 두 가족의 이야기가 극의 중심에 있다. 주인공인 ‘최현수’의 가족과 오영재의 가족이 있다. 최현수의 가족은 행복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가족이고, 오영재의 가족은 오영재의 폭력적인 행태로 인해 불운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4명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현수’라는 인물은 어렸을 때, 야구를 시작하여, 특급 포수로 활약하며 고교생까지가 전성기 시절이었고,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이렇다 할 성적 없이 은퇴하고 생활력이 아주 강한 강은주와 결혼 후 경비 업체의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세령호 댐 경비 팀장으로 가게 된다. 술을 아주 좋아하고 건장한 체격이지만 야구를 하며 생긴 왼팔 마비 현상 때문에 용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한 외팔이 상이군인인데,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일삼다가 우물에 빠져 죽는다. 아버지가 빠져 죽은 우물에는 기이한 소문이 있었다. 우물에 신발을 던지면 신발 주인은 우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인데, 최현수는 아버지의 폭력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의 신발을 우물에 던지고 만다. 그 이후로 줄 곳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세령호에 가게 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며 세령호로 이사할 집을 보려 내려가는 길에 음주운전으로 인해 과속을 하다 여자 아이를 차로치고 세령호에 아이를 던져 유기한다. 그리고 그 괴로움에 미쳐 밤마다 가족들의 신발을 들고 세령호로 간다.
오영재는 세령호 마을의 유지이기도 하고 병원을 운영하는 치과의사이며, 세령호 일대의 산림원을 유산으로 받아 운영하는 재력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격 탓에 아내인 문하영과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자신의 뜻에 거스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고 하여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결국 아내인 문하영은 그런 오영재에게 벗어나 세 번째 도망을 하고, 오영재는 이혼을 당하게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의 딸 세령은 마을에서도 외톨이로 자라고 있지만, 사건이 있었던 밤에 집안을 어지렵혔다는 이유로 교정한다 하여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창문을 통해 도망을 치다 최현수의 차에 치어 죽고 만다. 그리고 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의 성격은 폭력적이고 치밀하고 냉철한 인물로 자신의 딸을 죽인 최현수가 복수의 대상이 아닌 그의 외동아들인 최서원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최서원’은 최현수의 외동아들로 엄마보다는 아빠를 좋아하지만, 세령이가 아빠의 차에 치어 죽었다는 사실과 댐의 수문 오작동으로 인해 마을 사람 대다수가 홍수 피해를 입어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친척들로부터,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어 가며 고립되고 외롭게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승환을 만나 여기저기를 떠돌다 등대 마을에 정착하며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런 와중에 7년 전, 사건의 전체 이야기를 우연하게 알게 되고, 7년 후 현재에 와서 오영재를 다시 만나게 되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승환’은 전직 UDT 출신의 세령호 댐 경비 업체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사건 이후 서원과 함께 살아가며, 대필 작가로 그리고 잠수부일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7년 전의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소설을 쓰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소설의 큰 줄기는 최현수와 오영재, 두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한 인물에 집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최현수와 그의 아내 강은주, 그리고 오영재, 승환이 사건에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 중심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리며 전개된다. 하나의 장면에서 각각의 인물의 상황이 전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금은 복잡해 보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설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최현수의 현재 상황과 과거, 그리고 그의 아내 강은주의 현재와 과거 이야기들, 최서원의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받고 살아야 하는 상황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과거 속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극의 전체적인 흐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긴장감을 가지고 읽다가 사그라드는 경우가 여러 장면에 있다 보니 조금은 답답하고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빠르게 전개되어 긴장감과 몰입감에 빠져들게 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현수와 오영재, 두 인물의 심리 묘사를 읽는 재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04년 9월, 최현수는 세령호 댐 수문을 열어 세령 마을을 수장시켜 마을 주민들을 죽게 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이후 현수의 아들 서원은 친척들에게 버림받은 이후 세령 마을에서 같이 지내던 룸메이트 승환과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세령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담은 '선데이 매거진' 잡지가 학교로 배송되어 학생들이 서원을 살인마의 자식이라며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고, 전학을 가게 된다. 새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결국 서원은 여러 번의 전학을 하며 전전 긍긍하다 학교를 자퇴하고 승환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잠수를 하러 오는 사람 외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외딴 해안가 등대 마을에 정착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한 무리 사람들이 찾아와 한밤중에 잠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승환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한다. 사람들은 승환의 거절을 무시하고 배를 띄워 잠수를 하다 모두 다 바다에 빠지게 되고, 승환과 서원이 구조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승환과 서원은 경찰의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되고 만다. 