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외과의사 엘리엇은 신비한 기회를 통해 30년 전의 자신과 만나 세상을 떠난 연인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과거의 선택이 현재에 예상치 못한 나비 효과를 일으키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삶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Seras-tu la?
기욤 뮈소
역 전미연 · 밝은세상 · 2022.01.19 · 프랑스소설
2025.09.24 ~ 09.26 · 6시간 30분
정말 오랜만에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23년에 읽은 ‘구해줘’ 이후로는 처음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구해줘’는 내 머릿속에 잠재되어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인상적인 소설이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기욤 뮈소’의 소설을 오랜만에 꺼내 보게 되었는데, ‘구해줘’와는 다른 스토리 전개로 흘러 가지만 스토리 전개 방식의 간결함, 빠른 흐름, 긴장감과 흡입력과 같은 것들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더 빠른 스토리 전개와 긴장감과 흡입력, 집중력은 ‘구해줘’보다 더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마치 영화관에서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활자로 빠르게 보고 나온 느낌이랄까. 내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다 갖춘 소설이라 감히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아직 두 편의 소설 밖에 읽지 못했지만, ‘구해줘’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공통점을 찾으라며,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구해줘’에서는 죽은 여자친구가 다시 환생하여 지금의 여자친구를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는 설정이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시간 여행을 주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두 소설의 공통점인 러브스토리가 기본 베이스로 전개된다.
‘구해줘’가 처음 출간된 당시에는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관념적이고 지적 유희에 매몰되어 있던 시기였고, 당시까지 프랑스에서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실험적인 소설로 프랑스 문학계를 뒤집어 놓은 소설로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보여 줌으로써 ‘기욤 뮈소’라는 젊은 작가에게 찬사를 던진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 ‘구해줘’는 영화로도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도 우리나라에서 2016년에 영화화되었지만, 그다지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영화를 먼저 봤다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로 먼저 읽은 점은 대단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개인적으로 소설이 원작이고 읽은 소설이라면 굳이 영화를 보는 편이 아니어서 그렇다. 영화로도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대부분이 원작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실망했던 옛 과거의 사례를 비추어 보더라도 원작을 영화화한다고 해서 크게 기대를 한다거나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소설의 큰 흐름은 말기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60세 외과 의사가 우연한 기회로 얻은 알약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말인데,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단순하게 볼 수 있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어쩌면 너무 식상한 소재로 볼 수 있겠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잘 짜여진 플롯으로 뻔할 것 같은 소설을 기막히게 반전시켜 놓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매개 삼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하는 명제를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책임, 그리고 용서를 하기 위해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스토리의 빠른 속도로 풀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고, 활자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영상미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묘사들이 영화 같은 읽는 맛을 주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인지 ‘기욤 뮈소’의 소설은 안 읽어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소설 속 현재 시간은 2006년, 언제 죽을지 모르는 60세 외과 의사 ‘엘리엇’은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을 이장한테 알 수 없는 알약 10개를 받는다. 그리고 잠을 잘 때마다 알약 한 개를 먹으면 30년 전인 1976년으로 돌아가 젊은 모습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60세 외과 의사 ‘엘리엇’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30년 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일리나’를 사고로 잃었고,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탓에 알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간다. 그렇게 9번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젊은 엘리엇 즉, 1976년 당시의 엘리엇이 자신의 연인 ‘일리나’가 사고로 죽는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져 어떻게 해서든 일리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60세 엘리엇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2006년의 엘리엇에게는 엔지라는 소중한 딸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연인 ‘일리나’를 살리게 되면 현재의 딸인 엔지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60세 엘리엇은 그것만은 막고 싶었으나, 젊은 엘리엇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연인을 살리려 60세 엘리엇과 딜을 하게 된다. 일리나를 살리려면 자신과 3가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리나를 살릴 수 있고 자신의 딸인 엔지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 약속은 일리나를 살리되 헤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는 것, 가장 친한 친구인 메트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엘리엇은 일리나를 살리고 이별을 통보한다. 일리나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른 선택을 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진다.
