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미묘한 균열과 자기기만, 그리고 말과 이름이 지니는 의미의 허상을 탐구하며, 감상이나 도덕적 판단보다는 거리 두기와 관찰을 통해 인물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은희경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지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문학동네 · 2022-01-18 · 한국소설
2026.02.14~ 02.22 · 5시간 21분
은희경 작가의 소설 ‘새의 선물’ 이 후로 두 번째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은희경 작가의 2022년에 출간한 연작 소설집으로 미국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곳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내면의 세계를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네 가지 작품에 펼쳐 보이고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뜻밖의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감각을 알아가게 되고 인생에서 가장 예외적인 시간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을 은희경 작가의 이름으로 뉴욕에서 경험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투영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조금 더 다가는 모습들을 네 가지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읽어 본 은희경 작가의 소설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여성들을 주제로 한다는 데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여성이기에 특별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새의 선물’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소설 속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명제에 있다. 인간관계를 둘러싼 문제를 작가 특유의 삼세함과 개성적인 어법으로 펼쳐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속에서는 승아라는 인물이 한국에서의 힘든 직장생활 속에서 지쳐갈 때쯤, 뉴욕에 사는 친구 민영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승아는 인스타그램에서 보아 온 민영의 뉴욕생활을 바라보며 동경해 왔고, 자유로운 일상을 기대해 왔지만, 민영의 현실적인 오래된 집과 직장의 불안한 삶을 접하면서 서로가 가진 현실과 기대 속에서 느끼는 간극을 알게 된다. 승아는 민영을 도와주고 싶지만, 민영은 승아의 도움에 불편해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오해가 쌓이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친구 사이의 관계가 익숙함 속에서도 오해와 착각을 일으키며 갈등을 낳게 되고,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야기, ‘장미의 이름은 장미’ 속에는 40대의 ‘수진’은 이혼 후 홀로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오게 된다. 어학연수 중에 같은 반이 된 세네갈 출신인 마마두를 알게 되며 서로 다른 문화, 나이, 언어를 가진 두 사람은 어설픈 영어로 소통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해 가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며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한다. 등장인물인 ‘수진’은 통하지 않으며 어줍게 나누는 대화로는 소통하기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기대는 결국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고, 타인과의 거리를 통해서 여전히 자기만이 세계에 갇혀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이야기,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속에 등장하는 현주는 연극에 쓸 극작을 쓰기 위해, 그리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뉴욕에 오게 된다. 여러 번 뉴욕에 왔었고, 자신에게는 익숙함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친구인 로언과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오랜만에 만난 관계에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로언의 친구들과도 언어가 통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없는 어색함을 통해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현주를 바라보는 로언은 영어를 배워보라고 권하지만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느낄 법한 소외감을 통해서 서로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그런 것들을 극작의 소재로 활용해 볼 생각을 하게 된다. 현주에게는 익숙한 뉴욕이지만, 여전히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하고 오로지 외부인으로 취급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 속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는 소설가인 ‘나’는 아시아 문학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뉴욕을 찾아오게 된다. 어머니와의 동행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오래된 과거와 정체성을 담은 오래된 우편물을 발견하면서 어머니의 진심과 삶의 맥락을 이해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하게 여겨왔던 가족이라는 관계가 여행을 통해서 새롭게 전환되어 가며, 어머니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해 간다. 타인이라고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어머니의 삶과 기억을 가진 우편물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네 가지 이야기 속에는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처해진 환경 속에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불편함을 가지게 되면서 오해를 만들어 내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서로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성 간의 인간관계 안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인해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낯선 공간에서 어머니에게서 받았을 새로운 모습에 익숙함이 느껴지지 않은 점을 통해서 ‘나’라는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점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장소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그 가치가 가지는 차이로 인해 진정한 이해는 쉽지 않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 안에서 느꼈을 법한 소외감은 같은 공간 속에서 숨 쉬고 살고 있지만, 타인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환경 속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받았을 법하고, 그래서 편견을 가지게 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마주하게 될 듯하다. 때문에 사람사이의 거리, 오해는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국 낯선 공간에서 서로의 어색함과 낯섦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불완전함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은희경 작가는 네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관계의 한계와 기대를,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에서 생기는 거리와 어긋남을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낯선 공간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새롭게 마주하며 자기 인식의 폭을 조금씩 넓혀 간다고 하면 맞을 듯하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소설 속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뉴욕은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배경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오래된 관계가 없는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직 자기 기대와 타인에 대한 오해와 감정의 민낯만으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낯선 장소는 관계를 투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 처럼, 같은 언어권에 있었다면 유지되었을 관계가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에서는 빠르게 균열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낯선 장소에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보다는 기대를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번 방문한 적인 있는 뉴욕 속에서 여전히 자신은 이방인이었음을 얘기하고 있다. 낯선 도시에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인해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관찰자적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낯선 도시 뉴욕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지만, 종종 사람들과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 확인으로 관계를 맺기보다는 거리 두기를 선택한 인물들의 정직함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소통에 대한 주제 의식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문법적으로 소통은 가능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계속 어긋나게 된다. 결국 주제의식의 차이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침묵으로 오해를 일으키게 된다. 언어가 통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며, 소통의 실패는 언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해석의 방식의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얘기한다. 타인과의 소통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인 아닌 애초에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라는 명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명제, 그리고 뜻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낯선 공간은 불완전함을 가속시키고, 언어는 그 한계를 가릴 수 없고, 관계는 이해가 아니라 감내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갈무리할까 한다.
마지막으로 은희경 작가의 ’ 작가의 말’의 말미에서 한 말을 전해 본다.
“언젠가 썼듯이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애쓰기를 바랐다. 고독 속에서 연대하기를 바랐고. 그러니 이 반성문을 쓸 때의 내가 진심이었기를, 그것이 삶과 책의 판관들에게 무사히 전해져 내가 사면을 받고, 쓰는 자로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인상적인 문장
그녀는 무책임한 낙관과 자기 연민이 불러오는 비관 둘 다를 경계해 왔다.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만은 아니란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장미의 이름은 장미-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내용 중에서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장미의 이름은 장미-장미의 이름은 장미> 내용 중에서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내용 중에서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하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아가씨 유정도 하지>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