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로봇이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이해하며,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와 존중, 존엄성의 가치를 천천히 달릴 수 있음을 통해서
깨닫고 삶의 의미를 일깨우게 하는 SF 소설
천 개의 파랑
저 천선란 · 허블 · 2020.08.19 · 한국소설
2025.08.13 ~ 08.25 · 7시간 52분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은 SF(Science Fiction)이라는 장르에 속한 소설이다. 하지만 SF적인 면모를 찾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듯하다. SF 장르 하면 쉽게 떠오르는 미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아이템이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천 개의 파랑》은 미래 사회를 이야기할 때 기술적 화려함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 사회라 해도 그리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 앞으로 20여 년 정도 앞선 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SF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이고 이 소설을 읽어 본 독자라면 기존의 SF 장르와는 결이 다른 소설로 실망한 독자도 분명 있을 법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은 이 소설은 현실적 생활 밀착형 SF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SF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인 AI가 탑재된 지능형 로봇이 등장한다. AI가 탑재되어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한다. 다만,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여 감정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오로지 저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말을 하거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다. 이 소설 속 AI 인공지능이 20여 년이 흐른 2040년대쯤으로 로봇은 일상 속에서 인간이 하는 일을 대체하여 익숙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또한, 로봇은 우리 일상 속에 파고들어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고, 장애인의 경우, 신체의 일부를 로봇으로 교체해도 인간의 신체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설정도 있다. 소설 속의 내용 전개 상 하나의 장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미래 사회의 기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흥미를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소설 《천 개의 파랑》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콜리(C-27)는 AI 칩이 실수로 자신에게 장착된 경주마의 휴머노이드 기수로 등장한다. 파란 하늘을 느낄 수 있는 로봇으로 인간이 즐기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서의 이미지에서 소설 속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이어지고, 경주마 투데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선택하는 이야기, 10대이면서 로봇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고 콜리(C-27)를 수리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가족관계, 친구와의 우정, 콜리와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재’의 이야기, 연재의 언니인 휠체어를 타고 경마장에 다니는 ‘은혜’, 특히 경주마 투데이와 깊이 교감하는 이야기, 그리고 경마장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은혜, 연재의 엄마인 ‘보경’은 소방관이었던 남편의 죽음으로 심적으로 치유되지 못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 경마장에서 경주마와 로봇 기수를 관리하는 ‘민주’는 달릴 수 없는 말은 쓸모가 없어져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죽이는 것에 감정이 없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인물이라 할 수 있고, 고장 또는 쓸모가 없는 로봇 기수를 폐기해야 하지만 불법으로 판매하여 이익을 챙기며, 연재에게 콜리(C-27)를 80만 원에 판 인물이다.
그리고 경주마의 건강을 관리는 수의사 ‘복희’의 이야기에서는 달리지 못하는 말은 어쩔 수 없이 폐기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갈등을 겪는 인물로 등장한다. 연재의 친구 ‘지수’는 공공 로봇을 만드는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연재를 꼬시게 되고, 공부를 잘하여 상위권에 속하는 인물로 부유한 집안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우등생의 모습을 보이지만, 연재에게 진정한 친구로서의 연대를 만들어 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처럼 어느 하나의 등장인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이 아닌 다층적인 시점으로 전개되다 보니 조금은 복잡해 보일 수 있으나 이야기의 흐름이 끝까지 잘 유지되어 읽어가는 데는 불편함이 없이 전개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서로의 관계에서 이어지는 연대감이 주는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갈등과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사회 풍경 속에서 작가인 천선란은 보여주고 싶은 자신만의 미래 도시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다양한 미래 도시 속에서 오로지 한 장소인 경마장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경마장에서 ‘투데이’라는 경주마와 기수가 로봇으로 대체되어 오래된 세상에서 경주마 ‘투데이’와 기수인 콜리(C-27)가 함께 교감을 하며 펼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한 때는 인기 있는 경주마인 투데이는 무릎 연골이 모두 소멸되어 다시는 달릴 수 없게 되어 폐기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콜리(C-27)는 더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마음을 알기에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경’은 소방관인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사고로 잃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상실감에 빠져 치유되지 못한 마음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아이들한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리고 큰 딸 은혜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 증상으로 다시는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마음에 항상 자유롭게 걷거나 달리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자신처럼 자유롭게 달리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에 있는 투데이에 많이 투영된 모습을 통해 자신 스스로를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연재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부족한 인간관계를 콜리(C-27)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이렇듯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형식을 아니지만,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가족 간의 교감을 통해 서로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세 번째는 연재와 지수와의 우정에 대한 공감이다. 지수는 우등생이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적극적인 친구이다. 그에 반해서 연재는 서투른 인간관계로 인해 홀로 지내기를 좋아한다. 지수는 공공 로봇 공모전에 출품할 아이디어를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한다. 공모전에서 입상 이상 수상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결국 지수와 연재는 함께 하게 되면서 다양한 갈등을 겪게 되고, 둘의 관계를 이해한 콜리(C-27)는 조언을 해 주며 직접 대화를 해 보라고 권한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터 놓고 대화를 함으로써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투데이와 콜리(C-27)와의 마지막 경주를 응원한다.
