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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디자이너라면..

[2004.04] '이 정도'와 '조금 더' 디자이너들이 생각해 볼 글입니다.

kimdirector 2020. 12. 29. 15:52 

'이 정도'와 '조금 더'

미국유학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뎃생이며 구성등 기본기는 매우 자신있었고, 정밀묘사 등 뭐든 손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어느누구 보다더 자신있었던 저는 미국에서의 기초수업이 조금은 싱겁겠다 생각하고 수업에 임했습니다.

Basic Drawing 수업, 말 그래로 그림의 기초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나이 많으신 할머니이셨고,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미국인이었습니다. 첫시간 부터 정물 하나를 놓고, 3시간 동안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배운데로, 모든 뎃생기법을 살려 멋진작품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동안 그리기에 열중하던 저는 잠시 쉴겸,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미국애들은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그림을 보고, 아연실색 했습니다.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에 올정도면, 한국에서라면 모두 뎃생에는 귀재들이었을텐데, 그 때 그곳에서 본 다른 미국 학생들의 그림은 가히 발가락으로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기본기라고는 전혀없고, 제각각 제멋대로 선도 삐뚤빼뚤 명암도 엉망이고 원근감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내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흘렀습니다.

"이제 됐어! 이정도면 내가 여기서 최고임에 분명해!"

기고만장해진 저는 못 다 그린 제 그림을 신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내그림에 감탄을 했습니다. 터치, 명암, 원근감, 구도 등등...한국에서 뎃생을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하며, 뿌듯해 했습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모두 각자 그린것을 제출하고, 교수님께서는 다음시간에 성적을 적어 돌려주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다음 일주일이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빨리 그 수업시간이 되어서, 다른 미국얘들 앞에서 칭찬 받으며 한국인임을 뽐내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정대로 모든 학생들 작품은 교실 벽면에 붙어있었고, 그 중에는 제작품도 늠름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성적은 뒤에 써있는지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A+라고 크게 적혀있는 모습이 보고싶었지만, 그렇지않아도 잘 그린걸 모두 인정할테니까, 그리 크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그림이 붙어있는 벽면 한쪽끝에서 부터 하나씩 크리틱(critique)을 해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형편없게 느껴지는 작품에서조차도 그 늙으신 할머니 교수님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교수님은 그 학생이 비록 기본기가 없을지언정, 그가 갖고있는 최대한의 장점을 부각시켜서, 그로 하여금 그 장점을 조금 더 계속 발전 시킬수 있도록 용기와 능력을 키워주려는 것 이었습니다. 당연 해당 학생은 기분이 좋아 우쭐해 있었고, 또한 많은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림공부를 한적이 있습니까?"
"네, 한국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아주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O.K!"라고 하시고 몇 마디 하시는 듯 그냥 다음학생 작품으로 가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뭐가 잘못됐나? 인종차별 하는거 아닌가? 너무 잘해서 할 말씀이 없었던 걸까? 별별 생각을 다했지만 결론은 제작품 뒷 장의 적혀있는 성적을 보면 알리라 생각하며, 수업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면서 교수님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그러시고 조용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준'의 그림은 매우 잘 그린 그림이예요. 그런데 일본이나 한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의 그림을 처음 보면 늘 느끼는 거지만, 너무 비슷해요. 아마도 그곳의 미술교육이 획일화 된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학생들이 처음 제 수업을 들었을 때 저는 그들만의 개성과 장점을 찾기가 참 어려워요. 즉, 자기 개발이 않된 그림은 발전이 없기때문에 과거의 획일화된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 나만의 그림을 그릴수가 없는것이지요. 나는 '준'이 과거의 타성을 버리고, 자신의 장점을 찾아 자신만의 '선'을 이 수업을 통해 찾기를 바랄께요."

