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경남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과 그의 다섯 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흥망과 비극을 그린 소설. 김약국 집안은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과 가족에게 이어지는 불행한 운명 속에서 점차 몰락해간다. 다섯 딸인 용숙·용빈·용란·용옥·용혜는 각기 다른 성격과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과 결혼, 가족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저마다의 상처와 비극을 겪는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가족의 운명과 시대적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박경리의 대표적인 소설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다산책방 · 2023.04.27 · 한국소설
2026.08.12 ~ 08.20 · 10시간 41분
박경리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토지』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대하소설이자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격변하는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방대한 이야기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김약국의 딸들』을 읽기 전에는 『토지』 이전에 발표된 박경리의 대표작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한 가족의 몰락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사랑, 운명,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이렇게 강렬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비극이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그 밑바닥에는 이상할 정도로 살아야겠다는 강한 삶의 생명력이 느껴졌다고 할까. 『김약국의 딸들』은 남해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 집안의 몰락을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한 집안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비극은 김약국의 대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한 세대 앞에서부터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김봉제의 동생 '김봉룡'은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두 번째 아내 '숙정'은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숙정을 사모하던 욱이 도령이 나타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아내를 의심한 봉룡은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나고, 억울함과 치욕을 견디지 못한 숙정은 비상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들의 아들 '김성수'라는 인물 즉, 훗날의 김약국은 큰아버지 김봉제 부부의 손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약국과 재산을 물려받아 한실댁과 결혼하고 다섯 딸을 두며 통영의 유지로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부족할 것 없는 집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김약국 집안은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치 부모 세대에서 시작된 비극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욕망과 선택, 시대의 변화가 서로 얽히면서 결국 집안 전체를 몰락으로 끌고 간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목 그대로 "김약국의 다섯 딸"이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성장했지만 다섯 딸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른 성격과 삶을 보여준다. 큰딸 '용숙'은 욕망과 현실 감각이 강한 인물이다. 과부가 된 뒤에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에 휘말리지만, 동시에 돈에 대한 뛰어난 감각으로 재산을 축적한다. 도덕적인 기준만으로 보면 비판받을 부분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강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둘째 '용빈'은 다섯 자매 가운데 가장 이성적이며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서울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자신의 직업을 가지며, 결혼만을 여성의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족에게 벌어지는 비극을 바라보면서도 감정과 운명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 한다.
셋째 '용란'은 아름다운 외모와 강렬한 욕망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이성이나 사회적 규범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머슴과 관계를 맺고, 결국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남자가 다시 나타나자 그와 달아나면서 김약국 집안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앞당긴다. 용란은 욕망을 억압하는 전통적인 사회와 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이 충돌했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처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용옥'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 다른 자매들에 비해 조용하고 성실한 인물이다. 집안의 어장 사업을 맡고 있던 '서기두'와 결혼하지만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 속에서 고통받는다. 가족에게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용옥의 모습에서는 자신의 의지보다 가족과 사회가 정해놓은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비극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막내 '용혜'는 김약국이 특히 아끼는 딸이다. 다른 자매들보다 아직 어린 그녀는 집안의 비극을 만들어낸 세대라기보다 그 비극을 지나 새로운 삶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는 많디 등장하지 않아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다.
그리고 이 다섯 딸의 중심에는 아버지 김약국, 김성수가 있다. 김약국은 악한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족을 일부러 파괴하려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딸들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아버지도 아니다. 오히려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가족을 지키며 살아가려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가족의 몰락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인물로 등장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 과거의 질서와 방식에 머물러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결국 재산은 조금씩 사라지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사건들마저 막아내지 못한다. 그가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이 더 이상 새로운 시대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약국의 몰락은 한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구시대의 몰락"처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처음에는 모든 비극이 마치 김약국 집안에 내려진 운명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봉룡과 숙정에게서 시작된 죽음과 원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김약국의 가족에게 계속해서 벌어지는 불행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집안에 어떤 저주라도 내려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생각이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이 운명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물들의 욕망과 잘못된 선택, 가족 내부의 갈등, 여성에게 강요된 결혼과 역할,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세대의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혀 비극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김약국의 딸들』에서 말하는 운명은 인간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라기보다 "시대와 사회, 가족, 개인의 선택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결과"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섯 딸의 삶을 바라보면 당시 여성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삶의 폭이 얼마나 좁았는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랑과 결혼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족과 신분,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시선이 여성들의 삶을 끊임없이 제한한다. 용란과 용옥의 삶이 특히 그렇다. 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비극으로 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불행해진다. 욕망에 충실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사회의 규범을 따른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결국 각 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려 하지만 그 선택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그런 점에서 가장 대비되는 인물이 '용빈'이지 않을까 싶다. 용빈은 다른 자매들과 달리 신식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며 경제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틀에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용빈은 단순히 다섯 딸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인물이라기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약국이 과거를 상징한다면 용빈은 미래를 향한다. 이 대비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김약국 집안은 결국 몰락한다. 가족을 지탱하던 재산도, 관계도, 과거의 질서도 무너진다. 수많은 죽음과 불행을 거치며 한때 통영의 유지였던 집안은 폐허처럼 남는다. 그런데 그 폐허 속에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용빈과 용혜가 남겨진 과거를 뒤로하고 서울로 떠난다. 개인적으로는 이 마지막이 『김약국의 딸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약 이야기가 집안의 몰락으로만 끝났다면 이 작품은 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주는 소설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며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다.
"비극은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김약국의 딸들』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처럼 느껴졌다. 작품 속에는 죽음과 몰락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사랑은 실패하고, 가족은 무너지며,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시대의 굴레 속에서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살아남고,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나간 일 말하믄 뭐하겠노. 다 팔잔 걸 할 수 있나. 그래도 살아야제. 죽으나 사나.”
이 말이 작품 전체의 정서를 압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거창한 희망이나 낙관이라기보다 본능적인 살아가야 겠다는 삶의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김약국의 딸들』은 단순히 비극적인 소설이 아니고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대적 배경 역시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김약국 집안의 몰락과 함께 오래된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구세대가 과거의 규범에 붙잡혀 있다면 용빈과 같은 젊은 세대는 교육과 직업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간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김약국의 딸들』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이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고 약점이 있으며, 잘못된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시대에 뒤처지고 누군가는 욕망 때문에 무너지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쉽게 심판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김약국 집안의 비극을 구경하는 듯했던 나에게 어느 순간 각각의 인물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바라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언제나 사람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부모 세대의 상처와 가치관이 다음 세대의 삶까지 무겁게 짓누를 수 있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을 조금더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결국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김약국의 집안은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용빈과 용혜는 폐허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지만,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아직 앞으로 걸어갈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김약국의 딸들』의 결말은 마냥 비극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다.
박경리가 말했듯 삶이 문학보다 먼저라면, 이 소설의 수많은 비극 역시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가족도, 시대도, 자신에게 찾아올 불행도 모두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끝까지 선택해야 한다. 결국 『김약국의 딸들』은 "한 집안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어떻게 다시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죽음과 상실, 욕망과 좌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끝에서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것은 결국 삶이라는 점. "삶은 때로 잔인할 정도로 많은 것을 빼앗아가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은 다시 살아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그 끈질긴 생명력이야말로 『김약국의 딸들』을 단순한 가족의 비극을 넘어 오랫동안 읽히는 작품으로 만드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