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사이공을 배경으로, 하녀로 들어온 소녀 무이가 한 가정에서 성장하고 이후 다른 집으로 옮겨가 사랑과 삶을 경험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뚜렷한 사건 중심 서사 대신, 일상의 반복과 자연의 감각인 소리, 빛, 질감을 통해 인물의 내면 변화와 성장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The Scent of Green Papaya
그린 파파야 향기, 1993
감독 트란 아인 홍
드라마 · 프랑스 · 104분 · 1994.07.30 (KOR)
출연 루 맨 산, 안 호아 뉴엔, 트란 느 옌케, 티 록 트롬, 호아 호이 부 옹
유튜브에서도 가끔 볼 만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도 그렇게 찾아본 영화로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대사가 베트남어로 스토리가 진행되다 보니 자막을 찾아서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을 영상만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나름 신기하게 생각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절제된 영상미라고 해야 할까, 배우들의 연기력보다는 전체적으로 정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통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특히 서정적으로 흐르는 스토리 안에서 들려오는 배경음악으로 인해 정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겠고, 가끔은 뭔가 독특한 배경음악으로 인해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나름대로 긴장을 하면 장면들도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것을 느꼈던 것도 사실일 듯하다. 대단한 서사가 있거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 단순하게 돋보이는 영상미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력은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히려 영상미를 돋보이게 하려고 배우들을 배경으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지나갈 때마다 카메라가 함께 움직이는 무빙 워크를 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특징일 듯하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느껴질 평온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일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딱히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상적인 생활을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영상미를 통해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위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서사작인 구조와 등장인물들의 갈등, 그리고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갈등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지나가는 한 장면에 불가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어찌 보면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1950년대의 과거를 떠올리며 회상하는 듯한 감정이랄까,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때문에 뭔가 비어있는 시간들 채워갈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은 시간의 흐름에 절제하며 지나가는 속도에 있겠다. 스크린에 보이는 시간은 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 또한, 직접적으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익숙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반복적인 일상을 담고 있을 정도다. 청소를 하고, 세수를 하고, 밥을 하고, 잠을 자는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여 준다. 달리 보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지루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묘하게 집중하게 만든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행동들에서 디테일함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은 놀라웠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배경음악처럼 사용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 채소를 손질할 때의 질감이 느껴지는 소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정감 있는 소리, 시골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어렸을 때 들었을 법한 친근한 소리가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무이’ 역을 소화한 아역배우인 ‘루 맨 산’에게서 느낄 수 있는 묘한 분위기가 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도 장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릴 적 ‘무이’는 중산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는 거의 말이 없고, 자산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하녀로써의 직분에만 충실하며 생활해 간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주변을 관찰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조금씩 성정해 간다. 하녀로써 살아가야 하는 권태로움보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성인이 된 후로도 그런 감정들은 정제된 채 살아가게 된다. 어린 ‘무이’와 성인이 된 ‘무이’는 분명 성장하면서 느꼈을 법한 감정들은 변함이 없는 것을 볼 때, 세월이 지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 무이가 그리고 성인이 된 무이의 씻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미묘함의 차이가 오히려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린 무이가 하녀로 들어가면서 10여 년 동안 생활하게 되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겉으로 보이는 중산층 가정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주인집 가장인 남편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가족의 생계는 포목점을 운영하는 주인집 아내가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지만,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주인집 딸이 죽으면서 죄책감을 가지고 무기력한 가장으로 등장하지만, 포목점은 운영이 되지 않고 주인집 아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살림을 하나씩 내다 팔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죽으면서 가세가 극격하게 기울게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만, 1950년대의 베트남의 사회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는 않지만, 전통적인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으로서 짊어져야 할 삶에 대해서 중산층 가정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무이에게 두 번째로 옮겨가야 했던 가정집은 부유하고 세련된 집안으로 피아노를 치는 남자가 홀로 사는 가정집에서 하녀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 성인이 된 무이에게 또 따른 의미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또한 단순한 배경이나 환경이 바뀐다는 의미로의 공간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성숙해지며, 남자와의 사랑을 찾게 되며 글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서 관계 설정은 변화를 겪게 되지만 묘한 장면을 연출하게 되며 조금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무이와 남자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로맨스로 보이게 되지만, 당시 베트남의 권력 구조, 계급 사회를 언급한다면 떼어놓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이 둘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관계 설정으로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무이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보이고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마도 관객들에게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물어보는 듯한 영상으로 마무리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녀인 무이와 부유한 집안의 남자와의 관계 설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하룻밤의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하녀인 무이에게 글을 가르치고, 마지막에는 남자와 함께한 장면이 아닌 임신한 채 홀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서사와는 거리가 먼 영화이다. 대신에 영상 속에서 느껴질 수 있는 빛의 질감, 그리고 소리의 질감과 침묵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는 느낌보다는 영상 속에서 느껴질 공기의 질감에서 느껴질 온도, 냄새가 느껴질 만큼의 자극적인 후각의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내가 사막의 한가운데서 느껴질 법한 바람 속에서 불어오는 온도의 질적 감각, 또는 습도가 높은 어느 날 맡을 수 있는 건조한 후각의 느낌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이해해야 하는 것보다는 감각적 느낌이나 후각적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이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떠한 정서가 분명하게 뒤섞여 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이 있는 상태와 비슷한 느낌일 듯하다.
이 영화는 베트남계 프랑스인 ‘트란 안 홍’ 감독이 만든 영화로 언어는 베트남어이지만 프랑스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주 무대는 베트남 사이공이 배경이지만 베트남에서 허가를 받지 못해 100% 프랑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데, 특히,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받았고, 프랑스 영화 시상식인 세자르 상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같은 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까지 오르며 작품성에는 인정을 받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스틸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