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미국은 극단적인 분열로 인해 두 체제로 나누어진다. 감시와 종교적 통제가 지배하는 민주당을 계승하는 ‘연방공화국’과 자유를 내세우는 공화당을 계승하는 ‘공화국연맹’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연방공화국의 엘리트 요원으로, 반대 진영에 잠입한 여동생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받지만 가족이라는 유대와 체제의 명령 사이에서 깊은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체제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감시와 통제, 이념과 신념,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어떤 체제를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기술적 통제 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본질을 되묻는 소설이다.

원더풀 랜드
FLYOVER
더글라스 케네디
역 조동섭 · 밝은세상 · 2024.10.16 · 영미소설
2025.11.03 ~ 11.08 · 11시간 01분
아주 오랜만에 읽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원더풀 랜드’를 읽게 되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이번이 네 번째 읽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2023년 11월에 읽은 ‘템테이션’을 읽은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증에 한 사람이지만, 그의 소설을 자주 접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 소설을 접하는 순간 반가운 마음과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순간이지 않겠나 싶다. 전작인 ‘템테이션’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는터라 더욱 그러하리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벽돌 같은 책이라 해도 문장이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읽힌다는 점이다. 때문에 장황된 환경 설명, 주변 풍경, 인물 묘사가 상황에 맞게 절절하게 베치 되어 있어서 영화적 영상미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때문에 장면에 대한 기억이 뚜렷이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회 비판적 시선이나, 부조리 같은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부분들도 강하게 담고 있어서 뚜렷한 주제 의식을 표면에 드러내놓는 소설들이 있다. ’ 원더풀 랜드’도 그런 소설 중에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시회,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 사회에 대한 경종을 올린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입체적인 인물 묘사에 있다고 본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심리를 잘 건드리며, 그 속에서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을 그리고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변화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려 낸다는 점이다. ‘원더풀 랜드’도 더글라스 케네디만이 가지는 문장력과 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원 제목은 'Flyover'라고 하는데,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고가도로 또는 육교를 의미하고, 비행기가 특정 지역 상공을 통과하는 비행 시범이나, 특정 지역을 경유하지 않고 지나친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을 ‘원더풀 랜드’ 소설에 대입해 보면 미국의 극단적인 양극 이념 체제로 인해 분열되어 두 개의 국가로 나뉘고, 두 국가는 서로 적대시하며 서로를 무시하며 지나쳐야 할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냉전 체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둘로 쪼개져 나뉜 두 국가는 이질적인 체제와 정치적 사상이 서로 얽히지 않고 완전한 분리되어 존재함을 소설 속에서 시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두 극단적인 이념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같은 미국 땅에서 서로 무시하고 밟고 지나가는(Fly over) 방식으로 공존과 분리하고 있는 현실을 통해 극명하게 바라보고 있다. 또한, 주인공이 주로 활동하는 국경지대의 중립지역은 두 국가를 연결하거나 또는 분리되는 다리와 같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Flyover'와 ‘원더풀 랜드’라는 소설이 주는 의미는 미국 사회의 오래된 극단적 분열과 소외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지나쳐버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냉혹한 현실적 표현을 제목을 통해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더풀 랜드’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소설 속 이야기가 마치 현실적인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2036년, 미국이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되고 난 이후 204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분리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내용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촉발된 일련의 극우적인 사건들과 첨예하게 갈등하는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과, 미국의 인종차별적 사건으로 유명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촉발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차별, 여성 혐오, 동성 간 결혼, 종교적 신념 같은 사회적 갈등이 오랫동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들춰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 사회의 현실을 거리김없이 드러내며, 사회적, 이념적 갈등이 미국을 분단시키는 근본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미국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2020년 전후를 배경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나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쪼개지는 두 국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면 먼저 ‘연방공화국’은 자유주의와 진보적인 민주당 기반인 국가이며, 개인의 자유와 개방적인 종교관, 낙태 및 동성애 등에 개방적인 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연방공화국의 모든 국민들은 생체 칩을 인체에 삽입하여 국가 감시와 통제가 심한 정보화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공화국연맹’은 보수의 이념을 가진 공화당 기반의 이념을 계승하며, 청교도적 신권정치를 표방하고 기독교 원리주의를 국가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신성모독이나 동성애 등은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은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되어 국경을 봉쇄하고 허가 없이는 국경을 넘을 수 없는 과거의 통일 이전의 독일과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처럼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분단된 미국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설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두 국가에 속하지 않는 완충지역이면서 중립지역 미네소타주 도시인 ‘미니애플리스’라는 곳으로 이곳은 단순한 국경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단된 두 국가의 이념적 대립 속에서 첩보전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등장인물들이 활동하는 주된 배경이 되는 공간이 있다.
