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의 풍경과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거대한 욕망과 몰락을 반복하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권력, 생의 순환, 존재의 의미를 세대에 걸쳐 서사로 그려낸 작품으로 욕망을 좇는 자들의 비극적인 삶의 처절함을 현실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읽는데 8~10분 정도 소요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 2014.01.15 · 한국소설
한국문학전집 019
2025.11.11 ~ 11.19 · 14시간 25분
내가 읽은 천명관 작가의 첫 번째 소설, ‘고래’를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상당한 분량으로 혹시나 읽다가 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숨죽이며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로 소개하고 싶다. 재밌었다는 표현보다는 인간의 삶이라는 명제에 대한 나의 생각에 깊이가 더해졌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이 작품이 문학동네 소설상을 그냥 받은 게 아니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남다른 점이 뭔가 있겠다 싶어서 서핑을 하다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30대부터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마흔 살에 단편소설 ‘프랭크와 나’로 2003년에 등단했고, 2004년에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여 출간된 소설 ‘고래’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소설 ‘고령화 가족’을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만든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고, 결국 2019년에 ‘뜨거운 피’라는 영화로 꿈에 그리던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늦어졌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소설만 놓고 본다면 작가적 상상력이 대단하게 풍부하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고 뭔가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겠다.
‘고래’는 3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와 2부에서는 산골에서 살고 있는 소녀 ‘금복’이가 부둣가에서부터 시골 마을 ‘평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공담이 담긴 일대기와 비극적 삶, 그리고 그와 더불어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천태만상이 장대하기 펼쳐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금복의 딸 정신박약아에 벙어리인 ‘춘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춘희는 교도소에서 출소하여 평대로 돌아와 벽돌공장에서 삶을 이어가는 삶을 그리고 있다 이 또한, 삶의 처절함과 그리고 처연함을 그려내고 있고 안타까운 삶이 이어진다. 또 다른 등장인물 ‘노파’는 1부에서 자신이 낳은 딸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3부까지 원혼으로 등장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한이 담긴 세상으로부터의 복수를 하겠다며 금복과 춘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파국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설정이다. 특히, 이 소설의 재미있는 요소는 작가의 의도일 듯싶은데,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목이 자주 연출된다. 독자에게 이해를 구하는가 하면, 상황 따른 설명을 읽는 이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는데,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을 듣는 듯하기도 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 마저도 소설을 읽는 묘미를 주기에 충분한 요소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유머러스한 상황으로 인해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연은 모두 한 세대가 지나도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며, 금복과 춘희가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내면에 잠식되어 온 과거의 회상들이 뒤엉키며 인간적인 내면의 갈등과 마주하며 버티기도 하고 싸워 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비극적 삶의 연장선에 불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래’에 등장하는 주요한 인물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첫 번째 인물, 노파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보겠다. 노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1부에서 잊히는가 싶었지만, 3부까지 원혼으로 등장하여 금복을 괴롭히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노파에 대한 서사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회상하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그에게 딸이 있지만,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것이 노파에게는 종살이를 하면서 같은 계급의 사내, 아마 정신적으로 조금은 모자라는 사내와 연분을 이어가지만 들키고 말아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분을 통하고 사내를 죽인다. 그렇게 해서 얻은 딸을 볼 때마다 자신이 죽인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고 학대를 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딸의 한쪽 눈을 멀게 하고, 양봉을 하며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내에게 꿀 두 통에 자신의 딸을 팔아넘긴다. 그리고 국밥집을 운영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모으지만,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노파는 자신의 한을 풀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끝나나 했지만, 자신이 모은 돈이 금복에게 우연히 들어가게 되자, 원혼이 되어 금복과 춘희의 곁에 머물며, 비극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금복은 산골에서 태어나 자라지만 세상에 대한 갈망과 아버지로부터 받는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씩 생선을 팔러 산골에 오는 사내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부둣가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생선장수와 살며 덕장을 운영하며 부를 쌓고, 걱정이라는 엄청난 거구의 사내와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나 싶었지만, 큰 불행이 찾아오게 되고, 그런 와중에 조직 폭력배 두목이며 극장 운영을 하는 칼자국을 만나게 되고 큰 사고로 반신불구가 된 걱정을 버리고 칼자국과 함께 살아간다. 결국 걱정은 바다에 뛰어들고 그 순간을 목격한 금복은 칼자국이 죽인 것으로 착각하여 칼자국을 죽인다. 그리고 세상을 떠돌며 비렁뱅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비렁뱅이들과 함께 거지꼴로 살아가다가 아이를 갖게 되는데,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 아이가 춘희다. 