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폴 오스터,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30여 년간 써온 산문 중 직접 선별한 글을 통해 문학과 글쓰기,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애정, 정치적 사유까지 그의 작품 세계와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 컬렉션

by kimdirector· 2026. 10. 26. 08:03
폴 오스터가 30여 년간 썼던 글들 중 직접 선별한 산문만 모은 컬렉션. 매일 글을 쓴 그답게 수려하고 빼어난 문장들만 담았다. 좋아하는 작가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은 물론, 글쓰기에 관한 성찰, 정치 이야기까지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에세이.

 

 

 

 

 

 

 

낯선 사람에게 말걸기

Talking to Strangers

 

폴 오스터

역 김석희, 민승남, 이종인, 황보석

열린책들 · 2022.04.10 · 에세이/산문집

 

2026.09.29 ~ 10.07 · 1시간 27분

 

 

 

 

 

폴 오스터의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를 펼칠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편이고 그의 소설 역시 즐겨 읽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서 만났던 우연과 고독, 정체성, 삶의 불확실성과 같은 주제와 독특한 이야기 방식은 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가 30여 년 동안 써온 산문 가운데 직접 글을 골라 엮은 이 책을 통해 소설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의 생각과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시작한 독서였다고 할 수 있겠다.

 

책에는 문학과 글쓰기, 다른 작가와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부터 정치와 사회에 대한 생각까지 모두 마흔다섯 편의 글이 담겨 있다. 형식 또한 일반적인 에세이에만 머물지 않고 비평과 서문, 편지, 연설문, 탄원서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한 권의 에세이집이라기보다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오랜 시간 무엇을 읽고 생각했으며, 어떤 문제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는지를 한데 모아놓은 기록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몇 편을 읽고 난 뒤 처음의 기대는 조금씩 당혹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을 통해 알고 있던 폴 오스터의 세계와는 달리, 이 책에는 예상보다 낯선 작가와 예술가, 특히 시인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평소 시를 읽는 편도 아니고 외국 시인이라면 익숙한 이름은 더욱 적은 나에게 이 부분은 상당히 어렵게 다가왔다. 폴 오스터는 자신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과 문학 세계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시적인 표현과 작품 분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장만 따라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언제쯤 이 이야기가 끝날까’라는 생각이 앞서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읽고 책을 덮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단순한 지루함보다 조금 더 큰 아쉬움이 생겼던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만큼 나와 맞지 않는 글들이 계속될 때 느끼는 거리감도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 조금씩 다른 감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던 폴 오스터는 주로 ‘소설가 폴 오스터’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그는 시를 쓰고 번역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읽고 분석하며 자신의 문학을 만들어온 사람이었다. 내가 그의 소설에서 좋아했던 문장과 이야기 뒤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시와 작가, 책과 번역의 경험이 쌓여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글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읽을만할 때 책을 덮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폴 오스터가 글쓰기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흥미가 살아났다. 세계적인 작가가 된 뒤에도 글쓰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 무명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글을 썼다는 것, 훌륭한 작가들조차 자신의 작품에 확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기억에 남았다. 그 부분들을 읽으면서 작가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쓰는 사람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도 계속 쓰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책의 후반부에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폴 오스터를 만난 것도 의외였다. 살만 루슈디를 지지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인권운동가를 위해 탄원하고, 이라크 전쟁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에서 소설가와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데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 자신의 글 하나가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말을 거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책의 후반부에 이르자 처음의 답답함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다고 갑자기 책이 재미있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시와 시인에 관한 글은 어렵고 낯설었고, 끝까지 읽어내는 데 꽤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다만 처음처럼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좋아했던 폴 오스터는 이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가진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덮을 무렵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남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이라는 이유로 기대했고, 읽는 동안에는 낯선 시인과 작품 때문에 지치고 답답했으며, 중간에는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 글쓰기와 사회에 관한 그의 생각을 만나면서 다시 관심이 생겼고, 마지막에는 이 책을 좋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폴 오스터라는 사람을 이전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묘한 만족감이 동시에 남았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무엇보다 이번 독서를 통해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나는 폴 오스터가 좋아했던 모든 시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가 깊이 탐구했던 모든 작품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다. 어떤 글에서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즐거웠지만, 어떤 글에서는 몇 장을 넘기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아쉬운 책이 되고 말았다. 폴 오스터를 싫어하게 만든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더욱 좋아하게 만든 책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했던 폴 오스터와 실제 폴 오스터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책에 가까웠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은 책의 제목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며, 때로는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 달라 거리를 느끼기도 한다. 이번 책에서 만난 폴 오스터가 나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 낯섦 때문에 한동안 불편하고 지루했지만, 끝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덮은 뒤 가장 먼저 남은 감정은 ‘아쉽다’였다. 기대했던 만큼 즐겁게 읽지 못했고, 다시 읽고 싶은 글보다 어렵게 지나온 글이 더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쉬움 뒤에 작은 의미 하나가 남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좋아하는 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전보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를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모습뿐 아니라 내가 이해하기 어렵고 관심을 갖기 힘든 모습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결국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는 나에게 기대감을 갖으며 시작했고, 낯설어서 지쳤으며, 때로는 빨리 덮고 싶었지만, 마지막에는 좋아하는 작가를 조금 더 솔직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책으로 남았다.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작가와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독서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거리까지 발견하는 것이 한 작가를 조금 더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를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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