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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읽은 것에 대해서

'제0호'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

kimdirector 2021. 4. 22. 08:50 

 

 

 

 

제0호

Numero Zero

 

저 움베르토 에코 / 역 이세욱 열린책들 / 2018년 10월 30일 / 이탈리아 소설

 

독서기간 : 2021.04.16 ~ 04.21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이다. 작가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처음이다. 2016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까지도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끝으로 더 이상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은 볼 수 없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제0호》는 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진정성있는, 참된, 진실을 밝히는 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제0호'라는 의미는 창간호를 뜻하지만 새로 설립한 신문사 '도마니'라는 편집국의 창간호를 위해 2류 저널리스트들이 모여 어떤 기사를 다룰지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부분 거짓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를, 즉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 위한 창간호를 준비하게 된다. 주된 이유는 정치가, 재력가들을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주인공인 '콜론나'는 남다른 글쓰기 재능으로 '시메이'라는 사람의 눈 띄어 함께 일하게 된다. 창간호를 위해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옥하며,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저급한 저널리즘이 어떻게 작성되고 있는지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있고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콜론나'의 1인칭 시점에서, 그리고 주요 날짜별로 소제목을 구분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 속에서는 '콜론나'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을 날짜별로 구성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창간호를 내기 위해 모인 저널리스트들은 2류로써 스스로를 포기한 저널 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뒤집어쓰고 저널리스트로써의 주류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감에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과 오로지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주류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콜론나'는 주필인 '시메이'의 모범적인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참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을 위한 책을 낼 계획이다. 창간호에는 저급한 저널리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을 위한 책을 내려는 것은 참 언론인의 모습을 보이기 위한 모습에 2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그런 책을 쓰겠다고 한 '콜론나'의 모습도 자신을 희생당하는 모습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돈을 위해 나서게 된다.

 

또한, 창간호를 준비하는 초반에 나오는 대화 내용은 신문에 기재된 뉴스가 왜곡된 정보를 독자들에게 던지면서 느낄 수 있는 무력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거짓된 정보가 진실된 정보로 둔갑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도 거짓말을 해. 1년 전 걸프 전쟁 때, 뉴스에서 가마우지의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기억나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할 때, 미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많은 유정과 원유 저장 시설을 파괴해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페르시아만에 유출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원유에 젖은 채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영상을 내보냈지.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전쟁이 벌어지던 그 계절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가마우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뉴스에서 보여 준 가마우지들은 걸프 전쟁이 아니라 8년 전 이란, 이라크 전쟁 때, 찍힌 영상이란 거야.”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한 가지 이야기를 더하고 있다. 창간호를 위해 함께한 2류 저널리스트 중에 '브라가도초'는 제2차세계대전 패전으로 '무솔리니'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콜론나'와 공유하게 된다. '브라가도초'는 무솔리니의 사망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터였지만, 결국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고 얼마 뒤에 '브라가도초' 관련 기사가 뜬다. 하지만  '브라가도초'의 살해 기사는 사실과 다르게 매춘업계를 취재하다가 포주로부터 살해당했다는 보도자료를 확인하고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지켜봐 왔던 진실과 거짓, 허위와 날조에 대해 구분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삶은 견딜 만하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대로 남의 말을 인용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나는 1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제 남들이 말하도록 그냥 버려두고자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주인공인 '콜론나'의 현실적인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또 하나는 주필인 '시메이'와 함께한 6명의 저널리스트들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눈과 귀를 속일 것인가 라는 대목에서 신문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대목도 나온다.

 

“맞아요.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신문들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평판을 따라가는 건가요, 아니면 세평을 만들어 내는 건가요?”
“두 가지를 다 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말해 주면 자기들의 생각이 어떤 쪽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

 

이렇게 창간호인 《제0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짜 뉴스가 생산되는지 여과없이 들어내고 있다. 이는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오랜 세월 동안 언론인으로서 몸소 체험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고만 할 수 없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사항들이 있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건전하지 않는 정보들로 인해 피로감을 느낄 법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그리고 SNS라는 사회관계망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들을 습득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정보들 속에는 우리가 미처 깨닮지 못한 거짓된 정보로 인해 쉽게 물들어 가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여 유포하는 것도 나쁜 일일 테지만 그런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독자들의 의식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을 듯하다. 오로지 진실된 정보를 생산하고 진실된 정보만을 습득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될 수 있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런 면에서 미성숙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또 하나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독자들의 눈과 귀는 쉽게 가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와의 약속이기 이전에 언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소설은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고 여러 번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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