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 역 김성일 · 창비
2015/07/24 · 러시아 소설 · 창비세계문학 43
2025.08.05 ~ 08.11 · 6시간 35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의 ‘대위의 딸’은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푸쉬킨은 시, 산문, 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러시아 문화에 대단한 성과들을 이루면서 러시아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생의 마지막 시기인 1830년대 즈음, 운문과 산문에서 두루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특히 러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결국 하나의 민중 봉기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한 동시대 실제 인물을 토대로 집필한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집필 과정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귀족 출신의 육군 중위가 뿌가초프 진영으로 넘어가 그를 위해 싸웠다는 인물을 기준으로 스토리를 잡았지만 최고재판소에서 발견한 문서에 기록된 인물로 변경하게 된다. 기록에는 악당과 소통한 죄로 체포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난 육군 소위 A. M. 그리뇨프에 대한 기록과 오렌브르그를 여행하면서 농민 봉기에 대한 자료들을 연구한 끝에 애초의 스토리 구상을 전면적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변경된 스토리의 구성은 주인공이 후손에게 남긴 회상록 형식으로 진행한다. 그리뇨프의 수기가 소설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발행인이 남긴 글을 통해서 어떻게 소설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기록을 남긴 시대와 관련된 자료들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리뇨프의 손자가 발행인에게 원고를 넘겨준 것이라 말하고 있고 발행인의 글 마지막 줄에는 원고의 출판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과 원고를 자신의 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에 어울리는 소제목을 붙이고 단행본으로 출판하기로 결정했다는 단서를 달았다. 헷갈릴 수 있는 위 내용은 ‘대위의 딸’의 실제 저자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이 가상의 인물로서 수기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그리뇨프로부터 분리시킴으로 허구를 실제와 의도적으로 연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상상력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뿌가초프의 농민 봉기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며, 스토리 안에는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하여 출판된 소설이 ‘대위의 딸’이 된다. 아마 그 당시 러시아에도 검열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때문에 10월 말에서야 출간되면서 ‘대위의 딸’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뿌가초프’와의 관계를 통한 스토리 전개에서는 한 때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에게 받은 호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만은 살려 주게 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도움을 주고 있는 모습과 반란군에 참여하라는 뿌가초프의 회유를 거절하며 자신의 신념과 명예를 지킨다는 스토리 전개와 또 하나는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와 그의 상관이었던 대위의 딸인 ‘마리아 이바노브나’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단순한 순애보를 그린다거나 연애담을 보여주지 않는다. 둘의 사랑은 감정적이지 않으며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행동과 선택이 필요함을 얘기하고 있다.
귀족이자 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발령을 받아 이동하는 길에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부랑자인 남자를 만나게 되어 도움을 받게 된다. 그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토끼털외투를 부랑자에게 건네주게 된다. 훗날 이 작은 선행이 주인공인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에게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계기가 된다.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는 입대를 하고 시골 요새에 배치받게 되고, 그곳에서 대위의 딸 ‘마리아 이바노브나’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곧 러시아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뿌가초프가 농민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뿌가초프는 반란군의 잔인한 수괴이기도 하지만 전에 ‘뽀뜨르 안드레예비치’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도와준 은인이기도 한 인물로, 그 인연 덕에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는 살 수 있었고 몇 차례 뿌가초프의 호의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뿌가초프는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에게 자신을 따르지 않겠냐고 몇 차례 회유를 권유하지만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는 나라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지킨다며 거절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와 뿌가초프는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으며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는 뿌가초프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변절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뿌가초프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면도 가지고 있는 면도 있고, 민중 봉기는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하고 복합적인 인물로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와는 대비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는 아버지의 권유로 군인이 되기로 하지만, 군인으로서, 그리고 귀족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숙한 모습의 청년으로 비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감을 가지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은 ‘뽀뜨르 안드레예비치’를 통해서 귀족으로써, 군인으로서 가지는 신념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로 강조하고 있다.
‘대위의 딸’은 고전적 윤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소설로 점철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작품이다. 군인으로서 가지는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 있다. 뿌가초프와의 개인적인 인연이 주는 호의를 거절하고 국가와 황제 그리고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적인 은혜와 호의와 공적 책임이 충돌할 때, 공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고전적인 윤리관은 러시아 작가들 대부분이 가지는 공통된 가치관이라는 점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인공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와 ‘마리아 이바노브나’와의 사랑을 통해서 단순한 연애담을 그리기보다는 시련을 함께 극복하고 서로에게 올바른 길로 이끄는 도덕적인 면을 그리고 있다고 하면 좋은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는 반란군의 수괴이자 우두머리인 ‘뿌가초프’를 단순한 악인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있다. 잔인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와의 인연과 호의를 잊지 않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인물의 묘사를 통해서 모든 인간은 악하지 않다는 시각의 인간 탐구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을 통해서 정리를 해보면,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뽀뜨르 안드레예비치’처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직장에서, 사회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개인의 이익과 공적 가치가 충돌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경중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겠고, 어떤 선택을 하든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히 큰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선택의 힘은 결국 신념을 지키는 것이고, 명예를 지키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고독과 무위가 빚어내는 음울한 상념들 속으로 나는 빠져들어갔다. 나의 사랑은 외로움 속에서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다. 독서와 문학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렸다. 나의 영혼은 추락해버렸다. 나는 이러다가 미쳐버리거나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뿌시낀은 작품 속에서 역사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제시했다. 역사는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영혼에 “강력하고도 유익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인간은 역사적 시련을 겪으면서 잠재되어 있던 의지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