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한 남자가 결국 전쟁과 운명의 잔혹함 앞에서 상실을 마주하는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

by kimdirector· 2026. 9. 7. 08:01
단순한 전쟁 소설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 개인의 사랑과 인간적 희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헤밍웨이는 절제된 문체와 담담한 서술을 통해 전쟁의 허무함, 사랑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상실의 무게를 표현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역 이종인 · 열린책들 · 2012.12.15 · 영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9

 

2026.08.01 ~ 08.10 · 11시간 41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는 것은 『노인과 바다』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헤밍웨이라는 이름은 워낙 유명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직접 읽어본 그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가 유일했다.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삶에 대한 태도를 묵직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선택한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노인과 바다』가 거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한 인간의 의지와 존엄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부조리 속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소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붙잡으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소설이자 프레더릭 헨리와 캐서린 바클리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작품을 단순히 전쟁소설이나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전쟁과 사랑을 통해 인간이 삶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아무리 간절하게 붙잡으려 해도 결국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상실과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소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이다.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군에서 구급차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로 복무한다. 그는 처음부터 거창한 신념이나 애국심으로 전쟁에 참여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이다. 전쟁은 그에게 영웅적인 사건이 아니다. 죽음과 부상, 혼란과 무질서가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다.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그 죽음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정의로운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점점 불분명해진다.

 

그런 헨리의 삶에 캐서린 바클리가 들어오게 된다. 캐서린은 영국인 간호사로,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진지한 사랑이라기보다 전쟁의 공포와 외로움을 잠시 잊기 위한 감정에 가까워 보인다. 헨리 역시 처음부터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관계는 점차 변화를 겪으며 발전하게 된다. 헨리는 전선에서 박격포 공격을 받아 심각한 부상을 입고 밀라노의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곳에서 다시 캐서린을 만나 치료받으며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서로의 존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장난처럼 시작했던 관계는 진정한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전쟁과 사랑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관계를 끊어 놓지만, 사랑은 두 사람을 연결한다. 전쟁터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너무나 쉽게 사라지지만 캐서린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헨리에게 한 사람의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캐서린은 헨리에게 단순한 연인이 아니다. 전쟁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레더릭 헨리는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군 구급차 부대의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전쟁과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만, 부상과 후퇴, 캐서린과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캐서린 바클리는 영국인 간호사이자 헨리가 사랑하는 여성이다.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상처가 있으며 헨리와의 사랑을 통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사랑과 안식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작품의 비극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리날디는 헨리의 친구인 이탈리아군 군의관이다.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헨리와 농담을 주고받지만, 그 역시 전쟁이 지속되면서 점차 피로와 허무에 잠식된다. 그의 변화를 통해 전쟁이 사람의 정신까지 어떻게 소모시키는지를 엿볼 수 있다. 군종 신부는 헨리와 가까운 인물로, 전쟁 속에서도 신앙과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려 한다. 냉소적인 헨리와 대비되면서 사랑과 신념, 삶의 의미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부상에서 회복한 헨리는 다시 전선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이탈리아군은 카포레토에서 대규모 후퇴를 시작한다. 이 후퇴 장면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가장 강렬한 부분 중 하나일 듯 싶다. 질서와 규율은 무너지고 군인과 민간인이 뒤섞여 도망친다. 전쟁이 내세우던 명예와 애국심 같은 말들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뿐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탈리아군 헌병대가 후퇴하는 장교들을 붙잡아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결 처형한다는 점이다. 적군에게 죽는 것도 모자라 같은 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헨리는 전쟁이라는 체계 자체에 완전히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 역시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자 헨리는 강으로 뛰어들어 탈출한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군대와 전쟁에 작별을 고하고 자신이 살 길을 찾아간다. 그동안 자신을 묶고 있던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이제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은 국가도, 명예도, 전쟁의 승패도 아니다. 오직 캐서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헨리는 캐서린과 재회하고 두 사람은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전쟁터의 폭발음도 없고 군대의 명령도 없다. 캐서린은 헨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며 두 사람은 새로운 가족과 미래를 꿈꾼다. 여기까지 보면 전쟁에서 벗어난 두 사람에게 드디어 행복이 찾아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들에게 그런 결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캐서린은 출산을 위해 병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난산이 이어지고 아이는 사산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캐서린마저 출혈로 죽음을 맞는다. 헨리는 전쟁에서는 살아남았다. 수많은 총탄과 포탄을 피했고, 부상을 견뎠으며, 자신을 죽이려던 군인들에게서도 탈출했다. 마침내 무기를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전쟁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죽음 자체에서는 도망칠 수 없었다. 이 결말이 특히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이 캐서린을 죽인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악의가 두 사람의 행복을 파괴한 것도 아니다. 전쟁에서 벗어난 뒤 찾아온 너무나 평범한 출산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결국 인간에게 죽음은 전쟁터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소설 속의 말처럼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지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규칙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가 단순한 반전소설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작가다. 자신 역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고 부상을 입었다. 그렇기에 작품 속 전쟁은 낭만적이거나 영웅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전쟁은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이며 때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조리하다. 사람들은 국가와 명예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전쟁터에서는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조차 잊어간다. 이런 모습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잃어버린 세대'의 허무와도 연결된다. 그들은 기존 세대가 믿었던 국가, 종교, 명예, 영웅주의와 같은 가치가 전쟁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그런 면에서 프레더릭 헨리 역시 그런 인물이다. 처음부터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그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국가나 명예 같은 거대한 가치에서 더욱 멀어진다. 대신 캐서린이라는 한 사람과의 사랑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허무주의에만 머무르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이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단순히 전쟁에 작별을 고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헨리는 군복을 벗고 전쟁에서 이탈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문자 그대로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과 결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작별'의 의미가 훨씬 폭넓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헨리는 전쟁과 작별하고, 군인이라는 자신의 신분과도 작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캐서린과 아이,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와도 작별해야 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의 작별이 말하는 의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과의 작별에서 시작해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과의 작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제목에는 전쟁을 거부한다는 의미와 함께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국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실의 의미까지 담겨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헤밍웨이가 전쟁과 죽음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도 문장은 담담하다. 캐서린의 마지막 순간조차 독자에게 억지로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절제된 문체 때문에 상실의 감정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특히 마지막에 홀로 남은 헨리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는 캐서린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서 죽음을 막을 수도 없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단순히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소설로만 읽고 싶지는 않았다. 헨리는 전쟁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며 모든 것에 냉소적이었지만 캐서린을 사랑하면서 적어도 한 사람의 존재가 자신의 삶에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사랑은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했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는 것이 인간이 삶의 허무에 맞설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내게 남은 것은 단순한 절망보다는 상실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그럼에도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전쟁은 인간에게서 수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사랑 역시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삶은 때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은 채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인 동시에, 허무한 세계에서도 인간이 끝까지 붙잡으려 하는 사랑과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에 홀로 남은 헨리가 빗속을 걸어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그는 전쟁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에도 작별을 고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잃었기에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분명해졌다. 어쩌면 헤밍웨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결국 많은 것을 잃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라고 싶었던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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