소설 속 주된 인물은 많지 않다. 주인공인 60세 외과 의사 ‘엘리엇’과 젊은 30대 엘리엇은 어렸을 때부터 받은 아버지의 폭력과 그 폭력에 어머니는 자살로 이어진다. 불운한 가정으로 인해 충격을 받지만 그런 엘리엇에게 위로가 되어 준 것은 일리나였다. 엘리엇은 훌륭하게 자라 명망 있는 외과의사로 성장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와 담배로 인해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일리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일리나는 엘리엇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엘리엇은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일리나를 피하게 된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과연 자신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연인 ‘일리나’는 엘리엇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인물로 범고래 조련사로 일하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다. 알 수 없는 엘리엇의 이별 통보와 사고로 인한 여러 번의 수술로 인해 수많은 고통 속에서 다시 기사회생하며,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에서 리더로 왕성한 활동하는 환경 운동가로 변신하고 교단까지 올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자로, 그리고 30년이 흘러 엘리엇의 이별 통보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트’라는 인물은 엘리엇의 절친한 사이로 서로에게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엘리엇의 절교로 15년 동안 교류를 끊고 절교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결국 그 이유를 알게 되지만, 마지막 반전을 이끌어 내는 인물로 친구인 엘리엇과 일리나를 살리게 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가 중심에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를 바꾸는 행동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도덕적, 정서적인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고, 그로 인해 상처와 회복, 그리고 용서를 통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에게 짊어져야 했던 아픈 과거로부터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치유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시간 여행이라는 진부한 장치를 통해 서사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과거를 바꾼다고 하는 설정이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옳은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복잡한 얽힘들이 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시간 여행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과거를 바꾸는 장치로써 가지는 의미도 있겠지만, 주인공 엘리엇, 개인에게는 내면의 성장과 깨달음을 주는 도구로써 가지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의 삶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살아가면서 용서를 구하는 힘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만약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면, 아니면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 보게 되었다.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운명까지 바뀐다면 나 개인으로써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읽어 갈수록 집중력이나 흡입력이 매우 뛰어날 정도로 정리도 잘 되어 있다. 2006년의 현재와 1976년의 과거의 이야기들이 짜임새 있게 구분해서 진행되다 보니 시대상의 흐름이 잘 보이고, 그럼으로써 이야기가 주는 서사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도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 엘리엇의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는데, 기욤 뮈소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흐름이 돋보인다는 점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읽는 내내 영화처럼 장면이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소설 속으로 빠지게 하는 힘을 느꼈다. 소설 속의 결말 부분에 도달했을 때는 아마도 눈가에 촉촉함을 느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얘기해 본다. 그만큼 소설 속에 빠지게 되면 느낄 수 있는 반전과 감정들이 마지막에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과 선택, 사랑과 후회 같은 감정들을 잘 풀어낸 기욤 뮈소의 소설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기욤 뮈소의 다른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문장
노신사가 지금껏 자신이 확신처럼 가지고 있던 생각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고, 모든 걸 송두리째 의심하게 만들었다. 차마 남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비밀을 켜켜이 쌓아가며 살아가는 게 바로 인간의 서글픈 운명이 아닐까.
우리의 생에서 사랑이나 우정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누구에게나 혼자 극복해 나가야 할 내밀한 문제가 있게 마련이었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도 믿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다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사랑을 주지 못할까 봐, 그의 부모처럼 자식에게 고통만 안겨주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아빠가 된다는 생각만 하면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답답한 수족관 생활이 결국 범고래의 머리를 돌게 만든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엘리엇이었다. 둘이 함께 살아가며 나이가 들어갈 거라 믿었는데,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어야 한다는 게 서글펐다.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운명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인간의 삶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니까.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나는 코코아 한 잔과 시나몬 치즈케이크를 먹으려고 들어간 암스테르담 카페에서 나오다가 비를 맞으며 첫 키스를 했다. 그 순간적인 키스가 그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세상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바꿔놓았다.
자유롭게 운명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 운명에 영향을 미칠 힘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었는지 이제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인간의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미래란 점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이미 나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다.
엘리엇에게 앤지는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그는 비로소 앤지를 희생시키지 않고 일리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여행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딸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쁨은 때로 정체불명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행복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른 뒤에 찾아오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6년 전 앤지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하면서 삶은 다시 평화를 찾았지만 그는 이 행복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행복은 너무 쉽게 익숙해진다는 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