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다자이 오사무, ‘쓰가루’ 고향 쓰가루를 다시 걷는 여정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뿌리와 사람들, 그리고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따뜻한 여행기

by kimdirector· 2026. 11. 2. 08:04
다자이 오사무가 고향 쓰가루를 여행하며 옛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와 뿌리를 돌아보는 자전적 여행기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다케와의 재회를 통해 고향과 사람에 대한 애정,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준다.

 

 

 

 

 

 

 

쓰가루

津軽

 

다자이 오사무

역 유숙자 · 민음사 · 2025.12.12 · 일본소설, 단편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1

 

2026.10.08 ~ 10.15 · 6시간 33분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간의 불안과 고독, 자기혐오와 절망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이 그런 종류의 책들 이였다. 특히 『인간 실격』을 비롯한 그의 대표작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은 세상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으며,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나에게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의 가장 어둡고 불안한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작가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쓰가루』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도 특유의 자기 비하와 불안, 세상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이 남아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고향을 향한 애정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에서 주로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 고독한 인간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떤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쓰가루』는 다자이 오사무가 1944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자신의 고향인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 지방을 약 3주 동안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인 기행소설이다. 한 출판사의 고향을 주제로 한 원고 청탁이 여행의 계기가 되었으며,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사실상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라고 볼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쓰가루에서 태어나 스무 해 가까이 살았음에도 정작 고향의 여러 지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고향이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장소였던 셈이다. 그래서 이 여행은 단순히 오래된 풍경을 다시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사람인지를 되짚어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화자인 '나'는 가니타와 민마야, 닷피와 기즈쿠리 등 쓰가루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의 자연과 역사, 풍습과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랜만에 생가를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특별히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소설은 아니다. 여행지를 옮겨 다니고, 오래된 지인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느낀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뚜렷한 갈등이 전개되거나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는 구성도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평범한 여정 속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는 고향을 무조건 아름답고 훌륭한 곳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쓰가루의 투박함과 어설픔, 문화적으로 뒤처진 듯한 모습까지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때로는 자신의 고향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에서는 경멸보다 애정이 느껴졌다.

 

“뭐라 하건, 나는 쓰가루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이 문장이 『쓰가루』라는 작품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고향이 특별히 대단하거나 자랑스러운 곳이 아니더라도, 그곳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족하고 투박한 모습까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애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랄까. 우리는 흔히 고향을 떠올릴 때 아름다운 추억이나 그리운 풍경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고향에는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편했던 관계도 있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도 있으며, 때로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함께 남아 있지 않을까.

 

다자이에게 쓰가루 역시 그런 장소였을 것이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과의 관계가 언제나 평온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여러 사건으로 집안과 멀어졌고, 도쿄에서 살아가면서도 그곳에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고향에 돌아온다고 해서 모든 불안과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쓰가루를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결국 그곳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향수 이상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자기 자신의 부족함까지 받아들이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자이는 여행을 통해 쓰가루의 '변변찮음'과 '보잘것없음', '어설픔'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발견이 오히려 자신을 후련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조금 의아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부족함을 확인하는 일이 왜 후련하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어떤 기대나 열등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세련되고 고상한 문화인이어야 한다거나, 자신이 태어난 곳까지 특별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말이다. 자신의 고향이 투박하고 어설픈 곳이라면 자신 역시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불안이 잠시나마 누그러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다자이 오사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자신의 결함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세상과 자신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인물들을 자주 만났다. 하지만 『쓰가루』에서는 그 결함을 부정하거나 감추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려는 태도가 느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어둡고 불안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보다, 조금은 서툴고 투박하지만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인간 '다자이 오사무'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여행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케와의 재회다.

 

다케는 '다자이 오서무'의 어린 시절을 돌봐주었던 여성으로, 그에게는 단순히 자신을 보살펴준 사람 이상의 존재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을 충분히 누리기 어려웠던 어린 다자이에게 다케는 또 다른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었다. 여행 내내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고 오랜 친구들을 만났지만, 돌이켜보면 이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다케가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다케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특별히 화려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그리운 사람과 재회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그토록 쓰가루를 다시 찾고 싶어 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찾고 싶었던 것은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오래된 추억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던 사람의 따뜻함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특히 다케와의 재회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문학적으로 재구성된 장면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현실의 만남은 작품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담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오히려 그 장면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다자이 오사무'는 단순히 자신이 경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이 느꼈거나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감정을 문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가 보다 그 만남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쓰가루』는 기행문이면서도 분명히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장소와 사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기억하고 싶은 과거와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삶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쓰가루』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그의 작품에서 주로 절망과 자기혐오, 불안과 고독을 읽었다. 그래서 작가 자신 역시 어둡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그의 삶과 문학에서 그러한 감정들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쓰가루』를 읽고 나니 그에게도 분명 따뜻한 기억이 있었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한 애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고독과 소외를 이야기했던 것도,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전에 읽었던 그의 어두운 작품들까지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다자이 오서무'의 문학이 단순히 절망에 빠진 인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 속에서도 끝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쓰가루』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들과 비교하면 조금 낯선 작품이다. 뚜렷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보다는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풍경, 역사와 풍습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설을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구성 덕분에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의 뒤에 숨어 있던 작가가 자신의 고향을 직접 걸으며 오래된 친구와 웃고, 사람들의 투박한 성정을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고향에 대한 애정은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좋았다. 고향이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모습과 불편한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그곳이 자신을 만들어준 장소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계, 상처와 위로,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 수많은 시간이 쌓여 있는 장소에 더 가까울 것일 테니까. '다자이 오사무'에게 쓰가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쓰가루』를 다 읽고 난 뒤에는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 조금 다른 '다자이 오사무'가 남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딘가 세상과 어긋나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고 오래된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의 따뜻함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았다면, 『쓰가루』에서는 그 어둠 뒤에 남아 있던 따뜻한 마음을 발견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 하나로 '다자이 오사무'라는 복잡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를 절망과 자기혐오의 작가라는 하나의 이미지로만 기억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쓰가루』는 나에게 고향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다자이 오사무를 조금은 새롭게 이해하게 해 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는 쓰가루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서툴고 부족한 모습까지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뭐라 하건, 나는 쓰가루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책을 덮고 나니 이 문장이 단순히 고향을 향한 고백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신을 만들어준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자기 자신을 향한 조심스러운 애정의 표현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쓰가루』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가운데 유난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동안 그의 문학에서 어둠을 먼저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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