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La Chute
저 알베르 카뮈 · 문예출판사 · 2015.12.10
프랑스소설 · 문예 세계문학선 119
2025.07.24 ~ 07.28 · 4시간 27분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정말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2021년에 읽었던 ‘이방인’을 마지막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이다. 때문에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기대감을 안고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전락'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읽기 편한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전락’을 읽기 전에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난 후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뒤에서 간단하게 언급하겠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품해설’을 먼저 읽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그래야 이 책을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본인도 작품해설 부분을 먼저 읽고 읽었더라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만약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독자가 있다면 반드시 작품해설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락’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멕시코 시티’라는 술집에서 작품 속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클리망스(이하 클라망스)는 파리에서 전직 변호사로 누군가 하고 얘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누군가는 작품 말미에 정체가 밝혀지지만, 그냥 이미지만 있는 대사 한마디 없는 역할로 존재의식만 있을 뿐인 역할이다. 클라망스가 홀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는 방식이지만, 분명 대화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주고받는 식의 대화체는 없다. 오로지 클라망스 홀로 진행하고 전개되다 보니 조금은 독특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오로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클라망스 홀로 독백을 하듯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인해 소설이지만 무대 위에 주인공 혼자 연극하는 모노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때문인지 내용만으로 본다면 전혀 간단치 않다. 이것은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고 있던 마음속 이야기를 주인공 클라망스를 내세워하고 싶은 말을 철학적 의미로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품해설을 먼저 읽으면 납득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은 알베르 카뮈의 단편집 ‘적지와 왕국’에 수록될 예정이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1956년에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57년 알베르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도 있지만,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문학적 명성을 갖추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한 작품이 ‘전락’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주인공 클라망스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을 하자면, 파리에서 나름 명성을 쌓은 전직 변호사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변호를 하며 싸우는 변호사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항상 정상에 있었고, 그로 인해 클라망스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고,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고 변호사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센 강의 풍자데르 다리를 건너던 중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2~3년 전에 직접 목격한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센 강의 퐁루아얄 다리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여자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가지만 결국 여자가 센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지만,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라고 판단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던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이 클라망스 자신에게 명성에 오점이 되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모를 웃음소리는 자신을 심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클라망스는 자신의 과오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을 두려운 나머지 자신이 받을 비난을 약화시키고 무력화하기 위해 자신이 지은 죄를 먼저 참회하고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계산된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때문에 클라망스는 심판관과 참회자라는 이중적인 모호함을 갖게 된다. 이중적인 모호성으로 인해 ‘전락’은 스토리의 구성과 의미에는 큰 영향을 주게 되며, 주제의식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와 주인공 클라망스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 또한 알베르 카뮈의 고도화된 전략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알베르 카뮈는 파리에서 ‘이방인’, 그리고 아직 읽기 전인 ‘시지프의 신화’로 큰 성공을 거둔 작가로서의 모습과 파리에서 변호사로 명성을 쌓고 있는 모습에서,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모습의 알베르 카뮈와 클라망스의 모습에서, 또 하나는 클라망스가 정상에서 추락하는 모습 속에는 알베르 카뮈의 추락하는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알베르 카뮈는 동시대에 살았던 사르트르와 논쟁으로 인해 추락을 겪게 된다. 1951년에 출간된 ‘반항하는 인간’ 이후 알베르 카뮈는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통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작가로서의 명성을 모두 잃고 절망하는 모습은 묘하게 겹치게 되는데, 이는 알베르 카뮈는 주인공 클라망스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클라망스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돕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변호사로서의 명성을 쌓여 가지만, 이런 행위 자체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 가게 된다. 이는 힘없는 자를 돕는다는 명제 속에는 위선이 있고, 자기기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센 강에서 자살하는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행위는 인간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고,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도피하려 하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클라망스는 이러한 점들을 누군가에게 고백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기보다는 타인의 죄를 조롱하거나 때로는 통제하는 수단으로 고백이라는 형식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참회자와 심판자의 이중적인 구조를 용인하며 역설적으로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고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장치로 이용하고, 지은 죄를 부정하는 대신 죄의 보편성을 주장하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죄인으로 취급한다.
이렇듯 ‘전락’에서의 알베르 카뮈가 독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단순하거나 간단하지 않다. 알베르 카뮈는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인내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알베르 카뮈의 고백서이기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의 가치와 책임의식과 정의 같은 것들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그러한 것들은 자기만족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도덕적 책임 그리고 그와 대치되는 위선적 행위를 마주했을 때 드는 도덕성을 그리고 행동의 대한 책임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들에게 되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고백이 단순한 언어유희로 끝나지 않게 되새겨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적인 문장
자신의 정당성을 믿는 감정,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만족감,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는 기쁨 등은 인간을 분발하게 하거나 전진하게 하는 강한 원동력들입니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어떤 사람은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기보다는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다음엔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기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끝으로는 거짓말도 하고 동시에 비밀도 지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어느 쪽에 제일 들어맞는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