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선생님’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고독과 죄책감, 그리고 도덕적 갈등을 심도 있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선생님은 친구 K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배신과 죄의식을 평생 감내하며 살아가고,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에게 긴 고백의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은 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온 죄의 기억과 시대적 혼란이 맞물려 어떻게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보여준다.

마음
こころ, 1914
나쓰메 소세키
역 오유리 · 문예출판사 · 2019.08.20 · 일본소설
2025.11.26 ~ 12.02 · 10시간 35분
나쓰메 소세키의 세 번째 소설 ‘마음’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인간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고독이라는 것과 죄책감으로 인해 인간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시켜 주는지를 알려준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작품 속에의 등장인물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와 그 선생님을 존경하는 ‘나’라는 인물이 서로 교차하는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고독과 죄책감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서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은 무겁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세 권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감정을 받아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음’은 1914년에 출간된 소설로 나쓰메 소세키가 사망하기 2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고, 세 번째 소설이다.
처음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차 세계대전의 일본 내의 지식인들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 ‘도련님’에서는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의식을 풍자적으로 풀었다면, ‘마음’에서는 인간 내면이 가지는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책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러스트 느낌의 정감 있는 그림체가 친근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은 세 권의 책이 시리즈로 같은 풍의 그림체가 아주 좋았다. 만약에 책의 표지만 따로 액자로 걸어 두면 집의 분위기가 아주 근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림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체 구성은 3파트로 되어 있다. 화자인 ‘나’가 우연히 ‘선생님’을 바닷가에서 만나게 되고, 그에게 이끌려 따르게 되는 ‘선생님과 나’, ‘나’가 대학 졸업을 하고 병환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로 인해 고향에 돌아가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선생님’이 편지로 ‘나’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고백하는 ‘선생님과 유서’로 구성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읽는 내내, 안개 낀 아주 이른 아침에 인적 없는 오솔길을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묵직한 침묵 속에서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와 ‘선생님’ 사이에 오고 가는 단순한 호기심과 존경의 감정이 주된 이야기일 듯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진지함 속에 날카롭게 선을 긋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선생님’은 특별히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를 통해서 과거에 대해서 묻지만, 감당할 수 있는지 의미심장하게 되묻는 점을 들어서 내면에 잠식되어 있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극 중후반에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렇게 극의 중후반을 지나면서 이야기가 엉뚱하게 선생님의 편지 형식의 고백서가 유서로 바뀌게 되면서 소설의 전체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그 시점으로부터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무기력함과 나약함,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무게를 들여다보게 된다. 결국 소설은 선생님의 과거에서 비롯된 죄책감의 고백이면서 유서가 된 한 편의 고백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대적인 풍경이나 주변 분위기에 대해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로지 '나'와 '선생님'이 산책을 하면서 그리고 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주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골 풍경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극의 흐름상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에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 속 시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메이지 말기, 천왕이 죽는다는 설정이 있는 것으로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소설을 바라보는 풍경으로 인해 당시 일본의 가치관이 붕괴되는 시점으로 불안정한 흐름을 읽을 수 있기도 했다. 그것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알 수 없었지만, 극 중 인물인 '선생님'의 개인적인 비극과 메이지 말기의 가치관 붕괴로 인한 시대적 비극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얽혀 있음을 간접적으로 묘사하여 보여준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다.
극 중 ‘나’는 화자이며, ‘선생님’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인물로 1인칭 시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선생님이 숨기고 있는 과거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문에 선생님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 사람의 삶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나’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도덕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오늘내일하는 병환 중인 아버지를 뒤로 하고 급히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게 된다. ‘선생님’은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일을 하지 않고 세상과 단절되어 지내며 유일한 가족인 아내가 있다. 죄책감과 자기 파괴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친구 ‘K’의 배신에 대한 기억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선생님은 어떤 의미였는지 첫 부분에 잘 드러내고 있다. 선생님은 중년의 남자로 별 일 없이 살아가고 있는 점에 이끌려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어른으로 보게 된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고독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때문에 '나'는 가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정신적 모델을 발견하면서 이끌린다고 말하고 있다. ‘나’에게 선생님은 존경과 함께 호기심의 집합체이기도 하고,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바라보는 ‘나’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나’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선생님에게 도덕적으로 순수한 존재로 인식되어 있고, 그 순수함이 젊은 시절의 친구인 ‘K’와 자신을 떠올리며, 그 감정을 통해서 ‘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선생님’은 ‘나’를 자신의 마지막 고백을 받아줄 유일한 사람으로 선택했고, ‘나’에게 고백이 담긴 편지를 남기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사제의 관계에서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까지 발전하게 되지만,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이 소설 ‘마음’이 담고 있는 주된 주제는 선생님의 죄책감에 대한 고백이다. ‘선생님’은 평생 동안 짊어지고 왔던 것이 단순한 실수나 실패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과거 속 친구인 ‘K’에 대한 배신과 그에 따른 자신에 대한 자책이나 비난이 내면에 잊히지 않고 증폭되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죄의 기억이 되어 버린다. 소설 전체에 흐르는 죄책감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의 전체에 잠식되고 고립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때문에 ‘선생님’은 자기 고백을 통해 그 연을 끊으려 하지만 고립감과 고독감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또한, ‘나’는 선생님에게서 느꼈을 호기심으로 인해 선생님에게 끌리기는 하지만 그런 선생님을 대할 때마다 더욱 이해를 못하게 된다. 때문에 선생님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과거에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 ‘K’의 죽음으로 자신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으로 인해 타인에게 가해지는 잘못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 편지를 남김으로써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는 과거에 대한 고백을 한다. 고백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책임에서 회피하고자 또는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유는 편지를 통해서 고백을 하고 편지의 첫 부분에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편지를 받았을 때쯤이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고백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때문에 진정한 속죄에 대한 고백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살을 택함으로써 속죄했다고 보는 것인지, 도피를 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마무리를 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 형식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죄책감, 고립감, 고독감 같은 단어가 주는 주제의식을 오늘날에서도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떻게 보면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에 깃든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단절화되고 있는 사람들, 심화되고 있는 개인주의에 대해서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소설 ‘마음’은 인간관계의 가치와 본질적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소설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것들로 인해 고백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진실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한 한계들은 개인적으로써 그리고 더 넓은 의미의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성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상적인 문장
저는 과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사상을 별개의 것들로 나눈다면 저에게는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인형을 선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 1부 선생님과 나 : 선생님의 과거와 사상에 대한 의견 대립 장면> 내용 중에서
K와 내가 사막 한가운데 단둘이 서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내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사죄했을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내 안에는 시커먼 인간이 들어앉아 있었지. 그 인간은 나의 자연의 소리를 거기서 틀어막았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나의 자연은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았네.
<마음 : 3부 선생님과 유서-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읽는 장면>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