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딪쳐 보는 것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하는 것이다.”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키메라의 땅 2’ 새로운 키메라의 등장과 혼종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여정을 담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를 그린 소설

by kimdirector 2025. 10. 13. 08:01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인간과 동물의 혼종인 에어리얼, 디거, 노틱의 갈등으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여정과 또 다른 혼종인 키메라가 등장하면서 반전을 불러오고 멸망 이후의 지구,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이들이 맞이할 운명을 개척해 가는 여정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

 

 

 

 

 

 

키메라의 땅 2

Le temps des chimeres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 김희진 · 열린책들 · 2025.08.20 · 프랑스소설

2025.10.01 ~ 10.07 · 7시간 31분

 

 

 

 

 

 

 

전편에 이어 2편에서는 제3차 세계대전인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 문명이 파괴된 지구에서 키메라들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시간은 알리스와 그의 딸, 오펠리 그리고 혼종인 에어리얼, 디거, 노틱 혼종들은 뉴 이시바 공동체에서 구인류와의 갈등으로 퇴거 되고, 퀴퀴파 숲에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기 시작하고 5년 정도 흐른 뒤부터 시작된다. 알리스는 이제 나이가 50살을 넘어가고 있고, 그의 딸 오펠리는 20살을 넘기면서 이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갖추기 시작했다. 알리스는 세 혼종들이 서로 협력하며 성장하며 서로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지만, 이는 드러내지 않은 평화에 불과했고, 세 혼종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 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1편 마지막에 세 혼종들은 새끼들을 낳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뒤인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늘었고 이제는 대도시를 이룰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세 혼종들은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각자의 왕이 되어 혼종들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에어리얼 혼종은 헤르메스를, 디거는 하데스를, 노틱은 포세이돈을 각자의 왕이라 스스로를 추대하며, 각자의 왕궁에서 나름대로 누리고 살고 있지만, 각자에게는 서로에 대한 증오심과 자신의 혼종만이 우월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세력 다툼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세 혼종은 각자의 길을 찾아가게 되는데, 에어리얼과 노틱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터전을 버리고 에어리얼은 북쪽으로 이동해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사피엔스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게 되고, 노틱은 서쪽으로 이동해 바닷가에서 새로운 터전을 구축하여 돌고래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세 혼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 가지만 디거 혼종과 노틱 혼종은 지속적인 갈등이 결국 폭력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노틱 혼종은 디거들과 전쟁 중이지만, 사피엔스들과의 전쟁도 겪고 있었다. 노틱 혼종은 돌고래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혼종들이기에 돌고래들에 복종하게 되고, 돌고래들은 지난 과거에서 자신들을 사피엔스들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키고 좁은 수족관에서 살아가게 했다는 점, 그리고 바다 환경을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사피엔스들에게 복수를 하며 전쟁을 벌여 왔다는 것이다. 에어리얼 혼종을 제외한 디거 혼종과 노틱 혼종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사피엔스들과 전쟁을 일으키며 세력 다툼을 벌이며 자신들의 혼종이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분열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간다.

 

