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 자신의 과거와 내면을 추적해 가며, 사이코패스의 탄생 과정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기원을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 소설이다. 기억의 공백과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악이 어떻게 형성되고 자각되는지를 치밀하게 그린 작품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 2016.05.14일 · 한국소설
2026.02.23 ~ 03.03 · 10시간 25분
'종의 기원’은 몇 해 전에 읽으려고 했었지만 그때는 전자책 서비스가 종료되어 있었고, 최근에 다시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이제야 읽게 되었다. 다시 서비스되기를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늘 나에게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에 읽게 된 정유정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의 소설은 강렬한 서사와 인간 내면의 깊은 어둠을 파고드는 작품들을 출간하면서 나에게도 인상 깊은 작가로 각인되어 왔다. 물론 소설 두 권을 읽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독자를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흡입력 있게 읽을 수 있을지는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정유정 작가가 추구하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종의 기원’ 또한, 정유정 작가가 추구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이 갖고 있는 어두운 단면과 폭력성, 그리고 죄책감, 공포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겠고, 단순하게 인간이 가지는 본질 속에서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책임과 윤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를 안고 살아가는 대학생인 ‘유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범죄 심리 스릴러 소설이다.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주인공 유진의 과거와 본성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유진은 자신의 방에서 잠을 깨면서 시작된다. 집 안에서 진동하는 피 냄새와 이상한 흔적들을 발견하고, 곧 자신의 어머니가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유진 자신은 어젯밤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 하지 못하고, 벌어진 상황을 하나씩 정리해 간다. 그리고 어젯밤에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추적해 가게 된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어젯밤의 기억을 시간대별로 거슬러 가던 유진은 어머니의 죽음에 자신이 개입되었다는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런 의구심을 찾아가게 되는 단서를 어머니가 남긴 “일기인지 메모인지” 모를 글들을 통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속에 있는 폭력성을 과거로부터의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 보게 된다.
어머니 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의 또 다른 여성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아동 심리학자인 자신의 이모까지 죽이면서 극대화한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기억 속에서 헤매기 시작하지만, 이 모든 살인사건이 자신이 저지른 것을 알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렸을 때 함께 자란 자신의 친 형을 죽인 것까지 하면 모두 네 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친형까지 죽였다는 진실은 잊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남긴 “일기인지 메모인지” 모를 노트 속에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친 형이 죽고 새로 입양된 형까지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이런 이야기의 핵심적인 내용은 유진이라는 청년이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충동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친형을 죽게 만든 사건과 여러 가지 위험한 행동을 보이게 되는데, 이를 간파한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신과 약을 먹여 감정을 억제해 왔고, 생활을 철저하게 관리해 왔으며, 유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숨기려 했다. 그런 어머니의 통제 속에서 겉으로는 평범하고 유능한 대학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복용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행동들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서 발생하게 된다.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 유진을 찾으려 집 근처 공원에서 젊은 여성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긴장되면서 유진의 본능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진은 점점 자신이 타인과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되고, 과거 속에서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이미 여러 범죄를 지질렀을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유진은 어머니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평범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통제해 왔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유진은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자각하게 되며 죄책감 없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받아들이게 된다. 정유정 작가는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인간이 가지는 본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읽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악한 인간은 만들어지는지, 악한 인간은 태어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고 볼 수 있겠다.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의 내면에 잠식되어 있는 본성을 1인칭 독백 형식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징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진실을 찾아가게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의 선과 악, 본성과 환경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어렵지 않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쫓는 이야기가 아닌 범인을 정해 놓고 왜 그러했는지를 귀명해 가는 이야기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악의 근원에 대한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악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철학적인 서사로 풀어가기보다는 소설적 구성으로 풀어쓰며, 악이 가지는 내면의 심리 상태를 심도 있게 그리고 있다면 맞을 듯하다. 특히, 자신이 어머니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죄책감에 슬퍼하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본성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는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사회가 말하는 도덕이나 윤리와는 거리가 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를 기억한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존재라는 사실을, 사이코패스의 최고 정점에 위치한 프레데터(predator)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일찍부터 간파하여 치료하기보다는 약을 통해서 통제되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후회나 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신하며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 동시에 인간 안에 존재하는 악의 본성과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고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의 기원’은 악이 단순하게 환경이나 사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이미 존재할 수 있는 본성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 본래 선한 존재인지, 아니면 악의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겉으로는 평범한 이웃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대면할 때, 겉모습만으로서는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인 유진의 어머니는 아들이 위험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회에서 받을 편견으로부터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치료를 거부하고, 일상에서 평생 통제하며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는 가족이 한 개인의 본성과 폭력성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우리 사회에 되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통해 사회가 인간의 위험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 의식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종의 기원’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악의 근원적인 질문, “인간의 악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인간 본성과 사회의 책임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드는 소설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이후 숱한 몽정이 있었다. 죄책감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 감춰진 욕망의 은유적 환상에 불과했다 꿈속에선 마음먹은 일들이 모두 일어나고, 욕망이 밑바닥에선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다. 그게 보통 인간이며 나 역시 그 범주 안에 있었다. 특별한 별종으로 내 위치를 격상시킬 욕망 같은 건 추호로 없었다.
<종의 기원-포식자>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