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금학도
저 이외수 · 해냄 · 2010.09.20 · 한국소설
2025.06.04 ~ 06.18 · 8시간 48분
내가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대학 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기억은 이미 오래되고 바래져서 이제는 이외수라는 작가 이름만 기억되고 있는 지금, 30여 년이 흐르고 난 현재에 와서야 그의 책 ‘벽오금학도’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칠감칠색”이라는 타이틀로 2010년에 해냄에서 출간된 소설로 “벽오금학도”는 네 번째 소설이다. 이외수 작가의 책들을 보면 남다른, 독특한 상상력이 주는 특별함과 기발한 언어유희로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라고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칠감칠색”이라는 주제의식 속에서는 그만의 남다른 색깔의 의미에 감정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함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칠감칠색”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면, 첫 번째 소설인 “꿈꾸는 식물”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청년이 품은 꿈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남색’, 두 번째 소설 “들개”는 들개 그림에 온 정신을 바친 남자의 원시적 야성이 돋보이는 ‘녹색’, 세 번째 소설 “칼”은 전설의 신검을 만들겠다는 주인공의 타오르는 염원을 드러내는 ‘붉은색’이다. 또 네 번째 소설 “벽오금학도”는 흰머리 소년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전개되어 신비로운 ‘금색’이며, 여섯 번째 “괴물”은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형상화한 ‘주황색’, 일곱 번째 “장외인간”은 달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처럼 ‘검은색’으로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품어온 소설의 맛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로 기획된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칠감칠색”은 감정의 희로애락, 욕망과 허무, 희망과 절망,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작가의 치열함은 고유의 빛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며 본연의 열정과 끈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출간된 책들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도 많이 이들에게 읽히는 소설이라는 점을 볼 때, ‘좋은 책은 역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이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벽오금학도”는 1992년에 출간된 소설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빌어서 전하는 한 편의 우화처럼 느껴지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외수 작가는 오랫동안 심취해 온 선도(仙道)의 깨달음을 일반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쓴 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혼잡해진 정신을 다잡기 위해 교도소에 쓰인 철조망을 주문해 설치한 예로 보면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는 세간에 주목을 받은 실화도 있을 만큼 몰입해서 집필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일까. 스토리 전체에 흐르는 이야기에는 빈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 스토리의 전체 흐름은 한 소년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관계의 고리를 따라가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정도로 몰입감과 집중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인물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지만,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가는지를 집중하지 않으면 복잡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물 흐르 듯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주는 몰입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소설의 주요 핵심은 한 소년(강은백)이 우연히 신선의 마을인 오학동을 찾아 경험하게 되고, 오학동을 떠나면서 받은 그림(벽오금학도) 한 점과 금학의 깃털 하나를 가지고 현실세계에 돌아 오지만, 다시 오학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움을 줄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횐 머리칼의 백발을 가진 한 청년이 탑골공원의 팔각정 계단에서 노파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백발의 소년(강은백)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이 살고 있는 농월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중요 인물들이 만나면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강은백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의 시작점인 탑골공원의 팔각정에서 그리고 어린 시절을 보낸 농월당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잠깐씩 등장할 뿐이다.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핵심이리라 짐작될 수 있다.
앵벌이의 졸개인 득우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우두머리를 죽인 사람을 찾아 복수를 다짐하지만, 결국 고묵이라는 사람을 만나지만, 득우는 고묵을 무림계의 고수라고 착각하여 오랫동안 먹을 가는 수련을 쌓게 된다. 하지만, 고묵은 수묵화를 그리는 고수이고 득우는 그런 고묵 밑에서 자신의 우두머리를 죽인 사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고묵은 노파와 연결된 인물이다. 그리고 친한이라는 스님은 노파와 연결된 인물은 아니지만, 꿈에 스승이 나타나 예언을 듣고 태왕산으로 향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서의 중요한 인물은 노파이다. 노파는 예지력이 있는 인물로 강은백을 처음 만난 인물이다. 강은백이 오학동으로 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서 오랜 시간이 흘러 실행을 한다. 강은백이 오학동으로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세에서의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미련을 버릴 때까지 기다린 노파이다.
여기서 강은백은 굳이 현세에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선마을인 오학동으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점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시대상은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당시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에서 오는 갈등이 존재한다. 대학생들은 연일 민주화 운동으로 데모가 끊이지 않고, 그런 대학생들을 진압군은 굴비처럼 엮어서 어디론가 끌려갔다. 10.26 사태, 광주민주화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지강헌 등 미결수 집단 탈주 사건 등 굵직한 대형 이슈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출간된 시점, 1992년에는 국민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 말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암울했던 시대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시절이었다. 강렬했던 정치적 구호들을 외치던 시절에 대한 성찰적 의미들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뜨거운 외침이 아닌 담담하게 풀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시선들은 모두 강은백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가 볼 수 있다.
또한, 벽오금학도는 작가 이외수의 자전적 의미도 담고 있다. 등장인물 속 노파는 자신의 어릴 시절을 보살펴 준 친할머니가 모델이 되어 주었고, 친모는 결핵성 비염에 걸린 모친에게 의사는 수은을 잘못 처방해 중금속 중독으로 사망하고, 친부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돌아온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도 비슷하게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설 속에도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시절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법하다.
이야기 속에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물 흐르 듯 집중력을 발휘하여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학동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학동은 아무나 갈 수 없는 장소로 선택된 자만 갈 수 있는 장소라는 점, 오학동의 크기는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는 행복한 삶이 있고, 선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곳, 정치적 갈등, 사회 갈등, 범죄와 가난이 없는 곳으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가장 이상적인 곳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곳이 정말 실재하고 있다면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속세와는 너무 다른 세상인 오학동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오학동처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강은백에게는 인신처나 도피처가 된 오학동이였지만, 후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아들, 딸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인상적인 문장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되고 소망에 아름다움을 빼면 욕망이 된다’
거렁뱅이 팔자가 상팔자라네. 무엇이든 소유하고 있으면 그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가난뱅이로 전락해 버리고 말지만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온 천하를 모두 가지고 있는 부자로 승격된다네. 거렁뱅이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지.
‘세상만물 중에서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스승 아닌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아주 작은 먼지 한 점조차도 우주의 절대적 요소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셨어. 허나 그런 사실을 실감하려면 우선 마음으로써 모든 사물들을 지극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하느니라. 그리고 되도록이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낮추어서 바라보아야 하느니라.’
‘흔히 사람들은 개나리 진달래 꽃다지 민들레가 봄에 핀다는 사실들은 잘 알고 있지. 허나 그것들이 겨우내 얼마나 간절하게 햇빛을 그리워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가를 잘 모르고 있어. 마음을 닫아 걸고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지.’
‘신학문을 익힌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마음보다 머리를 더 많이 써서 하는 공부인 것 같더라만 마음공부가 되지 않으면 머릿속에 산더미처럼 들어 차 있는 지식인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학교에 가서 신학문을 배우더라도 너는 부디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