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이치로는 지적이고 예민한 인물이지만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하고, 아내와 동생 사이의 관계마저 의심하며 점점 고립되어 간다. 소설은 가족 간의 미묘한 감정과 내면의 불안을 통해서 근대 사회 속 인간의 고독과 불신을 탐구한 소설

행인
行人
나쓰메 소세키
역 송태욱 · 현암사 · 2015-08-31 · 일본소설
2026.0526 ~ 06.05 · 12시간 51분
내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5번째 책, ‘행인’은 조금은 낯설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장까지 넘기면서도 한참을 멍 때리며 창 너머 먼산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책 중에서 가장 난해한 소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딱히, 주제 의식도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특징이 없는 무색무취한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다거나 아니면 극적인 반전은 보이지 않는다. 반전이라 한다면 이치로와 동료 교수인 H와 여행을 하며 쓴 편지에서 드러나는 이치로의 내적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후반부가 나름대로 극의 흐름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꽤나 긴 장문으로 이어지면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기에 그동안의 이치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서 그냥 등장인물들의 내적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진행되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다소 있다고 봐도 좋을 듯싶다. 인간의 내면 깊이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을 들춰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나쓰메 소세키의 풀어가는 필력이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꼈다고 하면 맞을 듯싶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는 ‘이치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치로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지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식인이지만, 자신의 아내인 '나오'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떠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자신의 동생인 ‘지로’에게 자신의 아내이자 지로의 형수를 데리고 단둘이 하루 정도 여행을 다녀왔으면 하는 부탁을 하게 된다. 아내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나오가 동생인 지로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을 벌인다. 의처증 환자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이치로의 무모한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잃는다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 마련일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완전하게 알 수 없다는 불안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러한 인간의 내면의 감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본질적 고독감을 잘 표현했다고 하면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지로’는 이 소설의 화자이자 이치로의 동생으로, 지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집 안에서는 결혼을 재촉하지만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지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형인 이치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이치로 아내 나오와의 관계, 그리고 이치로를 걱정하는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동료들의 이야기 속에는 늘 형 이치로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이치로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들을 보며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이치로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뿐인듯하다. 그리고 가족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애쓴다. 이치로의 행동들과 내적 감정을, 가족의 불안함을 이치로 자신의 입으로 전하지 않는다. 오로지 화자인 지로의 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할 뿐이다. 때문에 더 답답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리고 형수인 나오에 대한 감정이 지로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치로의 시험을 위해 형수인 나오와 지로는 단둘이 하룻밤을 오사카에서 보내게 되고, 이후로 지로의 내면에서는 형수인 나오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데, 아주 조금은 나오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형인 이치로와 지로의 감정의 골은 깊어가면서 지로의 마음고생은 심해진다. 이치로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교수 H의 도움을 받아 이치로와 여행을 가게 되고 여행하는 동안의 일을 기록하여 지로에게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H로부터 전해 받은 장문의 편지를 통해서 이치로의 심리를 알 수 있게 되지만,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냥 편지를 읽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는 게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고 묘한 감정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고심한 끝에 내린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인간의 감정에서 믿음이 없다면 관계를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는 데서 생각이 깊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치로와 같은 감정을 담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은 특별한, 조금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은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국 소수의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치로를 통해서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 더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 보면 이치로와 같은 인간은 왜 타인을 믿지 못하는 걸까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행인’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면인 의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결국 믿지 못한다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 완전한 신뢰와 믿음은 갖기 힘든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치로도 아내인 나오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의심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이치로는 믿음이 없다면 다른 누구와도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고독을 자처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에 살았던 작가로 당시의 일본 사회에 깊은 불안과 고독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읽은 그의 소설 속에서 대부분 그런 부분들이 잘 묘사되었거나 일본 사회의 어두운 한 단면을 이야기하는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들이 많은 것도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제목이 왜 ‘행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소설을 읽어 가면서 왜 제목이 행인인지 의구심이 들어가면서 느낀 나의 생각은 이렇다. 행인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는 길을 가는 사람,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즉 나그네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하러 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문학적 표현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이 어째서 ‘행인’인지를 개인적으로 해석을 해 보면 이치로는 가족에게도, 사회에서도, 이치로 자신에게도 완전하게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목표의식이나 목적의식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 또는 행인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해 볼 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기에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행인’은 읽는 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각이 더 깊어지게 만드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과연 타일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존재인가, 그리고 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되묻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과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타인을 믿으려는 마음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믿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관계는 이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세상을 믿어야 타인도 나를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행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불확실한 내면의 불안과 고독에 대한 유효한 문제들은 과거에서도, 현재에도, 미래에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너무 깊이 있게 생각할 부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해서 모든 것이 형성된다는 점에는 의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