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딪쳐 보는 것,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하는 것”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거짓된 희망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끝없이 이어지며 파멸의 자리를 맴도는 과정을 그린 소설

by kimdirector· 2025. 12. 29. 08:03
헝가리의 황폐한 농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몰락 직전의 사람들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인물 이리미아시가 다시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민들은 그를 구원자처럼 믿고 마지막 희망을 걸지만, 그의 말과 약속은 실체 없는 조종과 기만에 가깝다. 소설은 반복과 순환의 구조 속에서 인간의 절망,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탈출 불가능한 현실을 집요하게 묘사한다.

 

 

 

 

 

 

 

사탄탱고

Satantango, 1985

 

크러스트너호르커이 라슬로

역 조원규 · 알마 · 2018.05.09 · 헝가리소설

 

2025.12.15 ~ 12.23 · 12시간 34분

 

 

 

 

 

크리스마스 전날 늦은 시간에 쓰는 ‘사탄탱고’ 리뷰 글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마무리할 요량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래전에 픽해 두었던 소설이라 올해 안에 읽기로 마음먹은 탓이다. 크리스마스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은 이 소설이 그다지 밝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에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튼 이 소설은 나에게 조금은 실망을 안긴 소설이기도 하다. 금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이 궁금했고, 그만큼 기대치가 높았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기대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소설들은 대부분 기대한 만큼의 재미와 읽고 난 다음에 무언가 느낄 수 있게 남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나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조차 없이 후딱 읽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 단락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이다. 한림원에서는 이 소설의 작가인 ‘크러스트너호르커이 라슬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작품을 남긴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카프카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시 작가로, 부조리주의와 그로테스크한 색채를 가진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는 그 밖에도 더 많은 요소가 내포되어 있으며, 더욱더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채택하여 동양을 바라보기도 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1994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조금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만큼 호평을 받았다고 하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다만 러닝타임이 7시간 30분이라고 하기에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보게 될 영화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호기심을 발동해 본다. 어디서 볼 수 있을지 찾아봐야겠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위 글 속의 한림원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읽어 보게 되었다. 궁금했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강렬한 책 표지도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그의 소설 ‘사탄탱고’가 전부가 아니기에 한 권의 소설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내용에 따라 유불리를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사탄탱고’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생소한 ‘크러스트너호르커이 라슬로’라는 작가와 그의 소설이라는 점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등장인물들의 묘사, 심리적 상황들이 입체감 없이 평면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이기에 호불호는 있겠다.

 

이 소설은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가던 1980년대 헝가리의 가을 우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조금은 습하게, 우울하고, 쓸쓸함이 진하게 묻어 나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체된 집단 농장이 있는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빈곤과 서로의 불신이 깊어 무기력한 삶을 보내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년 전에 죽은 것으로 마을에 알려진 소설 속 주인공인 이리미아사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절망적인 마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이리미아사가 돌아온다고 하니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무엇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움과 불안감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이리미아사는 과거에도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여 돈을 갈취하여 마을을 떠난 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아 놓은 돈을 다시 그에게 맡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리미아사는 붕괴되어 가던 공산주의의 시절의 국가 권력과 연결된 인물로 마을 주민들의 동향을 정부에 보고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그의 일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기게 되는데, 이리미아사는 마을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 놓음으로써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무력화한다는 큰 흐름을 가지고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소설 ‘사탄탱고’는 이리미아사가 주된 등장인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사이사이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마을에 사는 어린 여자아이 '에스티케’는 가족으로부터의 멸시와 소외, 그리고 냉대와 방치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간다. 자신의 오빠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쥐약으로 고양이마저 죽이고, 죄책감에 자신도 쥐약을 먹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내용은 큰 흐름 속의 작은 이야기로 뜬금없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있는 것도 있을 듯하다. 어린 에스티케의 자살은 마을 공동체의 도덕적 붕괴와 무관심을 극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이리미아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화려하고 장황한 입담으로 마을 사람들이 안고 있는 절망을 그리고 그들의 치부를 들춰내면서 마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마을을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연설에 매료되어 집단 농장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입을 모으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내놓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터전은 실질적인 마을 공동체의 재건과는 거리가 먼, 다시 말해서 황폐한 공간일 뿐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오로지 이미리아사만을 위해 열심히 정부에 마을 정보를 넘기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이야기의 마지막, 마을의 의사는 알 수 없는 종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종소리가 들리는 마을 외곽에서 전쟁으로 무너져 내린 종탑을 발견하게 된다. 이 부분은 소설의 시작 부분에도 등장하는데, 자신의 집, 비밀스럽고 고립된 공간 속에서 술을 마시며 어딘가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신의 고립된 공간으로 다시 회귀한다는 해석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닮은 장면으로,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즉, 반복적인 삶 속에서도 정지 상태에서 쳇바퀴 돌 듯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전진과 후퇴가 반복되는 탱고의 스텝처럼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지만, 결국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순환적 모순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설 중반부의 이야기 속에서는 선술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탱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탱고 리듬의 반복적인 춤사위가 그러하듯 반복적인 삶 속에서 변화되지 않는 인간의 모순적 순환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도 있다.

 

‘사탄탱고’는 하나의 인물에 맞춰서 진행하지 않는다. 어린 소녀 ‘에스티케’의 이야기, 마을 의사의 이야기,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흐름이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는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구분은 명확하여 읽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입체감은 아쉬울 수 있지만, 주변 환경이 주는 묘사는 디테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상황이 전달하는 느낌은 명확한 선을 그리게 한다. 마을 주변 환경이 주는 풍경은 우울하다거나 음울하다고 볼 수 있고, 습하다고 느낄 수 있다. 아마도 헝가리의 가을장마철 속에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기에 다소 난해함을 느낄 수 있겠고,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위로를 읽는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남겨주는 의미를 찾아본다면, 현대인들의 불안 심리, 권력으로의 집착과 의존성이 주는 회의감, 허상적 희망 고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적 사고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탄탱고’는 교훈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절망을 이기고, 스스로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일깨우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능하거나 어리석은 것이 아닌 그들의 삶 자체가 무너짐으로 인해 빈곤해지면서 무언가로부터 희망을 붙들고 싶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소설 속에서 내포하고 있는 부분을 얘기하자면 이동이나 움직임은 있지만, 발전은 없고, 선택은 있지만, 책임은 없으며, 희망은 있지만 실질적 변화는 없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은 현대인들의 대부분의 삶과 많이 닮아 있는 모습들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다. 개인의 삶과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개인의 삶은 어떤 극적인 파국보다도 조용하게 무너진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을 멈추고 타인의 기만적 연설이나 설득에 기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개인에게 거창한 해답이나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으로부터 하나의 태도를 남기는 것은 아닐지, 쉽게 믿지 않고, 단순한 해답을 경계하며, 끝까지 스스로 생각하려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라는 얘기다. 개인의 삶과 선택은 결과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그 선택이 누구의 언어로 이루어졌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 해 본다.

 

 

 

인상적인 문장

사람들은 난로를 껴안고 앉아 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아. 날이 저물 때까지 창가에서 어정거리다가 그다음엔 먹고 마시고 솜털 이불 아래서 껴안고 잠이 들지. 이때쯤 사람들은 인생이 잘못되어 간다고 느껴.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을 때는 아이들이나 고양이를 때리면서 좀 더 견뎌내지. 그렇게들 사는 거야,

<사탄탱고-춤의 순서 ll : 4/천국의 비전인가, 환각인가>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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