그리고 마구간 주인인 쌍둥이 자매에게서 각별한 보살핌을 받게 되어 기운을 차리고 춘희와 함께 살아가면서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 국밥집에 커피를 팔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그리고 소문으로 들었던 기차가 다니는 평대로 이사를 오고 커피를 파는 다방 운영을 시작으로 우연하게 돈벼락을 맞은 금복은 땅문서가 있는 곳에서 벽돌 공장을 만들어 벽돌을 팔고, 운수업을 통해 엄청난 재력가가 된다. 이때부터 금복은 변하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자신이 꿈꿔 온 고래 모양을 한 극장을 짓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나 싶었지만, 불행은 또다시 찾아온다. 극장에 화재가 일어난 평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대형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금복의 딸, 춘희는 태어나면서 거구의 체구와 말을 못 하는 벙어리로 살아가게 되지만, 이 또한 춘희의 체격과 괴력 그리고 그 모습이 흡사 부둣가에서 만나 살아온 걱정의 모습과 많이 닿아 있기도 하지만 분명 걱정의 딸은 아닌 아이다. 춘희는 분명 금복의 배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그 아빠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때문에 금복은 춘희를 멀리하며 방치를 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벽돌공장에서 자라며, 벽돌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그의 친구는 쌍둥이 자매가 키우던 코끼리가 있었는데, 쌍둥이 자매는 서커스에서 생활하면서 공연을 하지만 쌍둥이 자매 중 언니가 코끼리의 발에 밟혀 더 이상 서커스에 있을 수 없게 되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미 늙어 값어치가 떨어진 코끼리를 데리고 살게 된다. 그런 코끼리와 의사소통이 되는 아이가 춘희가 제일 좋아하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코끼리가 죽고, 벽돌공장에서 자라게 된다. 춘희는 극장 화재의 방화범으로 몰려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범인으로 낙인찍히며, 결국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모진 생활을 하며 출소하지만 갈 곳이 없는 춘희는 기찻길을 따라 이미 없어진 평대로 들어서게 되고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만들며 살아가게 된다. 이미 사람들이 모두 떠난 평대는 먹을 것이 없어 산속에 덫을 놓고 산짐승을 잡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지만,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10여 년 전에 벽돌공장에서 잠깐 머물다가 간 한 사내의 아들로 춘희 못지않은 힘을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벽돌공장에서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만 그 아이는 방랑벽으로 인해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가끔씩 벽돌공장에서 춘희가 만든 벽돌을 내다 팔기 위해 다녀가곤 하면서 둘의 사이가 깊어진다. 그리고 한 겨울에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만 사내는 춘희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려 하지만, 눈보라 속에서 벽돌공장에 돌아오다 사망하게 된다. 춘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사내를 기다리며 살아가지면 춘희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눈보라 속에서 죽고 만다. 그리고 춘희는 사내를 기다리며 수없이 많은 벽돌을 만들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인 ‘고래’라는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있겠다. 고래는 거대한 생물이라는 점과 그 크기에 압도되는 점을 금복에게서 많이 들어내고 있다. 금복은 부둣가 마을에서 난생처음 보는 거대하고 큰 물고기를 보고 놀라게 되고, 고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칼자국이 운영하는 극장의 크기에 압도된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고래의 거대함에 경이로움을 느낀 금복은 평대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엄청난 부를 쌓고 나자 벽돌공장에서 생산되는 벽돌을 모두 고래 모양의 극장을 만드는데 자신의 모든 역량을 모아 짓게 되고 그는 한없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 그 거대함은 금복에게는 남다른 희망으로 보였을 것이고, 상징이 되었지만, 그 거대함은 결국 거대한 극장의 화재로 인해 몰락하게 되고 거대한 욕망은 비극으로 귀결된다. 또한, 금복의 비극은 세대로 이어지며, 그의 딸 춘희에게까지 불행이 이어지는 흐름을 반복하게 된다. 평대에서 금복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권력과 부를 갖게 된다. 금복의 곁에는 수많이 많은 남자가 있었다. 부둣가에서 덕장을 함께 운영해 온 생선장수, 자신의 남편인 힘이 장사인 걱정, 극장을 운영하는 조직 폭력배 두목 칼자국, 그리고 금복이 세운 고래 모양 극장의 운영을 맡긴 약장수, 벽돌공장의 운영을 함께 해 온 사내, 운수업을 맡긴 덕장을 운영했던 생선장수, 교회 목사, 등등이 있지만, 금복의 곁에 있는 모든 사내는 자의든 타의든 모두 죽게 된다. 기막힌 금복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사창가에서 우연히 만난 창녀 수련이를 만나면서 금복은 나이가 들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남성상을 갖게 되어 자신이 남자가 되고 수련을 곁에 두지만, 수련은 극장 운영자인 약장수와 함께 금복의 돈을 빼돌려 도망하게 된다. 그때부터 금복은 술로 나날을 보내게 되고, 모든 것을 잃고 금복의 라이터 불로 인해 극장 화재로 죽음을 맞게 된다. 춘희 또한, 어렸을 때 만난 사내와 함께 벽돌공장에서 만나게 되지만, 그 사내도 새로 태어 난 아이의 옷과 고기를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눈보라 속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이렇게 금복과 춘희는 세대를 이어가며 불운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된다. 춘희가 만든 수많은 벽돌들은 훗 날 건축업자에 의해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고래’을 읽는 나로써는 한낮의 열기와 밤의 적막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치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낯선 동네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묘한 감정을 느꼈을 법하다는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촘촘함과 거대한 서사를 펼쳐놓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 속에서 헤맨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폭력성과 고독감, 그리고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라는 단어 앞에 마주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폭력을, 금복에게서 욕망을, 춘희에게서 고독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흐름 속에서 파편적으로 보이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큰 그림을 형성하며 하나의 흐름에 합쳐지는 이야기가 ’고래’라는 거대한 상징 앞에서 묵직한 올림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읽어 본 느낌이 그런 느낌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래’라는 소설이 가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진행되다 보니 주변 환경의 묘사에서 느낄 수 있는 적막함이나 건조함들을 느끼게 된다. 