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딪쳐 보는 것,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하는 것”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최진영, ‘오로라’ 제주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주인공이 사랑과 믿음,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탐색해 가는 성장과 성찰의 이야기이다.

by kimdirector· 2026. 7. 13. 08:05
제주도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낯선 공간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 가는 단편소설이다. 사랑과 믿음, 인간관계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 내며, 독자에게 자기 성찰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

 

 

 

 

 

 

 

 

오로라

최진영

위즈덤하우스 · 2024.02.21 · 한국소설, 단편소설, 위픽 시리즈

 

2026.06.16 ~ 06.17 · 01시간 04분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이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위로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의 작품을 찾게 된다. 『오로라』 역시 그런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이 작품은 여행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내면을 탐색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낯선 공간에서 평소와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주인공의 여정은 결국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자기 탐색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믿음에 대한 시선이었다. “어떤 믿음에는 이기적인 구석이 있지.“라는 문장은 처음에는 냉소적으로 느껴졌지만, 다시 읽을수록 믿음이 단순히 상대를 향한 선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기대한다. 믿음은 상대를 위한 마음인 동시에 자신의 불안을 견디기 위한 마음이기도 하다. 특히 “믿는 마음에는 이기심보다 큰 외로움이 숨어 있다.“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사람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누군가를 믿고 사랑한다. 결국 믿음은 강한 확신이라기보다 외로운 사람이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에 더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의 행동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

 

제주도라는 공간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장소로 읽힌다. 익숙한 환경에서는 감추고 살아왔던 감정과 생각들이 낯선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조금씩 깨닫는다. 제주도는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공간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장소다. 도심에서의 상실과 아픔을 안고 떠나온 주인공은 그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을 배워 간다.

 

소설이 건네는 위로는 일반적인 위로와는 결이 다르다. 최진영은 상처를 극복하라고 말하지도, 아픔을 빨리 잊으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처를 억지로 봉합하지 않은 채 오래 바라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조용히 그려 낸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외면의 자신과 내면의 자신을 분리하고, 내면의 자아에게 ‘오로라’라는 이름을 붙인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진실보다 거짓 뒤에 숨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자아는 제주도의 겨울 풍경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거센 바람과 먹구름, 눈 덮인 한라산, 발코니에서 발견된 죽은 새는 모두 주인공이 외면하려 했던 내면의 황량함과 죄책감을 비추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특히 죽은 새를 둘러싼 장면은 작품의 핵심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죽은 새를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것은 합법이지만, 땅에 묻는 것은 불법이라는 현실 속에서 오로라는 규정보다 생명에 대한 예의를 선택한다. 관리인과 함께 새를 묻으며 둘만의 비밀을 만들게 되는 장면은 상처와 죄책감에서 도망쳐 온 사람이 또 다른 비밀을 품게 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선택은 결국 인간이 가진 다정함과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봄이 오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마음처럼, 오로라 역시 불완전한 관계와 거짓 속에서도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거짓으로 자신을 감추려 했지만 결국 타인에게 다가가고 연결되려는 인간의 본성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최진영의 문체 또한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짧고 절제된 문장으로 여백을 남기고, 그 여백을 독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채우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큰 사건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관계와 외로움에 대한 묘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만들고,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관계를 선택하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상처를 피하기 위해 타인을 믿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이 소설이 조용히 들려주는 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로라』는 치유란 아픔을 완전히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흉터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섣부른 희망이나 낙관을 말하기보다 타인의 슬픔을 존중하는 태도와 자신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제주도의 겨울 풍경과 그 안에서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이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언젠가 어둠을 비추는 자신만의 오로라가 떠오르기를,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드는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인상적인 문장

 

비밀은 묻어버려야지.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습니까? 들키면 안 되니까.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사랑을 감출 수 없어요. 누구나 감추고 삽니다.

 

어떤 믿음에는 이기적인 구석이 있지. 너는 믿음에 깃든 이기심을 되새긴다. 당신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은 오직 나를 위한 마음. 당신을 끝까지 믿는다는 말은 나를 절대 배반하지 말라는 요구. 그러므로 믿는 마음에는 이기심보다 큰 외로움이 숨어 있다. 먼저 떠나지 못한 사람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되삼키는 울음이 있다. 너는 남겨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이곳까지 왔다. 믿지 않으려고 훌쩍 떠났다.

 

그러므로 이 낯설고 커다란 섬에 숨으면서 네가 진짜 원했던 것은…… 어쩌면 기다림.
기다려. 내가 먼저 이별을 말할 때까지 넌 아무것도 모른 채 거기 그대로 있어.
연극은 끝났다. 오로라는 죽었다. 커튼콜은 없다. 확인할 필요 없다. 오로라의 탄생과 죽음은 혼자만의 일이니까. 아무도 너에게 묻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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