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인류 문명이 붕괴한 혼돈 속에 진화생물학자 알리스는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해 혼종 인간인 키메라를 창조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혼종의 신인류와 구인류(인간, 사피엔스) 사이의 갈등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소설
키메라의 땅 1
Le temps des chimeres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 김희진 · 열린책들 · 2025.08.20 · 프랑스소설
2025.09.27 ~ 09.30 · 5시간 55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게 되었다. ‘키메라의 땅 1’과 키메라의 땅 2’는 최근 9월 초에 출간된 소설로 쟁여 놓은 책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신작이라서,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출간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던 소설이었다. 누구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그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한 동안 손을 놓은 적이 있다. 아마 작년 초에 ‘뇌’를 마지막으로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흥미를 잃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이전까지는 접했던 그의 소설들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뇌’라는 소설은 나에게 조금은 다른 결을 보여주는 소설, 이전에 알고 있었던 작가의 책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조금은 실망감을 안겨준 책이라는 점 때문에 잠깐이지만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어찌 되었든 다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볼 수 있음에 기대감이 앞서기는 했지만, 조금은 또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긴장감마저 즐기고 있었다.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책 한 권이 떠올랐다. 하버트 조지 웰스 작가의 ‘모로박사의 섬’이라는 소설이다. 모로 박사가 외딴섬에서 다양한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새로운 종의 인류를 탄생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동물들의 신체의 일부를 접합하여 동물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을 만들었고, 이렇게 탄생한 이들은 인간화 교화를 통해 인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새로운 종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모로 박사는 자신이 만든 동물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모로 박사는 다양한 동물들의 신체의 일부를 이어 붙여 새로운 종을 만들었고, ‘키메라의 땅’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알리스’는 진화생물학자로 신인류를 키메라라 명하고 인간과 동물 유전자를 조합하여 신 인류를 탄생시키다는 점에서 크게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로 박사의 섬’이 최초로 출간된 시점이 1896년이다. 그때 당시에는 DNA라든가 유전자라는 개념이 전무했을 시기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과학적 발전으로 보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단계에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의 배경은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가까운 미래일 것으로 추측된다.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이렇다 할 정도로 내용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딱히 배경에 대해서 뭐라 할 부분은 없다. 아마도 등장인물에 집중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화생물학자 ‘알리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신 인류를 탄생시키는 과학자로 등장한다. 알리스는 인류이자 사피엔스인 인간의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 유전자를 인간 유전자와 결합하여 보다 다양한 환경에 적합하게 적응할 수 있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혼종 인류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신인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언론에 노출이 되자 좀 더 안전한 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부 장관이자 친구인 ‘뱅자맹 웰스’의 도움으로 우주 비행사로서의 교육을 수료하고 우주 정거장이 있는 우주로 날아간다. 야기서 등장하는 ‘뱅자맹 웰스’는 에드몽 웰스의 후손이다. 하지만, 우주 정거장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나 연구자 중 둘은 사고로 잃고, 우주 정거장의 선장과 동료 과학자인 ‘시몽’, 그리고 알리스만 살아남게 된다. 연구를 진행하던 중, 지구에서 뜻밖의 제3차 세계대전으로 지구는 멸망에 가까운 핵전쟁이 일어나 지구는 파괴되고 인류는 큰 타격을 입고 문명은 무너진다. 우주 정거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년 정도로 1년이 지나면 연료가 떨어져 중력에 의해 지구에 추락하게 된다. 알리스와 시몽은 혼종 태아 샘플을 가지고 지구에 돌아오고, 핵전쟁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방사능을 피해 지하(방공호)로 숨어 들은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며, 혼종들이 태어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알리스와 시몽 사이에서도 딸이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혼종과 인간이 함께 성장하며, 살아가게 된다. 지하 방공호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즉 그들의 공동체를 '뉴 이시바'라고 부르며, 매 순간 순간을 최대한 누리고 즐겁게 살자는 의미로 카르페 디엠을 받아 들이고 살아가는 생존자들이다.