특히, 디거 혼종과 노틱 혼종의 도시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디거 혼종의 서식지에서는 철창에 가둬져 살아가는 수용소의 사피엔스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수용소는 디거들이 만들어 놓은 수용소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일을 맡겨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 빈둥거리며 일을 하지 않고 빌어 먹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종교적인 것이 있는데, 핵전쟁 당시 하늘을 가득 메웠던 버섯구름을 찬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했지만, 이들은 멸망이 아닌 정화되었다는 점을 들면서 디거들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노틱 혼종들의 서식지에는 사피엔스들이 핵전쟁 이전에 운영했던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피엔스 남자와 여자를 가둬 놓고, 노틱의 어린아이들에게 구경을 시키며 멸망한 구인류라고 소개하며 노틱들의 역사 공부에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혼종들은 구인류인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배운 점들을 이용하고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리스는 충격을 받게 된다. 결국 이들 혼종들도 구인류인 사피엔스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충격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며 혼란을 겪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소설 속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 다른 소설 ‘파피용’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파피용’을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데, 이 소설이 언급되고 있는 재미있는 부분은 지구가 더 이상 인류가 살아가지 못할 위기에 처해지기 직전으로 파피용이라는 나비를 닮은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인류를 태우고 지구를 탈출하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소설이다. <키메라의 땅>의 스토리가 파피용이 지구를 떠난 이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2편에서 드러난다. 1편에서는 시대적인 배경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시점이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파피용이 지구를 떠난 이후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피용’에서도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부분들이 재미있게 생각되어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유머와 위트는 가끔씩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그리고 1편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2편에 등장하는 인물도 있다. 디스패치 기자였던 인물은 1편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데, 알리스의 혼종 개발 프로젝트를 언론에 폭로했던 남자가 노틱의 자연사 박물관의 구인류의 기념물로 전락하여 노틱 혼종들의 아이들의 학습을 위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알리스는 그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는 알리스를 서로 알아보게 되는 장면이 아이러니하게 비쳐지지만, 알리스는 혼종들의 탄생으로 빚어지는 일들이 왠지 자신 때문인지 의심하게 되며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또 한 사람, 핵전쟁 이전에는 프랑스의 연구부 장관이며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뱅자맹 웰츠’는 에드몽 웰츠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알리스의 조력자로 등장했던 인물이 2편에서는 조금 더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그의 아들 조나탕 웰츠도 등장한다. 특히, 뱅자맹 웰츠는 알리스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혼종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세 혼종만으로는 안정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안정적인 형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불의 원소를 가진 혼종이 필요하다는 것이 뱅자맹의 주장이며, 세 가지 원소보다는 한 가지를 더한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야 완성된다는 점을 이해시킨다. 에어리언 혼종은 공기 원소를, 디거 혼종은 흙의 원소를, 노틱 혼종은 물의 원소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가 빠진 네 번째 원소인 ‘불’의 원소가 필요하다는 점을 뱅자맹은 알리스에게 설득하게 된다. 3년의 긴 연구 끝에 불의 원소를 상징하는 도마뱀 아홀로틀의 유전자와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새로운 혼종을 탄생시킨다.

 

아홀로틀 혼종의 1세대 이름은 ‘악셀’로 명명했고, 악셀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혼종이 되어 탄생한다. 아홀로틀 혼종은 도마뱀 유전자를 물려 받은 모습으로 크기가 작고 유연하며 특히, 불멸성과 재생성이라는 새로운 혼종으로 창조된다. 머리가 똑똑하고, 모험심과 호기심이 가득하며 또 다른 세상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대단한 혼종으로 성장한다. 특히, 아홀로틀 혼종은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면 다시 재생되는 점이 있다. 도마뱀 중에서 그런 도마뱀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고 그런 점을 착안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사피엔스 유전자와 도마뱀의 유전자의 결합으로 혼종 중의 혼종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것일지는 모르겠다. 아홀로틀 혼종 ‘악셀’은 20살이 되는 생일날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겠다고 선언을 하게 되고, 알리스와 뱅자맹은 그의 부모로서 떠나는 길을 응원하며 보내 주게 된다. 그리고 아홀로틀 혼종이 태어날 때, 알리스의 딸 오펠리와 뱅자맹의 아들 조나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샤리’도 태어나 악셀과 함께 서로에게 부족한 면은 보완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오펠리는 조나탕과 결혼하기 전에 에어리얼의 왕인 헤르메스와 결혼을 했었고, 오펠리는 에어리얼 혼종의 아이들을 잉태한 상태였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점에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나오자마자 죽었고, 오펠리는 긴 슬픔에 잠겨야 했지만, 헤르메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족인 여자 혼종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구애를 하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헤어지게 된다. 사피엔스가 아닌 혼종들은 태생적으로 동물인 점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알리스는 디거 혼종과 노틱 혼종의 세력 다툼과 갈등, 혼종과 사피엔스와의 전쟁을 보고, 철창에 갇혀 사는 사피엔스, 그리고 박물관에서 구인류라 하면서 혼종들에게 전시물로써 살아가는 사피엔스를 보며, 혼란에 빠진다. 혼종을 만든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온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혼종들은 신인류로써 사피엔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에어리언 혼종도 있지만, 디거 혼종이나 노틱 혼종들처럼 권력을 이용한 세력 다툼이나 갈등, 인간만이 가지는 복수심 같은 것들을 보며, 사피엔스와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키메라의 땅 2>에서는 종족 간 권력 구조와 문화, 정체성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과 한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고 볼 수 있을 듯 싶다. 알리스는 모든 것은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전제을 믿고, 자신이 만든 혼종들이든, 사피엔스들이든 어떻게든 생존을 위한 길을 찾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겨 보기로 한다.