이렇게 《천 개의 파랑》은 SF 장르적 특징이 거의 없는 소설이다. 물론 SF 장르의 장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 전개 상 배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로봇이 등장한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 흐름상 인간과 로봇, 그리고 동물인 경주마의 종의 연대를 통해서 서로 가지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 가는 소설이다.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콜리(C-27)가 등장한다. 그리고 콜리(C-27)를 통해서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하고, 인간들의 이야기들을 자신에 저장되어 있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소통을 한다.
《천 개의 파랑》에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존재의 가치에 대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이든 로봇이든 그리고 동물이든 가치 있을 때는 이용만 하다가 그 쓰임이 다했을 경우에는 가차 없이 버려지며 소외되는 현실적 비판을 담겨 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급속하게 이루지는 사회 분위기를 통해서 과연 나는 행복한가? 자유롭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 경주마 ‘투데이’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행복함과 자유로움이 주어지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폐기되는 처지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은혜도 휠체어에 몸을 기대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같은 처지를 담고 있고 그럼으로써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각자의 시간을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 장애로 인해서,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각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아닌 각자가 처해 있는 시간을 각자의 속도대로 흐른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존중과 존엄성의 가치, 그리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천천히 달릴 수 있다는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설이 《천 개의 파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선란 작가는 작가의 후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내 휴대폰 메모장 가장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 써놨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 이 문구를 보며 지구가 변해가는 속도와 놓치고 가는 사람, 그리고 동식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천 개의 파랑』을 썼다.
소설을 쓰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천천히 걷는 연습 중이다. 뛰는 발걸음에 지나가던 개미가 밟히지 않도록.
인상적인 문장
희박한 반전에 기대를 걸 만큼 체력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은혜는 사람들이 전가한 ‘한 사람의 몫’을 아직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반쪽짜리 사람이랄까.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혼자 다니기 위험한 영유아처럼 은혜에게도 반쪽의 몫을 보충해 줄 보호자가 늘 필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은혜의 판단이 아닌 은혜를 지켜보는 타인의 판단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의문이 연재의 생각을 좀먹기 시작한 후 연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조차 포기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전부 다 접어도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운이 나빠서 죽게 되는 경우는 단순해요. 그 좁은 마방을 벗어나 살 곳이 없거든요. 저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무턱대고 반대하는 건 결국 그 아이들에게 알아서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미 이 행성은 인간 중심의 행성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이곳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라며 문을 열어 주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좁은 케이지 안에서, 정해진 시각에 배식하는 기계에게 온기를 느끼겠다고 몸을 비비는 아이들을 보며 이 행성에서 인간이 사라졌으면 하고 얼마나 많이 바랐던가.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인 이 행성에서 동물들은 변화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연재가 자라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죄로, 보경은 어느 날 갑자기 연재가 아이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아이가 아님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정했을 뿐이지, 보경은 아직까지는 그 세상을 오롯이 자신이 책임지고, 슬픔을 삼켜야 하는 어른의 세계로 연재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아쉽다.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지 오래돼서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쉬움에는 약간의 설움이 섞여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아쉽다는 단어를 꺼내면서, 아쉬움에 면역되지 않은 마음이 설움에 정복당하는 듯했다.
힘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록 생명이 무언가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