특히 금복이 부둣가에서 보게 되는 거대한 고래의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나 금복이가 자라 온 산골 마을의 적막함, 하재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파괴된 평대의 모습, 폭력과 권력이 얽힌 도시 풍경의 생생함들이 표현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인간 내면이 가지는 진실함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출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욕망과 고독감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래라는 상징성은 자유롭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거대함이 주는 욕망,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충동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평생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것들, 즉 꿈이 되었든, 성처가 되었든 인간의 내면에 깊은 암흑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존재감의 원천은 등장인물들에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금복은 폭력 속에서 태어나 폭력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세상에 대해서 동경하고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산골 마을에서 탈출하여 부둣가에서 살아가면서 체득하게 되는, 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춘희 역시 못생기고 덩치가 큰, 힘이 센 여자라는 의미를 포장하며, 수많은 굴곡은 여성 개인의 비극이라는 점을 부각하지만, 동시에 시대와 여성에게 씌운 운명의 틀처럼 보이게 한다. 따라서 두 모녀인 금복과 춘희는 폭력은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보여주고, 인간의 비극적 삶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노파를 통해서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의 복수’가 가지는 의미는 감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노파가 살아온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세상으로부터 인식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괴롭혔다는 음유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노파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며, 폭력과 배신, 소외를 겪으며 살아온 인물로 삶은 끊임없이 생존할 수밖에 없으며, 노파의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노파의 존재 자체를 벌하듯 다루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이 소설은 단순하게 세 사람의 운명적인 이야기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단순한 비극이나 단순한 성장을 담은 서사도 아니다. 오히려 비극적 서사와 성장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욕망이나 폭력, 그리고 생존의 과정을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서사극이라고 볼 수 있겠고, 그 비유를 거대한 고래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노파, 금복, 춘희, 세 사람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짧고 단순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짧은 위의 글로서는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읽어 보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고, 이미 읽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읽은 사람은 되새김질을, 안 읽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철저히 비극적이고 처절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고래라는 상징성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고래라는 상징성은 인간 내면에서 끝까지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무언가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소설 속에서 펼치고 있는 이야기들은 인간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복합적이지만 모순적인 부분일 듯하다. 누구도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누구도 단순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규정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고래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개인은 인간의 복잡함과 모순적이고 폭력적임을 보여주며 인간의 수많은 욕망과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고래를 따라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거대함의 존재를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며 붙잡고 싶은 어떤 기억이나 욕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때로는 파괴적으로 보일 때가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고래’는 그런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묵직한 질문을 읽는 이에게 던지고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바다 한복판에서 갑자기 집채만한 물고기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목격했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丈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멍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분수처럼 뿜어올려진 물은 달빛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흩어졌다. 그녀의 배 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이었다.
<고래, 1부 부두-하역부> 내용 중에서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고래, 1부 부두-칼자국> 내용 중에서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고래, 2부 평대-유령> 내용 중에서
평생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던 금복은 마침내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자들의 모습이 스크린 위에 겹쳐져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본능처럼 문득 자신의 딸, 춘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춘희가 아직도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이 한 번도 제대로 보듬어주지 않았던 딸에 대해 걷잡을 수 없는 회한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모든 게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래, 2부 평대-불기둥> 내용 중에서, 극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서 금복이가 춘희를 떠올리는 장면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고래, 2부 평대-불기둥>내용 중에서, 극장의 화재로 금복의 부귀영화가 사라지는 순간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고래, 3부 공장-방화범>내용 중에서, 춘희가 방화범으로 기소되어 교도소로 이감되어 평대를 떠나는 기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