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의 완벽한 조각을 완성하는 프리퀄 단편소설, 스스로 부서지고 흠집 난 '파과'가 되기로 결심한 한 소녀가 차가운 칼날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서늘하고 강렬한 탄생기

파쇄
구병모
위즈덤하우스 · 2023-03-08 · 한국소설, 단편소설
2026.07.20 ~ 07.21 · 1시간 28분
구병모의 '파쇄'는 작가의 대표작 '파과'를 읽은 사람이라면 제목부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소설이다. '파과'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인물은 단연 '조각'이다. 60대 여성 킬러라는 설정부터 독특하지만, 단순히 뛰어난 살인 기술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죽음과 폭력을 일상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고독과 노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파과'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조각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도 가물가물 생각난다.
'파쇄'는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제시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파과'가 이미 완성된 킬러 조각의 노년을 보여주었다면, '파쇄'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 조각을 바라본다. 때문에 이 소설은 '파과'의 단순한 전편이나 부록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잔혹한 성장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야기 속 조각은 아직 십 대의 어린 소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세계는 또래 아이들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세계에 들어선 조각은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망설임이나 연민이 미덕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무엇보다 타인을 죽여야 할 순간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소설 속 “일단 마음먹고 칼을 집었으면, 뜸 들이지 마.”라는 말은 조각이 들어선 세계의 규칙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번 칼을 들었다면 망설여서는 안 된다. 상대방보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각이 배우는 것은 단순한 싸움의 기술이 아니다. 타인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훈련 역시 가혹하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방법, 신체의 약점을 찾아내는 방법,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몸에 새긴다. 저 인간을 죽이기 전에는 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없으며 마주한 사람을 제거하기 전에는 그 방에서 나오면 안 되는 세계에서 조각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변화시켜 간다.
그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설이 조각을 처음부터 특별한 능력을 가진 킬러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파과'에서 만났던 조각은 오랜 경험과 훈련을 통해 이미 완성된 인물이지만, '파쇄'의 조각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고통받으며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도전한다.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몸을 만들어야 하고, 몸이 먼저 판단하고 반응할 정도로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몸과 정신이 서서히 킬러의 것으로 바뀌어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파쇄'를 읽으면서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성장과 파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장과 같은지는 고민이 되겠지만, 파쇄 속의 조각은 킬러가 되기 위해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어찌보면 같은 맥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장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한 사람의 자아를 완성해가는 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파쇄'에서의 성장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조각은 성장하기 위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망설임을 버려야 하고, 두려움을 버려야 하며, 연민과 같은 감정도 억눌러야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완벽한 킬러에 가까워지기 위해 성장을 한다는 개념을 대입하면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부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면 '파쇄'에서 가장 잔혹하게 느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조각은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지만, 강해질수록 평범한 삶에서는 멀어진다. 타인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조금씩 파괴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제목인 '파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파쇄란 단순히 무언가를 부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게 부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각이 배우는 기술은 다른 사람을 파쇄하는 방법이다. 상대의 몸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제거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파쇄되고 있는 것은 조각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소녀로 살아갈 가능성, 타인을 믿을 수 있는 마음,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삶이 하나씩 부서진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다시 모여 우리가 '파과'에서 알고 있는 '조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조각이라는 이름 역시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 싶다. '조각'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라기보다 어떤 것이 부서지고 남은 파편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전하게 선택해서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는 과정에서 수없이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진 존재처럼 보여지기 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조각이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강함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어야 했는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대신 그녀는 평범한 삶을 잃었다.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방법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육체적으로는 점점 강해지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은 점점 좁아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동안 조각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파쇄'를 읽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살아남도록 만들어진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조각은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과 감각, 사고방식까지 바꾸도록 만들어진 사람이다.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고, 죽이기 위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렇게 생존은 그녀에게 본능이 아니라 기술이 되어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파과'의 조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파쇄'를 먼저 읽었다면 한 소녀가 점점 킬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파과'를 읽은 뒤 '파쇄'를 읽으면 느낌이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미 조각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파과'에서 노년의 조각은 오랫동안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왔고, 자신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파쇄'에서는 정반대로 그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소설에서는 만들어지는 몸을, 다른 소설에서는 쇠퇴하는 몸을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파쇄'와 '파과' 이 두 소설의 제목도 묘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쇄'가 한 인간이 부서지면서 킬러 조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라면, '파과'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무르익고 쇠퇴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파과'에서 보았던 조각의 행동 하나하나도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노년의 조각이 보여주는 냉정함과 단단함 뒤에는 '파쇄'에서 겪었던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쇄'는 짧은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난 뒤 남는 질문은 결코 짧지 않을 듯하다. 인간은 어디까지 부서져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을 과연 온전히 자기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게 된다. 조각은 분명 스스로 칼을 들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폭력이 먼저 그녀를 만들어놓았다면, 그것을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파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살인 장면이나 혹독한 훈련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다른 가능성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부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이 부서져야 했던 소녀였고, 그렇게 산산이 부서진 삶의 조각들이 다시 모여 마침내 '조각'이라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래서 '파쇄'는 킬러 조각의 탄생을 보여주는 소설인 동시에, 한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한 사람의 현재만을 보고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지금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과거의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파과'를 통해 이미 노년의 조각을 알고 있었기에 '파쇄'에서 만난 어린 조각의 모습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강인하고 냉정한 킬러의 탄생을 보는 통쾌함보다는, 그 강함을 얻기 위해 한 소녀가 치러야 했던 대가가 먼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강인한 사람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강하다는 것은 수없이 부서지고도 살아남았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파쇄'는 바로 그 부서지는 순간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조각'이라는 인물의 이면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킬러의 탄생기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