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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읽은 것에 대해서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평범함이 주는 독특한 매력의 소설

kimdirector 2021. 3. 11. 20:23 

 

녹나무의 파수꾼

クスノキの番人

저 히가시노 게이고 / 역 양윤옥 / 소미미디어 / 2020년 03월 17일 / 일본소설

독서기간 : 2021-02-23 ~ 03-06

 


 

오랫동안 픽(pick)해 두었던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였건만 왜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져 보지만 이유를 잊은지 오래되어 기억에서 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소설의 작가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점이 나를 이 소설로 이끌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작이였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나서 이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어서 머리 속에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5년여 전에 읽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소설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소설로 기억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을 안고 읽은 소설이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읽어 내려갔던 생각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느낀건 스토리가 풍부하고 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고, 중심 인물들간의 연관성과 심리적 몰립도가 주는 재미는 덤인 만큼 완성도가 높은 소설임을 얘기하고 싶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테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 소설을 읽어 가면서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이 주는 재미와 흥미면에서 절반은 성공했다고 해도 될 듯한 소설이지 않나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독특한 문체라고 해야 할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느낀 점이 이 소설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는 점은 기분탓이라는 생각이지만, 그도 그럴것이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의 주된 장소는 폐가가 되어버린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고, 그 안에서 주된 스토리의 전개가 이루어진다면, 《녹나무의 파수꾼》에서는 월향신사 내에 있는 녹나무가 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녹나무에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리고, 두 소설의 흐름도 비슷한 점이 또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부분인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우체통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녹나무의 파수꾼>>의 경우에는 과거의 사람들이 죽기 전에 녹나무에게 기념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후손에게 염원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손은 녹나무에 와서 죽은 사람이 남긴 염원을 수념이라 하는 의식을 통해서 염원을 전해 듣는다. 스토리의 전체적인 흐름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추리소설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녹나무의 파수꾼》은 추리소설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고, 읽다보면 나름대로 추리력을 발휘하게 되기는 하지만, 범죄물 또는 수사물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범인을 쫓고 쫓기며, 고도의 심리전이나 추리를 하며 풀어가는 방식이 아닌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속에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독특함을 녹여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이야기를 접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조금은 건조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평범하다고 해야 하는게 맞을까? 추리소설 작가로써의 화려한 문장력은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추리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서 섭부른 판단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문장의 평범함과 화려하지 않는 필체는 곧 독자들에게는 식상함으로 또는 재미없는 소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평범함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묘한 감정을 주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녹나무의 파수꾼》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펼쳐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우리 주변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흔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불륜으로 인해 아이를 낳고, 그런 부모가 죽어 자식은 고아가 되고, 고아는 이리저리 치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모가 나타난다. 그리고 고아는 녹나무를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오랫동안 녹나무를 지키는 가문의 사람으로써 가업을 이으며 한 평생을 일해 왔는데, 세월이 흘러 결국 모든 업무에서 배제되어 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있는 여자가 있다. 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을 위해 그리고 치매걸린 어머니를 위해 녹나무에 기념을 하며, 뭔가를 찾아 헤매는 중년 남자가 있고, 그런 비밀을 안고 있는 아빠를 파헤쳐 가는 딸의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 받으려 하지만, 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통성에 금이 갈까봐 누심초사 하는 젋은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월향신사에 있는 녹나무에 기념을 하고, 수념을 통해 염원을 받아 들이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이 녹나무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녹나무는 사람들에게 신비함을 전해 주는 명물로 기억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야나기사와 가문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능력을 소유한 나무이다. 그런 녹나무를 지켜주는 역할이 파수꾼이라고 하며, 파수꾼은 녹나무를 지키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념의식을 위해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녹나무는 거목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지켜져 온 나무로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나 있는 공간이 있어 사람들은 그 공간 안에서 선조들이나 먼저 돌아가신 분들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기념이라는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기념의식을 행하는 동안에는 파수꾼은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기념을 위한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는 지명을 받거나 아주 가까운 일촌 또는 직계여야 하고 또는 상대에 대한 풍부한 추억이나 기억이 많은 경우에만 기념을 통해서 수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잠깐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 속에는 세가족이 등장한다. 각각의 사연이 깊은 가족들이며, 각자의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숨겨져야 했고, 이어져야 한다는 염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세 가족으로 부터 이어지고 있다. 즉, 녹나무에서 기념을 통해 수념을 받들지만, 문서로서 남길 수 없는 또는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까지도 기념의식을 통해 전해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잊혀져 가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현 시대에서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호모해지는 요즘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녹나무를 통해서 후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는 내게는 특별히 남다른 감정같은 느낌은 없었다. 전작에 대해서 느꼈던 것이 있어서 일까. 기대가 컸던 소설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후회되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는 소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나름대로 읽으면서 미소를 띄운 적도 있었고, 진지함을 갖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전체적인 소재의 참신함도,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 스토리의 전개 흐름, 모두 훌륭한 소설임에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의 가슴에 약간의 빈틈을 만들어 냈고, 그 빈틈이 주는 허전함이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 기분은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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