 

<키메라의 땅 2> 편은 1편보다는 조금 더 다채로운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생명공학이라는 과학적 견해와 인간의 윤리의식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 의식에 대한 부분은 종교적인 의미에 부합되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인간은 오로지 신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종교적 진리를 뒤집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인류인 혼종들이 나타나서 사피엔스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새로운 존재(혼종)가 나타나면서 인류에게서 나타나는 태도에 따라 갈등을 겪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서로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급작스러운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파멸되어 가고 있을 때, 새로운 혼종이 나타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지만 또 한편에서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부분들은 다분히 다윈의 진화론적 근거에 따라 인류의 필연적인 미래의 인류에게 새로운 진화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또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말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일정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논리를 얘기하고 있다. 이 소설 또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인간들이 저지른 수많은 오점들을 핵전쟁 이후, 혼종들이 인간을 대신해서 오점을 다시 새기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다. 혼종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과거의 사피엔스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서에서 그 의미를 배우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모든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사피엔스에게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인 사피엔스가 참으로 못된 종족임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암튼 다양한 주제의식을 다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랄까 생각을 너무 깊이 있게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주제 의식일 것이라 장담한다.

 

<키메라의 땅> 1편과 2편을 종합적으로 본다면, 이 한 권의 소설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거리들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해 본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즉 과학과 윤리, 서로 다른 종과의 공존 가능성, 또는 새로운 종과의 갈등과 포용에 대한 것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들은 토론하기 딱 좋은 주제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그런 점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유전자 공학과 진화론적 상상력을 무기 삼아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뒤흔들면서 인간의 윤리적 한계와 책임에 대해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 알리스는 끊임없이 인류를 위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다. 혼종과 사피엔스는 공존할 수 있는가. 혼종을 만드는 것이 잘한 일일까, 또 다른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만들어 내며, 스스로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고뇌가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의식을 단순하게 주인공에게 책임을 던져주지 않으면서 작가 자신에 제한하지 않고, 독자에게도 자기 윤리 검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만약 혼종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징그럽지 않을까,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등의 이유로 다가가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상상해 본다. 이질적인 외모에서 보이는 불편한 감정이,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이 중심인 사회와 제도 안에서 다른 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중심인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혼종들만 얘기하지 않는다. 혼종을 창조해 낸 진화생물학자인 알리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쾌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된 내용으로 유일한 인간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대사를 가지고 있고, 혼종을 창조한 인물이기에 그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고민,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혼종의 창조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혼자 이겨내기보다는 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문제의식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냥 단순하게 보면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있는 결말을 알고 싶지만 아쉽게도 알리스의 긍정적인 메시지만을 던져 놓은 체 이야기를 끝맺고 있는 점이 아쉽고, 불편했고 허탈했다. 작가 자신의 결말은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알리스 개인의 서사가 담긴 소설이기도 하다. 70세가 넘는 나이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혼종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시초임에 혼종들을 단순한 괴물로 취급하거나 각기 다른 생태적 적응력을 지닌 새로운 혼종의 초기 집단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혼종들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게 하는 원동력은 인류가 먼저 해 봤다는 것이고, 혼종들은 인류가 남긴 유산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 속에는 혼종들이 나타나면서 다양한 플룻을 생산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배르나르 배르베르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설명적인 문체에 대해서는 복잡하지 않게 설명하여 쉬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독자를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 속에 빠져 들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알리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혼종들의 이야기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알리스의 이야기와 혼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류가 그리고 개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됨으로써 정답이 없는 현답을 찾아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질문들은 알리스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인상적인 문장

 

네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은 추상적일 뿐 아직 네 것이 아니란다. 인생이 정말로 네 세포의 기억에 새겨지려면 네가 생을 온 감각으로,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해.