소설 속에서 얘기하는 제3차 세계대전인 핵전쟁이 일어나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핵전쟁이 아시아에서 비롯된다는 설정이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한반도에서, 유럽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북한이 먼저 공격을 해오고 대한민국이 방어하며 반격한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소설 속에서의 핵전쟁은 동시 다발적으로 핵으로 무장한 나라 모두가 핵 버튼을 눌렀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지구는 핵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인류 대부분은 사라지고, 문명은 파괴되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소설 속에는 20년이 지난 시점에 자연만이 재생되어 지구를 되살리고 있다는 점과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전쟁 이전의 모습이 아닌 채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사능 수치는 크게 떨어졌지만, 자연이 숨 쉬는 숲 속에서는 사람이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듯 하지만, 우크라이나 북쪽에 있는 체르노빌에서 1986년 4월 26일,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지역 일대는 황폐화되고 죽음의 땅이 되었지만, 새로운 동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마도 소설 속에서는 참고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혼종이라 함은 세 가지를 얘기하는데, 에어리얼(Aerial) 혼종은 인간의 유전자와 박쥐 유전자를 혼합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특성을 가졌고, 신들의 이름 중에서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디거(Digger) 혼종은 인간과 두더지 유전자를 혼합하여 땅속, 지하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름은 하데스라 했고, 마지막 세 번째, 노틱(Notic) 혼종은 인간과 돌고래 유전자를 혼합하여 물속, 수중에서 살아갈 수 있어 생존율을 높일 수 있고 이름은 포세이돈이라 했다. 이렇게 세 종류의 혼종들이 태어나면서 이들의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얘기하는 장면에서는 나름대로 상상하게 되는데, 특히, 에어리얼 혼종의 경우, 왠지 꺼림칙하고 징그럽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많은 동물 중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독수리나 너구리 같은 동물이 아닌 박쥐와 두더지였어야 했는지 조금은 아쉬움이 있는 것도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태어난 세 종류의 혼종인 에어리얼, 디거, 노틱들을 통틀어서 ‘키메라’라 부른다. 이렇게 세 가지 혼종들은 키메라이자 신인류로, 인간은 구인류로 분리하게 된다. 신인류인 키메라들과 구인류의 인간이 지하 방공호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역사 교육이나 사회적 적응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함께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방공호에서 지낸 지 15년이 흐르고 신인류인 키메라들은 많은 수의 개체의 증가와 더불어 구인류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구인류 중에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는 혼종들이 중재를 하기도 하지만, 에이리얼 혼종 중에 하나가 구인류의 여자 아이 하나를 강제로 추행하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신인류와 구인류 사이에 집단 난투가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몽은 이때 사망하게 된다. 알리스는 신인류와 구인류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현실에 깊은 괴리감에 빠지게 되고, 알리스는 자신의 딸과 혼종들과 함께 지하(방공호)에서 20년 만에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20년 동안 황폐화된 지구를 바라보며 많이 변화한 환경들에 점차 적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혼종들도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며, 방사능 오염이 적은 숲 속에서 방호복을 벗으며, 편안하고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그곳에서 정착하기 위한 터전을 만들기로 한다. 에어리얼들은 높은 곳에 집을 짓고, 디거들은 땅 속에 굴을 파고, 노틱들은 연못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뜻밖에 일이 발생하는데, 키메라 중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디거 중에서 그리고, 노틱, 마지막으로 에어리얼이 차례로 새로운 키메라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한 알리스는 이들이 지구에 안착하며 생존 본능과 생식 능력에 의문을 품어 왔지만, 우려했던 부분들에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1편에서는 구체적으로 이 소설이 얘기하고자 하는 방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보면 신인류와 구인류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이 일어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구인류 안에서도 갈등이 존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종교적 대립을 꼭 집어서 얘기하며 구인류 안에서의 갈등을 풀어놓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종교적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을 배척하기도 하고,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모습에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은 없어지고, 인간은 왜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오로지 흑백논리를 들며, 나와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배척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만, 키메라들은 역사와 전통이 없는 혼종들로 구인류의 이런 모습에 중재를 하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 년, 천 년 전의 일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모습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런 모습들 속에서 알리스는 과연 키메라들은 어떤 윤리적 사고와 사회적 갈등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구인류하고의 공존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일까 하는 자신이 만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키메라를 창조했다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신인류 키메라에 대한 정체성과 책임, 공존과 같은 차이를 본질적이고 근본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를 이용하여 새로운 종을 만드는 것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나 도덕적 판단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있게 다루지는 않고 있다. 다만, 새로운 종을 만드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먼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며, 나름대로 변론을 얘기하는 모습이 있기도 하다. 물론 인간과 동물이 아닌 암말과 수당나귀를 교배하여 노새를 만들었듯이 진화생물학자 알리스도 비판적 시각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연적 선택이었음을 내비치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언론에 노출되었을 때, 비판론자에 의해 죽을 뿐한 것과 핵전쟁 이후 지하 방공호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비판적인 사람들과 마찰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혼종들과 함께 쫓겨나게 된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도 있는 것은 맞을 것이지만, 만약, 그런 것들에 매너리즘에 빠졌다면 이 소설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 않겠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키메라의 땅'에서도 특유의 상상력이 잘 드러낸 소설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는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잘 담는 작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 중에서 소설 속의 세계관의 구조를 잘 만들고 정리하는 것도 탁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읽으면서 이런 부분까지 생각을 했단 말인가 할 정도로 전체적인 구성이 짜임새 있게 허투루 진행하는 법이 없다. 잘 짜여진 세계관과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상상 속 아이디어를 잘 녹여 전개하고 있는 것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도 여전히 지식 쌓기에 좋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만의 독특함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해서 좋다.
어찌 되었든, 1편에서는 신인류와 구인류 사이의 간극을 만들고, 갈등이 반복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갈등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고 끝을 맺고 있기에 2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듯한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신인류 키메라들은 과연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또 어떤 갈등이 일어나고 봉합 되면서 이들이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2편 독서에 몰입해야 할 듯하다.
인상적인 문장
에스겔서 (38장 21절)와 스가랴서(14장 13절)에 이미 하느님의 적들이 서로를 죽일 때가 오리라고 쓰여 있다. 또한 시편(37장 29절)에서는 그것이 지구의 종말이 아닌(지구는 인간의 영원한 거처이므로) 한 부류의 인류의 종말, 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자들의 종말일 거라 예언한다.
<키메라의 땅 1> 에드몽 웰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중에서
무능한 사람일수록 제 실력에 대해 의문을 덜 제기한다. 그리고 실제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의구심에 가득 차 있다.
<키메라의 땅 1> 에드몽 웰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