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이희영, ‘낙하’ 부모의 재혼으로 남매가 된 두 남녀의 위태로운 사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흡입력 있게 그려낸 소설

by kimdirector· 2026. 8. 10. 08:01
단순히 재혼 가정에서 발생한 사랑의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라기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감정과 삶이 희생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외면했던 사람이 뒤늦게 자신의 비겁함을 마주하는 이야기로 누군가의 사랑을 희생시켜 유지되는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일 수 있는지를 묻는 소설



 

 

 

 

 

낙하

이희영

밀리 오리지날 · 2026-06-24 · 한국소설

 

2026.07.13 ~ 07.16 · 6시간 54분

 

 

 

 

 

이희영 작가의 '낙하'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에 정말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자신의 의지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마음이 향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마음이 가족이라는 관계와 부딪히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책임이 그 마음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낙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사랑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누군가가 상처받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희영 작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야기의 구조였다. '낙하'는 '나'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잎새'에게 자신이 처음 쓴 소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가 쓴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부모의 재혼으로 갑작스럽게 남매가 된 정과 현,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어린 동생 진의 이야기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형식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나'와 잎새, 소설 속의 정과 현이라는 두 관계가 서로를 비추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어진다. 처음에는 정과 현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의 마음까지 바라보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의 감정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과 현은 처음부터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부모의 재혼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남매라는 관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관계가 규정되었다고 해서 인간의 감정까지 그 틀에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향한 마음과 열망이 쌓여간다. 문제는 그 마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과 현에게는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사랑이 드러나는 순간 부모가 간신히 만들어온 가족의 형태가 흔들릴 수 있고, 어린 동생 진의 삶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을 선택하는 대신 삼키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고 말하곘다.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하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존재하는데 그것을 표현할 수 없고,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눌러둔 마음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낙하'는 바로 그 순간을 바라본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가족 안에 사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말하는 '평화'가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족이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되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평온한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자신의 감정과 욕망, 심지어 자신의 삶까지 포기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정말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희영 작가는 그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특히 소설 속에서 말하는 "인간은 말이야. 가장 가까운 존재의 희생을 가장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든."이라는 문장은 '낙하'의 핵심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참아야 하고, 가족이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생을 너무 쉽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과 현의 이야기가 아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사랑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이타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선택 속에서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지점에서 '낙하'가 단순히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은 어디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묻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소설 속 정과 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소설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나'는 정과 현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감정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나'가 잎새에게 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행위에는 자신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소설 속 정과 현의 사랑은 '나'와 잎새의 관계와 겹쳐진다. 이 부분에서 '낙하'의 액자식 구성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현실에서 직접 말할 수 없는 것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말하게 하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은 이야기 속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에 나온다. 결국 소설을 쓰는 것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자신이 외면했던 마음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가 이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은 과거의 사랑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소설의 제목인 '낙하'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낙하는 단순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간신히 유지해온 평화가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이 애써 외면했던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낙하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높은 곳에 매달려 있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고 살아가는 것 역시 하나의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서 있던 곳을 잃는 일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낙하'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결국 사랑과 희생의 경계였다고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 희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족을 위해 참고, 부모를 위해 참으며, 동생을 위해 참는 동안 정작 자신의 마음은 아무도 돌보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는 흔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지는 묻지 않는다. 어쩌면 '낙하'는 바로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희생을 정말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희영 작가는 정과 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지 않고, 사랑은 때로 축복받을 수 없고, 때로는 말할 수 없으며,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에 왜 죄를 물을 수 없어요?"라는 소설 속 문장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는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처와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낙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재혼 가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가고 있으며,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숨길 때가 있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참는다. 그리고 그렇게 참는 것을 성숙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참는 것만으로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 관계는 과연 온전한 것일까. '낙하'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읽는 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면 개인적으로 좋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솔직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에도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고, '낙하'는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이야기이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희영 작가는 가족이라는 가장 익숙한 관계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 가장 쉽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결국 '낙하'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야 했던 마음, 가족이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진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감당해야 했던 희생까지 함께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의 질문,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평화는 정말 모두를 위한 평화였을까.

 

'낙하'는 이 질문에 대해서 쉽게 놓아주지 않는 소설일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이 소설을 읽은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낙하'가 계속될 것 같다. 우리가 외면했던 마음의 깊은 곳으로, 그리고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들여다봐야 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인상적인 문장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하나의 온전했던 둥근 케이크가 작은 조각이 되고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 충만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작아지다 결국 파편화된 추억의 부스러기로 남아버린다.

 

 

 

 

반응형

'Review > 읽은 것들에 대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쇼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사랑과 신앙, 예술, 그리고 비극을 그린 소설  (0) 2026.08.0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가난 때문에 사랑과 존엄마저 위협받는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인간의 선의와 사회적 불평등을 깊이 있게 그려낸 소설  (0) 2026.07.27
이승우, ‘생의 이면’ 작가 김부길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진실의 불확실성, 그리고 삶의 숨겨진 이면을 탐구하는 철학적 소설  (0) 2026.07.20
최진영, ‘오로라’ 제주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주인공이 사랑과 믿음,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탐색해 가는 성장과 성찰의 이야기이다.  (0) 2026.07.13
황석영, '할매' 600년 된 팽나무의 시선을 통해 인간과 자연, 역사와 생명이 하나의 거대한 순환 속에 연결되어 있음을 그려낸 황석영의 장편소설  (0) 2026.07.06
김애란, ‘바깥은 여름’ 예기치 못한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린 소설집  (0) 2026.06.29
나쓰메 소세키, ‘행인’ 근대 일본 사회의 지식인이 느끼는 불안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섬세하게 탐구한 소설  (0) 2026.06.15
성석제, '투명인간' 평생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슬픔과 한국 현대사의 그늘과 사회적 소외를 그려낸 소설  (1)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