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특별한 공간이었던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 돈 아저씨를 찾아 나선 솔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현실에 지쳐 꿈을 잊고 살아가던 솔은 돈 아저씨의 흔적을 추적하며 과거의 친구들과 추억을 다시 만나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과 열정을 되찾아간다. 작품은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꿈의 가치를 따뜻하게 시선으로 전달하는 소설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나무옆의자 · 2024.04.25 · 한국소설
2026.08.20 ~ 08.27 · 7시간 57분
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는 사라진 동네 비디오 가게와 그곳의 주인이었던 ‘돈 아저씨’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단순히 누군가의 행방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면서 잊고 있었던 사람과 추억,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다시 만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이야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엄청난 성공이나 극적인 인생 역전을 이야기하지 않는데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책을 덮고 나면 왠지 모르게 나 역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이 생긴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야기는 2003년 대전 구도심의 작은 비디오 가게 ‘돈키호테 비디오’에서 시작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솔과 친구들에게 이곳은 단순히 영화를 빌리는 곳이 아니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떡볶이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던 자신들만의 아지트였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돈 아저씨’라고 부르는 장영수라는 인물이 있었다. 스스로를 한국의 돈키호테라 부르는 그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정의와 자유 같은 말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당시의 솔에게는 조금 낯간지럽고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들렸지만, 돈 아저씨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어른이었다. 그곳에서 솔과 친구들은 ‘라만차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2018년. 어른이 된 솔은 외주 프로덕션에서 6년 동안 피디로 일했지만 자신이 기획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나고 만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솔은 좌절한 채 고향 대전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솔은 우연히 과거 돈키호테 비디오가 있던 장소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을 만난다. 비디오 가게는 이미 사라지고 카페로 바뀌었지만 지하에는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래된 비디오와 책, 여러 물건과 돈 아저씨가 남긴 『돈키호테』 필사 노트까지. 그 공간에 다시 들어선 순간 솔에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한빈으로부터 돈 아저씨가 3년 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솔은 방송 피디였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를 만들고 자신을 ‘찐 산초’라고 부르며 한빈과 함께 돈 아저씨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한 사람을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주인공 '솔'은 어린 시절 돈키호테 비디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라만차 클럽의 일원이다. 방송 피디가 되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신의 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돈 아저씨를 찾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좋아했던 것과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다시 발견해 간다. 돈 아저씨 '장영수'는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이자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영화와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다. 자신 역시 영화감독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쓰고, 세상의 불의와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다. '한빈'은 돈 아저씨의 아들이며, 솔과 성격이 달라 끊임없이 티격태격하지만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솔과 함께 움직인다. 두 사람은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돈 아저씨가 살아온 시간을 하나씩 알아간다. 이 밖에도 어린 시절 돈키호테 비디오를 함께 드나들었던 "라만차 클럽 친구들"과 돈 아저씨의 대학 동창, 출판사 동료, 영화계 사람들은 그의 과거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솔과 한빈은 돈 아저씨의 흔적을 따라 여러 사람을 찾아간다. 대학 시절 친구, 학원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 출판사 동료와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 아저씨는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사람들의 증언이 쌓이면서 질문은 조금씩 달라진다. ‘돈 아저씨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린 솔에게 그는 조금 별난 비디오 가게 아저씨였다. 그러나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솔은 돈 아저씨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쳐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냈으며,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솔은 왜 그가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불렀는지 이해하게 된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고 무모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기도 하다. 돈 아저씨 역시 말로만 돈키호테를 이야기했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돈키호테처럼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돈 아저씨를 찾아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대전으로 돌아온 솔은 처음에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오랫동안 방송 일을 했지만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리를 잃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돈키호테 비디오의 지하실에서 다시 카메라를 잡으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와 책을 소개하고, 돈 아저씨가 남긴 『돈키호테』 필사본을 읽어주고,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다. 처음에는 돈 아저씨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유튜브 방송이 어느 순간 솔이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간다. 중요한 것은 솔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중학생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대신 과거의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 때문에 가슴이 뛰었는지를 현재의 삶 속에서 다시 발견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점들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다 보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갑자기 끊어지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반드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것, 오래전에 나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과 말,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의 돈키호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 사이에 놓인 관계이지 않을까 싶다. 돈키호테 비디오에 모였던 라만차 클럽의 아이들, 돈 아저씨와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솔의 여정에 동참하는 아미고스까지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된다. “함께 꿈을 나누고 모험을 떠난 순간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 문장이 소설의 따뜻함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떤 사람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솔에게 돈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돈 아저씨는 솔에게 정답을 가르쳐준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보여주고 책을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도록 응원해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솔은 그때 받았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돈키호테 비디오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진 관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오래된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 시간이 흐른 뒤 한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인물들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다. 오히려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제는 사라진 동네 비디오 가게라는 공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비디오 가게였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서점이나 학교 앞 문방구, 동네 분식집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장소 자체보다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그 시절의 자신일 것이다. 그래서 돈키호테 비디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그런 장소와 사람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 생각했던 어른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솔이 자신의 실패를 지워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송국에서 밀려난 경험도, 대전으로 돌아와 방황했던 시간도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의 돈키호테』가 건네는 위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지금 조금 길을 잃었다고 해서 삶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며,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시 길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덮고 나니 뭔가 모를 희망이 남았다. 당장 무엇을 해야겠다는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의 삶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적은 가능성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나의 돈키호테』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 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람이 남긴 말과 마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주인공 솔에게는 그 사람이 돈 아저씨였던 셈이다. 그리고 돈 아저씨를 찾아 나선 솔은 결국 그 사람을 통해 현재의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그래서 『나의 돈키호테』는 내게 누군가의 꿈을 좇는 이야기라기보다 "길을 잃은 사람이 추억과 사람을 따라가며 다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읽는 동안에는 오래된 추억을 꺼내보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평온했고, 책을 덮은 뒤에는 한 가지 생각이 조용히 남았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
다시 걸어가면 되니까."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자연스럽게 품게 해 준다는 점이 『나의 돈키호테』가 가진 가장 따뜻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한 교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인정받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깨기 위해 나섰다고. 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