- <키메라의 땅 2> 알리스가 자신의 딸인 오펠리에게 조언을 해 주는 장면 중에서


“키메라”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키마이라Khimaira에서 왔는데, 이는 염소의 몸통, 사자의 머리, 뱀의 꼬리로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 속 피조물을 가리킨다.

- <키메라의 땅 2> 에드몽 웰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죄책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엄마. 그러니까 제 말은, 진화에서는 그렇다고요. 동정심, 양심의 가책, 회한 같은 개념은 전형적으로 사피엔스적인 추상적이고 무익한 개념에 불과해요.

 <키메라의 땅 2> 사피엔스가 겪고 있는 고난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 알리스에게 악셀이 얘기하는 장면 중에서


믿을 수 없어. 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존재 모두 완전히 내 손을 벗어났어. 그들은 나를 위협하거나 나를 구해. 내 말을 따르거나 내 허를 찔러. 나는 그들이 다르기를 바랐어. 그들은 자율적일 뿐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나아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 구세계는 더 이상 없어. 신세계가 나는 불안해.

-  <키메라의 땅 2> 노틱의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알리스는 강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 중에서


이 모든 일들은 지구의 역사에서 사소한 우여곡절에 불과해요. 결국 생명은 길을 찾을 거예요. 인류의 정신은 물질적 상태를 넘어서서, 어떤 종족에 깃들어 있든 살아남을 거예요. 사피엔스든, 노틱이든, 디거든, 에어리얼이든, 아홀로틀이든.

-  <키메라의 땅 2> 알리스가 인류를 위해 혼종을 만들었지만, 혼종도 인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장면 중에서

 

혹시 잊어버렸을까 봐 말하는데, 나는 너희를 창조했고 내 동족들의 뜻을 거스르며 너희를 키웠어. 시간이 걸리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지. 난 너희를 교육하고, 언어를, 글쓰기를, 과학을, 내 종족의 역사를 가르쳤어. 너희가 사피엔스와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요컨대, 난 너희를 사랑했어. 창조주가 제 피조물들을 사랑하듯. 어머니가 자식들을 사랑하듯.

- <키메라의 땅 2> 에펠탑 협상 중, 세 혼종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알리스가 하는 말 중에서

 

 

 

 

반응형

'Review > 읽은 것들에 대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르나르 베르베르, ‘키메라의 땅 1’ 파멸한 지구에서 태어난 혼종들이 구인류와 갈등을 겪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소설  (3) 2025.10.06
기욤 뮈소,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연인을 보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남자의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를 마주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는 소설  (0) 2025.09.29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생물학적 진화를 개체나 종이 아닌 유전자 중심으로 이해하고, 자연 선택을 바라 본 방식에 큰 전환점이 된 자연과학 서적  (1) 2025.09.24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정직함과 양심을 신념처럼 여기는 청년이 시골 중학교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모순과 위선적 부조리를 풍자한 소설  (3) 2025.09.01
천선란, '천 개의 파랑' 로봇과 인간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자유와 존엄, 삶의 가치를 위해 천천히 달릴 수 있음을 일깨운 소설  (5) 2025.08.26
푸쉬킨, ‘대위의 딸’ 18세기 러시아 민중 봉기 속에서 한 청년의 사랑과 신념, 인간성을 지키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  (6) 2025.08.12
폴 오스터, ‘바움가트너’ 상실과 애도, 우연과 순간을 만들어 가며 삶에서의 관계와 사랑에 대한 애틋한 사유에 대한 기억  (5) 2025.08.04
알베르 카뮈, '전락' 참회와 심판의 이중적 잣대를 고백하며 인간의 위선적 본질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고백서  (8)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