그렇게 두 개의 국가로 나누어진 미국,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두 국가,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스파이를 심어 놓고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는 동시에 배신을 이어가게 된다. 특히, 연방공화국의 정보국에서 근무하는 ‘샘 스텐글’은 조직 내에서 유망한 정보 요원으로 이제는 40대를 앞두고 있는 정보원이다. 스텐글은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아 두 국가에 속하지 않는 중립지역에서 작전을 해야 하는 지시를 받게 되고, 공화국연맹의 알려지지 않은 정보원을 사살하라는 지시이지만, 자신이 죽여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복동생 ‘케이틀린 스텐글’이라는 점이다. 일 년 전 죽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사실조차 없는 이복동생이 있다는 말에 당황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방송인 ‘에드가 머스그레이브’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중립지역인 미니애플리스에 잠입하여 팀원들에게 ‘케이틀린 스텐글’을 찾으라는 명령을 하달하지만, 팀원이 케이틀린 스텐글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또 다른 작전이 상부로부터 하달되어 직접 공화국연맹에 침투하여 케이틀린 스텐글의 남편인 클레멘스 콘넬이라는 남자를 암살하게 된다. 그리고 샘 스텐글이 위장잠입한 영화평론가 에드가 머스그레이브는 중립지역인 미니애플리스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로레인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면서 서로에게 끌리는 관계에 까지 이르게 되면서 파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인공 샘 스텐글이자 위장 이름인 에드가 머스그레이브는 연방공화국의 정보 요원이지만,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첫째로 일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고 미네애플리스로 작전을 위해 떠나기 전에 아버지가 살고 있었던 아파트까지 걸어가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쓸쓸함과 고독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케이틀린 스텐글이라는 이복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고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고뇌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유로 죽여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연민들을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팀원이 죽어 나가면서 겪게 되는 트라우마들을 마주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과 중립지역에서 첩보활동을 펼치면서 위장한 에드가 머스그레이브와의 사이에서, 그리고 팀원들과의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이복동생의 케이틀리 스텐글과 연결된 자신 사이에서 찾고자 하는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고뇌를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주인공인 샘 스텐글을 통해서 분열된 사회가 개인의 가치와 도독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읽는 이에게는 극단적인 이념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 감정이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소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부분들도 있을 듯하다. 단순하게 재미와 흥미위주로 읽어도 문제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소설이 가지는 다양한 주제의식을 알고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이 얘기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극단적인 이념의 양극화가 주는 위험성에 있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얘기하고 있는 미국의 좌우 갈등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국가의 좌우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적인 결말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정치적 진영 논리와 혐오의 심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하고 있고, 가족이나 이념에 따라 적으로 규정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물리적 분단이 아니어도 사회적 분단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의 연방공화국은 자유를 내세우는 국가이지만, 실상은 생체 칩을 인체에 삽입하여 국민 전체를 감시하는 정보화된 통제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즉, 지나친 과학 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데이터가 결국 국가나 거대 기업의 강력한 도구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 방지와 같은 안보문제나 사회 안전이라는 명분을 이용한 시스템이 결국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들도 소설 속에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반대로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원리주의를 표방하여 절대적인 신을 모독하거나 반대되는 가치를 가진 사람은 잔인하게 처벌하고 있는 국가로 보여준다. 도그마 위험성이라 해서 특정 신념이나 이념을 절대적인 규정으로 삼으면 다른 가치를 가진 이들을 배척하고 혐오할 때,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이 사회 통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원더풀 랜드'는 샘 스텐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 소설이다. 때문에 주인공 샘 스텐글이 위주로 진행되지만 긴장감이 있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은 고독감을 그리고 쓸쓸함, 정보원으로써의 자신의 가치를 끊이없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연방공화국의 정보국의 시스템의 감시를 받으면서 그리고 감시받을 줄을 알면서 쉽게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고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정보국의 시스템과 인간애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는 시스템만이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는 시스템이 강요하는 명령 앞에서는 인간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 도덕성, 가족애와 같은 가치들이 시스템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주체적인 판단과 행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성적인 문장
“내가 누군지 알기 전에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어. 인간이 가장 맞히기 어려운 퍼즐은 자기 자신이야. 누구나 제대로 풀 수 없는 퍼즐이니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은 누구나 낯선 존재야.”
인간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적 약점을 모두 극복해낼 수 있는 기술은 나오지 않을 거야. 원하지 않는 삶에 자신을 몰아넣고 이런 삶을 살려던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면서 평생 자기 의심에 빠져 사는 인간들의 해묵은 숙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야.”
기독교에서는 영생을 말하지만 나는 죽음이란 종말이고, 영원한 어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태어난 이후에야 세계를 인식하고 알게 되었다. 나는 죽음이란 태어나기 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함께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덫에 갇혀 있다. 그 덫을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덫에 갇혀 있다. 그 덫을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모두들 커플로 분열되고, 가족으로 분열된다. 국가로 분열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탓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고 함께할 수 없다며 문을 닫아 잠그는 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인간의 조건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