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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읽은 것에 대해서

'바람의 화원' 역사에 근거하여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더해진 역사소설

kimdirector 2021. 4. 15. 14:18 

 

바람의 화원

The painter of wind

 

저 이정명 / 은행나무 / 2017년 08월 04일 / 한국소설

 

독서기간 : 2021.04.07 ~ 04.14

 


 

《바람의 화원》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의 정조 후기, 정조는 당시의 조선을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홍도와 신윤복을 빼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두 천재 화가의 삶, 인생 전체를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두 화가의 그림을 놓고 보면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시대를 살아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작가 '이정명'의 소설 속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바람의 화원》은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의 궁중 화실 도화서를 배경으로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두 천재 화가의 이야기를 밀도있게 추적하며 써 내려간 소설로 당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의 삶과 예술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 속 비밀을 풀어가는 놀라운 추리력으로 써 내려간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이정명의 소설은 낯설지 않다. 그 유명한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가 아니던가. 그 소설을 읽은 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어 다시 읽을 예정이지만, 정말 멋진 소설 중에 소설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바람의 화원》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작가 '이정명'의 풍부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정말 멋진 소설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쉽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책들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려는 편이긴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지금까지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 읽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뿌리깊은 나무>를 읽었던 기억을 더듬더듬 되짚어 보며 작가 '이정명'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판단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바람의 화원》은 위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조선시대의 정조 후기에 두 명의 걸출한 천재 화가가 둘이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좋은 경쟁자이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복돋아 주는 스승과 제자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그 둘만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존재한다. 10여 년 전에 죽은 두 명의 도화서 화가의 의문사를 놓고 정조는 김홍도에게 은밀하게 조사해 보라는 어명을 내리고 김홍도는 당시의 도화서의 화가들과 피해자의 주변을 중심으로 탐문하게 된다.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두 화가의 대결과 경쟁보다는 어명을 받들어 10년 전의 사건을 신윤복도 함께 파헤치며 실마리를 풀어 가고, 김홍도와 신윤복의 갈등과 그리고 또 다른 복선의 이야기로 의문사한 도화서 화가를 중심으로 소설은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정조는 두 화가에게 '동제각화'라고 해서 한가지 주제에 다른 그림을 그려오게 하여 두 사람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는 정조가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함이고,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군왕이 되어 가기 위함이겠지만, 오히려 두 사람에게 경쟁심을 유발하며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가지려는 목적도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사람에게 지난 10여 년 전의 미스테리 사건을 조사하라는 어명을 내리며,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연출한 장면에서는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김홍도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재능으로 어린 나이에 왕의 어진을 그린 천재 화가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도화서에 몸담아 온 탓인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시기에 또 한 명의 천재 화가인 신윤복을 만나면서 자신의 영달에 묻혀있던 화가로써의 자질과 기운을 다시금 부활하고자 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도화서 내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신윤복을 두둔하고 지키려 하면서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신윤복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질투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감정이입으로 그리워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또 한 명의 천재 화가인 혜원 신윤복은 여장남자로 등장하며 4대째 이어 온 집안의 가풍을 이어받아 아버지인 신한평의 요구대로 도화서에 형인 영복과 함께 입성하지만 도화서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규율과 틀에 갇혀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받게 되자,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에 도화서 내에서 왕따가 되어 가고 도화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려 규율과 틀을 벗어 던진 자신만의 색과 그림을 그려 도화서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다. 이에 정조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윤복의 그림을 보며, 서민들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오라고 하기도 한다. 스승인 김홍도와 사제지간이지만 서로에게 경쟁을 하며 실력을 겨루지만 결국 도화서를 떠나게 되고, 김홍도와 함께 미스테리로 남은 도화서 화가의 의문사를 파헤쳐 간다. 김조년이라는 거대 상인에게 팔려 간 기생 '정향'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그림 속에 그런 내적 갈등을 화풍에 담기도 한다.

 

두 인물이 오간 대화 속에서도 신윤복은 화가로써의 자질 보다는 오로지 새로움에 늘 목말라하는 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에 반해 김홍도는 새로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보다는 기존의 것에서부터 새로움을 찾았으면 하는 대화가 눈에 띈다. 아래 내용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두 천재 화가의 외적 또는 내적 갈등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럼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무엇이냐?"
"형태가 아니라 혼을, 모양이 아니라 내면을, 양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또다른 대화에서는 김홍도의 보수적인 면을 부각하는 대화 내용이며, 신윤복을 도화서에 묶어 둘 심산으로 회유하는 대화이다.

 

"도화서를 떠나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터인데, 어찌 양식에 찌든 화원이 돼라 하십니까?"
"너는 혼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다. 양식을 거부하고, 규율을 무너뜨리며, 마음가는 대로 그리지. 하지만 화원이 되지 못하면 그건 천재가 아닌 미치광이의 그림에 지나지 않아. 네가 가장 뛰어난 화원이 되었을 때만이 네 그림은 인정받을 것이다."
"도화서 화법은 인간의 영혼을 담지 못하는 죽은 기교입니다."
"기교와 양식은 그림의 주춧돌이다. 그것 없이는 미치광이의 그림밖에 안돼. 양식을 알아야 양식을 넘어서고, 기교를 갖추어야 기교를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단 한 번도 양식과 기교에 진실하게 맞서지 않았어. 그건…"
윤복은 젖은 눈으로 붉게 상기된 홍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죄악이야."

 

위의 대화 속에서 느껴지듯이 누구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말이 모두 다 맞을 수 있겠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이후의 두 사람의 대화는 첨예하게 대립을 하기도 하지만 김홍도는 신윤복을 대하는 마음과 모습은 항상 두 가지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경쟁과 질투, 그리고 그리워하는 모습도 김홍도의 내면 안에 존재하며, 그런 신윤복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바라보곤 한다. 신윤복은 오로지 김홍도를 대하는 마음과 모습은 스승이라는 틀 안에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김홍도의 화풍을 따라 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주인공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두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변인물들의 등장으로 극의 흐름에 주요한 이야기를 더하고 도화서 화가들의 의문사에  주변인들을 통해 사건을 파헤쳐 가기 위한 매개체로 활용되며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단순한 스토리에 의존적이기보다는 당시 두 천재 화가의 그림을 두고 감상하는 부분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자칫 활자를 읽은 흥미를 잃어 갈 때쯤 두 사람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는 충분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보아 오던 그림만 봤을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도 두 천재 화가의 그림을 소설 속에서 보게 되면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새롭게 보는 방식이 생기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두 인물들의 특징을 살피면, 책을 읽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이는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홍도는 틀에 갇혀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는 도화서 화가로 등장한다. 즉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익숙함에 빠져 자신의 영달에 녹아 새로움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 속에서 보이는 흔한 자만심을 갖춘 인물로 비쳐지고, 그 반면에 신윤복은 기존의 틀에서 탈피하여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하며, 기존의 보수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현실적인 사회를 비추어 볼 때, 두 부류의 충돌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두 부류의 충돌은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매개체로 그 역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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