살인마 최현수의 아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는 기사로 인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이 소설의 묘미는 후반부에 최현수가 미쳐 가는 광인의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가 죽게 된 것은 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 아버지의 신발을 던지게 된 이유가 된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장면이 있다. 몽유병인지 아닌지 자각할 수 없을 만큼 힘겨워 보이지만, 최현수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수수밭을 모두 없애기 위해 날뛰는 모습에서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모습에 자신의 차에 치어 죽게 되는 세령이의 모습과 일치시키며 고통받는 모습이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영재는 복수를 위해 최서원을 세령호 한가운데에 묶어 두고 댐의 수문을 열어 수장시킬 목적이었지만, 최서원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혼령이 된 세령이 나타나 묶여 있는 최서원을 향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하게 되는데, 서원의 눈이 세령을 찾으면 차오르던 물이 빠지고 세령을 못 찾으면 물이 차오르는 게 되는 게임을 진행하는 장면은 기묘하지만 오묘한 뒷 맛을 느끼게 한다. 조금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최현수는 고통스럽지만 아들을 살리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오로지 홀로 고통받고 홀로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서원에게 까지 전달되어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결국 최현수는 사형수로서 생을 마감하고, 서원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스스로의 길을 찾고 선택하려 한다. 오영재는 자신의 딸을 죽인 최현수에게 복수를 하려고 철저히 자신을 파괴하며 스스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수를 위한 선택이 7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최현수의 사형일에 맞춰 서원을 함께 복수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이렇듯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잘 짜인 플롯, 그리고 그 스토리 속에서 인물 중심의 심도 있는 묘사들로 인해 읽는 이에게 몰입감과 집중력을 준다는 점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굳이 찾으려 하기보다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으면 좋을 듯싶다. 굳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최현수처럼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으로 삼는다는 설정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사랑이 항상 옳은 결과를 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한 결과가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 해도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은 살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죽었다는 점에서 최현수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극적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안은 서원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지난 과거 속의 모든 일들을 뒤로하고 과거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살 길을 선택했을 법하다는 점이다. 잘못된 선택이 남긴 상처를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살아가다 보면 밝은 빛도 볼 수 있지만, 어두운 단면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일 테니까.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인상적인 문장
스트레스는 겁쟁이의 변명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압박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였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피 터지게 싸워 거꾸러뜨려야 마땅했다. 하다못해 침이라도 뱉어줘야 했다.
<세령호 II / P-242 : 최현수와 아내 강은주와의 갈등 장면에서 강은주의 생각>
무서운 진실,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영장류의 천성일지도 몰랐다.
<세령호 III / P.361 : 강은주가 별채 사람들에게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최현수에게 전화한 후>
‘안다’를 당연시하고, ‘인식한다’를 외면한 자신은 어리석었다. 자신의 앞가림이 먼저였고, 누군가 재미를 보면 누군가는 피를 보는 게 세상이치라 여겼고, 재미 본 쪽이 자신이라는 행운에 취해, 던져야 마땅한 것을 던지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 말이다.
<세령호 III, P 477 : 강은주가 남편의 최현수의 이상 행동과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을 인지하고 나서…>
누군가 남편에게 자신의 삶을 걸고 지켜야 할 ‘어떤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걸 버릴 수 있느냐고 물어도 마찬가지 답을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사람’을 버리는 것이 지키는 길이라면, ‘어떤 사람’을 버릴 수 있겠는가, 라고 물어도 이 역시 ‘예스’라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서원을 그녀에게 데려가라고 한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서원을 버리는 것 말고는 지킬 길이 없다는 의미.
<세령호 III, P 488 : 최현수가 아내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서원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장면>
꿈속의 남자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있었다면, 그건 내 안에서 빠져나온 악마였겠지. 물론, 자살도 생각했네. 매일, 매순간. 실행하지 않은 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이기 때문이었어. 종교를 거부한 것도 비슷한 이유고. 내겐 신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게 할 자유가 있네. 내가 기다리는 건 구원이 아니라 운명이 나를 놓아주는 때야. 삶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P.471 : 수감 중인 최현수가 승환에게 사형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승환의 메모 중에서>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작가 말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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