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윤은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악은 특별한 인간이 아닌, 생각하기를 포기한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책

by kimdirector· 2026. 8. 31. 08:04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전범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아이히만은 선천적인 악인이 아니라, 그저 생각함에 무능력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생각함에 무능력하다면, 누구든 아이히만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

 

윤은주

세창미디어 · 2022.06.29 · 인문학

 

2026.07.29 ~ 07.31 · 4시간 25분

 

 

 

 

 

한나 아렌트를 처음 접한 책은 『인간의 조건』이었다. 인간의 삶을 노동, 작업, 행위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바라보며,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한 책이다.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와,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보면 되겠다. 특히 궁금했던 것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대표하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두고, 아렌트는 왜 그를 잔혹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표현했을까. 원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원작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용하는 밀리의 서재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책이 윤은주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였다.

처음에는 원작을 압축해 설명하는 해설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아이히만 재판의 내용뿐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 아이히만의 행적, 그리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배경까지 함께 짚고 있어 오히려 원작을 읽기 전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린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강제이송을 담당하며 수백만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홀로코스트의 핵심 실무자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법정에 끔찍하고 잔혹한 괴물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법정에 앉아 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은, 평범한 관료처럼 보였다. 재판에서도 자신이 유대인을 증오해서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의 명령은 법이었고, 자신은 공직자로서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논리로 주장을 해 나갔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녀가 법정에서 발견한 아이히만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악마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범죄를 가볍게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섬뜩한 문제였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보내는 일에 가담할 수 있었을까. 아렌트가 발견한 핵심은 '생각함의 무능력'이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다.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로 누군가가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명령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판단을 히틀러와 나치라는 거대한 조직에 맡겨버렸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리던 '악'의 모습도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흔히 악한 행동 뒤에는 강한 증오나 잔혹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의 사례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음을 드러낸다. 사람은 적극적으로 악을 선택하지 않고도 악에 가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명령이니까 따르고, 규칙이니까 지키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니까 의심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 이러한 평범한 태도가 상황에 따라 거대한 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악의 평범성'이 지닌 가장 섬뜩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히만이 칸트의 정언명법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을 의무에 충실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칸트가 말한 도덕은 타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성을 사용해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히틀러의 명령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결국 문제는 단순히 명령에 복종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이 옳은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일을 포기했다는 데 있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언어의 문제였다. 나치는 유대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살해', '학살', '박멸' 같은 단어 대신 '최종 해결', '특별취급'과 같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단지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언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 자체를 무디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계속해서 '처리'나 '해결'이라고 부른다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죽음은 언어 뒤로 사라진다. 인간을 죽음으로 보내는 행위가 행정 업무가 되고, 학살은 보고서 속 숫자로 바뀐다. 결국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는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하기를 포기한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투적 언어를 반복했고, 그 언어 속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처음 읽었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인간을 혼자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본다. 특히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말과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히만을 바라보면 두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의 조건』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러한 인간적 능력을 포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처럼 느껴졌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판단을 조직에 넘겨버렸다.

결국 두 책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이어진다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역시 아이히만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아이히만이 처음부터 잔혹한 괴물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가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맡은 업무를 잘 수행하려 하며, 명령에 충실한 평범한 관료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악의 평범성'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상사가 지시했으니까, 조직의 규칙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니까,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하고 있을까. 물론 우리의 평범한 조직생활과 아이히만의 범죄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조직이나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태도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직접 결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은 다음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아이히만을 품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아이히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아이히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노력일 것이라 생각한다. 왜 이런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를 질문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려는 노력.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기』는 악한 인간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악에 가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조건』을 읽으며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면, 이번 책을 통해서는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추었을 때 무엇을 잃게 되는가를 떠올리게 됐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내게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아직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원작을 읽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을 먼저 읽음으로써, 아이히만 재판과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원작을 읽게 된다면, 아렌트가 법정에서 무엇을 보았고 어떤 사유를 통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좀 더 깊게 이해하지 않을까 샆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내게 남은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악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단순히 선한 마음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악의 평범성'은 아이히만이라는 한 명의 전범을 설명하는 과거의 개념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점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로 오래 남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인상적인 문장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고,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를 억압하는 반인륜적인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경험은 정치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 생각은 할 수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이 강요된 삶, 살인조차 무감각해져 가는 도덕이 무너진 삶, 한 조각의 자유도 꿈꿀 수 없는 삶,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단순한 일상이 사치가 되는 삶 그 자체였다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자유야말로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며 그것의 현실화가 곧 정치이다. 따라서 인간은 시작이고, 그 시작은 자유이며, 자유의 실현은 정치이다.

생각하지 않는 행동은 공허하며 행동하지 않는 생각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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