교수님은 아주 조용하면서도 아주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도 교수님의 말씀을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그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그 시간 이후 저는 제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정물 전체를 도화지에 가득 채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비율에 맞추어 미리 밑그림을 대충 그리지도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내 '선'을 찾고자 계속 그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학기 내내, 계속해서 그리던 방법을 계속 벗어던지고, 새롭게 계속 시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다 됐다 싶어도 교수님은

"조금 더 없을까?...이 그림이 '준'이 사물을 표현하는 모든것인가요?"

정말 학기 내내 교수님이 밉기만 했습니다.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없고 계속 요구만 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바로 '나'를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내안에 있었던 '나'를 일깨우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획일화되지 않은, 살아있는 내 그림.

얼마후 학기가 끝날 무렵, 마지막 크리틱이 있었습니다.


벽면에 가득 메운 동료들의 그림들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눈부셨습니다. 같은 대상을 그렸음에도 어느 하나도 비슷한 그림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제 작품앞에서 한동안 아무말 없이 오랫동안 바라보시더니, 학생들에게 첫 수업날 교수님께서 저를 불러 조용히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다시 하시면서, 첫 수업시간에 제가 그린 그림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모두 잊고 있었던, 첫 수업시간에 그렸던 정물이 바로 학기 마지막 시간에 그렸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자기의 '선'을 찾은 학생으로 저를 지목하시며, 칭찬의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놀란것은 과거의 내 그림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그렸었지? 아무 개성없이 공식화 되어있는 과거의 내그림을 보면서, 현재의 뿌듯함보다는 과거의 창피함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학기초의 내 그림이 이제는 숨기고 싶을 정도로 제 시야는 달라져 있었고, 저는 그만큼 성장해 있었습니다.

미국 미술교육에는 한국과는 달리, 석고 뎃생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비너스나 아그리빠등은 미국에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석고 뎃생은 오래전 일본에서부터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그 당시 누드화는 엄두도 못내고, 정물을 놓고 그릴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으로 미술'입시'교육의 잣대를 제기위해 채택되었습니다. 이미 우리 학생들은 공식화된 '그리기'를 거쳐, 대학에 입문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석고 뎃생을 통해 원근감, 명암 및 터치등을 우리는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입문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보니, 미술이 마치 수학공식처럼 되어, 석고를 보지않고도 그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교육이 어린 학생들에게는 창의적인 발상보다는 미술도 다른 과목처럼 외우면 된다는 식의 개념이 그들 스스로도 모르게 머리 깊숙히 박혀 버린것입니다.


첫단추를 잘못낀 우리 미술교육은 대학에서도 어느정도 '선'만 넘으면 되는 '커트라인'사고방식이 자리잡아, 자기개발 보다는 과제만 해가면 되는, 즉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자인하고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디자인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수 없는 미술교육의 정형화의 발단이며 걸림돌 역할을 한것이 사실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것 처럼, 미국의 미술교육에서는 '이 정도면' 이라는 말이 않통합니다. 자기개발에서 '이 정도면'이라는 말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졌음을 자인하는것입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미국 학생들은 사회에 나아가 필드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그 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나'를 발산하며,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첫 기초드로잉 수업시간에 발가락으로 그린것 같은 그림을 그렸던 친구들이 지금은 사회에 나가, 누구도 따라할수 없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펼치고 있는것을 볼때, 미술교육이란 실로 어떻게 그리도록 지도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심어주는 것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의 숨은 장점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며,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계속 자기개발을 한 미국학생들과 석고뎃생이라는 공식을 머리에 외운채, 그 공식을 합리화 해나가며, '커트라인'안에서 정형화된 우리나라 학생들이 같이 사회에 나왔을 때,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로 나타납니다. 지금 세계 디자인을 이끄는 원동력이 바로 이런 '이 정도'와 '조금 더'의 차이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디자인작업을 하며, 이렇게 되뇌이지는 않습니까?
"이 정도면 됐지!"

우리가 알고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바로 '이곳'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조금 더 없을까?"...   [정글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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