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단순하며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닌 청년 교사가 시골 중학교에 부임해 교직 사회의 위선과 갈등 속에서 정의감을 실천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순수함과 인간적 양심이 어떻게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려 하는지를 그린 소설
도련님
坊っちゃん (1906)
저 나쓰메 소세키 · 역 오유리
문예출판사 · 2019.06.25 · 일본소설
2025.08.28 ~ 08.30 · 4시간 20분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두 번째 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한 ‘나는 고영이로소이다’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소설이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또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 대 초,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풍자적인 문체로 당시 일본 사회의 관습이나 인간관계의 위선적 모습, 그리고 사회와 권력 구조에서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접근하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쿄에서 태어난 주인공 도련님은 성격은 거칠고, 다혈질적이며, 까칠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소유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정직과 양심이 몸에 밴 청년으로 시골 중학교의 수학선생으로 부임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부조리들을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으로 그린 소설이라는 점은 《도련님》이라는 소설이 가지는 의미도 같은 선상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주인공인 ‘도련님’은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동네에서 이름난 말썽꾸러기에 장난꾸러기라는 평을 듣게 된다. 때문에 부모님과 형으로부터 노골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홀대를 받게 된다. 특히, 아버지는 형만 편애하지만 도련님은 그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품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내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정직함과 양심, 그리고 솔직함이라는 면도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런 성격 탓에 새로 부임하게 되는 외딴 시골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한몫하게 된다. 부임하게 된 중학교에서 동료 선생들의 위선적인 태도와 마주하게 되고, 붉은 셔츠라고 하는 교감의 위선적인 태도와 아첨하는 모습에 정직함과 양심적인 성격을 지닌 도련님과 마찰을 일으켜 대놓고 충돌하게 된다. 결국 도련님은 산미치광이 선생과 함께 부조리에 맞서 싸워 붉은 셔츠 교감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응징하고 중학교를 떠나 다시 도쿄로 돌아와 하녀 ‘요기’와 함께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중학교에서 도련님은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사건은 학교로 부임한 신입 수학선생, 도련님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숙직을 맡았고, 늦은 밤 기숙사의 숙직실에서 잠을 자려고 침실의 이불을 들쳤는데, 많은 수의 메뚜기가 튀어나오고, 기숙사생들이 새로 부임한 도련님 선생을 놀리려 장난을 친 일로 기숙사생들은 일주일간 외출 금지와 수학선생 도련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건이 있고, 두 번째 사건은 교장과 교감이 짜고 다른 선생을 오지의 다른 학교로 전근을 보내려고 한다. 이유는 선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렵게 되자 월급을 올려 달라는 말에 선생을 더 먼 곳으로 전근을 보내 버린다. 도련님은 교감이 그 선생의 배필이었던 여자를 가로채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세 번째 사건은 친하게 지낸 산미치광이 선생이 도련님이 지내는 하숙집에서 내쫓고 다른 곳으로 하숙집을 옮기고, 이전 하숙집에는 빨간 셔츠 교감의 주종관계인 선생이 하숙을 하게 된다. 때문에 도련님은 배신감을 느껴 일전에 얻어먹은 음식값을 돌려줌으로써 관계를 정리하려 하지만, 늘 산미치광이 선생의 책상에는 놓여 있는 음식값은 그대로 놓여 있어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곧 산미치광이 선생은 화해의 요청으로 오해를 풀고 다시 예전처럼 친분을 쌓게 된다. 네 번째, 전승전 축제 행사 중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이 붙어 산미치광이 선생과 도련님이 함께 싸움을 말리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두 명의 선생은 학생들을 선동해서 함께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신문 기사가 난다. 붉은 셔츠 교감선생의 계략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신미치광이 선생은 교장으로부터 사직을 당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주인공 ‘도련님’은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으며, 천덕꾸러기로 살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까칠하고 단순하여 무모함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이며, 부조리와 위선에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직함만은 지키려는 신념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취미가 있다. 실제로 소설 속의 인물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지 않고 붙여진 별명으로 등장한다. ‘기요’는 어린 시절 자신의 집에 식모살이(하녀)를 했던 나이 많은 할머니로 등장하며,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던 도련님을 헌신적으로 도우며, 애지중지 뒷바라지하며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외딴 시골 중학교 부임 이후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는 곳마다 기요를 그리워 하는 모습을 내비친다. 그리고 ‘산미치광이(야마라시) 물리 교사’는 도련님 동료 교사로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구석이 있지만, 호탕함과 솔직함으로 인해 도련님과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도련님을 도와주기도 하고, 말 벗이 되어 주고, 함께 행동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붉은 셔츠 교감(문학사)’은 교장과 결탁하여 학교에서의 모든 일에 부조리와 비리를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아주 친근하고 좋은 인상을 하며, 주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교활하고 위선적이며, 거짓말을 잘하는 인물로 문학사답게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여 사람들을 현옥 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도련님을 자신의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만 뜻대도 되지 않는다.
이렇듯 도련님은 학교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는 과정 속에서도 전체 스토리에 진지함을 보여주기보다는 유머러스하면서 유쾌함으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도련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이 아닌 도련님이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쓴 회상록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읽으면서 알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제목이 왜 《도련님》일까? 하는 부분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의 도련님이라는 등장인물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1900년 대 초, 당시 일본 사회의 통념적인 호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하녀 기요가 애정을 가지고 부를 때만 사용되는 호칭으로 사용된다. 이름은 등장 조차 되지 않는다. 사회 통념상 도련님이 가지는 의미는 철부지, 또는 철없는 남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호칭으로 부유한 집안의 자제를 부를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사회 속에서는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때문에 성인 사회 속에서 순수하고 미숙한, 그리고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련님의 성격과 닮아 있는 모습에서 도련님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정직함과 양심적, 위선적이지 않은 올바른 주인공의 정체성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도련님이 가지는 의미와는 다르게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 구조 속에는 모든 것이 위선적이고 아첨으로 가득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근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된 모습과 도련님이라는 의미의 가치와는 배치되는 구성으로 소설이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세속적인 이해관계가 득실대는 당시 시대에는 도련님이 붙잡으려 했던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닌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과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인간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 그리고 소설 속에서 도련님과 하녀 기요와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따뜻한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가치를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고, 위선적이지 않고 양심에 기대어 진실됨을 지키려 했던 것임을 도련님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의미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욕심, 지위가 가지는 권력보다 소중한 인간관계의 진심이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불합리적이고 위선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도 아직도 정직함과 양심, 그리고 도련님이 가지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순수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더욱 건강한 모두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상적인 문장
도련님이라는 정체성은 인생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모르는,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순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비롯된다.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때 진지하게 받아들여 용서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논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이다.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때 진지하게 받아들여 용서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