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딪쳐 보는 것,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하는 것”

Review/읽은 것들에 대해서

황정은, '百(백)의 그림자' 재개발을 앞둔 도시의 전자상가 건물을 배경으로, 사라져 가는 공간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과 미세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

by kimdirector· 2026. 1. 19. 08:01
서울의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도시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철거를 앞둔 상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사라져 가는 공간과 그 안에 남은 기억, 관계, 그리고 개인의 불안과 고독을 조용한 문체로 포착한다.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 전개보다는, 일상의 미세한 감정과 말해지지 않는 마음에 집중하며, 개발과 변화 속에서 쉽게 지워지는 존재들의 그림자를 통해 현대 도시인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百(백)의 그림자

 

황정은

창비 · 2022.02.04 · 한국소설

 

2026.01.07 ~ 01.09 · 4시간 01분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처음 접하고 느꼈던 것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럴 것이 딱히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감정을 따라가면서 진행하는 이야기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일상 속의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조금의 연애담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변곡점 없이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조금은 특별함을 담아서 작가의 사색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용산에 있는 전자상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하고, 재개발 예정인 상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일을 하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뚜렷한 사건 전개 없이 재개발 상가라는 장소가 가지는 의미와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진행된다.

 

주요 인물은 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은교’와 ‘무재’가 중심인물이고, 상가에서 일하며 가까워져 연인으로 발전하는 관계이다. 그 외에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은교’는 소설 속의 중심 화자이자 관찰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둔 전자상가에서 일하며, 주변 사람들과 그다지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으며 지내고,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과 침묵, 공간의 변화를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절제된 정서를 가진 인물로 작가의 의도가 담신 인물로 보인다. 그리고 ‘무재’라는 인물은 은교와 연인관계로 등장하지만 뚜렷한 감정이나 관계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무재는 은교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계획은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는 사이이긴 하지만, 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관계처럼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의 발전 없이 단지 현재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신들의 처지를 알기에 한 발 더 앞서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발전적이지 못하고 머물고 있는 점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교와 무재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무재는 은교와 연인관계에 있는 것은 맞지만, 전통적으로의 의미의 친밀하거나 안정적인 연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보내지만, 감정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거나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관계는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든 느슨해질 수 있는 상태로 임시성 또는 불확실성과 맞닿고 있다고 불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연인 관계가 서사의 갈등이나 로맨스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은교에게 놓인 정서적 거리감과 존재 방식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 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도시와 공간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중심에 있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이 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특징적인 부분은 그림자가 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림자의 등장은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뜬금없는 등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뜻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떠난 여행에서 은교와 무재는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 장면이 소설의 초반에 등장한다.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은교와 무재는 자신들의 그림자가 일어나 스스로 움직이는 미스터리 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그림자는 이야기의 환상성을 부여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그림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실체로 기능하게 된다. ‘백의 그림자’는 은교와 무재의 이야기이지만, 철거되는 전자상가라는 삶의 터전에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는 전자상가 건물에 드리워진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미세한 거리감,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도시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존재들, 다시 말해서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삶을 그림자에 비유하면서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얘기하고 있는 주된 의미는 철거를 앞둔 상가 건물이라는 공간과 그림자에 부여된 의미를 얘기했지만, 우리의 삶이 지니는 의미를 상당히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확립된다라는 의미보다는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 속에서 드러내는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 속에서 배경이 되는 철거를 앞둔 상가건물은 사라질 공간이다. 상가건물은 정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삶이 놓은 조건을 그대로 투영된다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 사람들은 영구적이지 않은 자리에서 살아간다. 직업과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가진 역할들은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공간 안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 완성되기 전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이 분명한 공간이지만, 그 속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서사는 안정된 이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 속에서도 살아가는 삶이라는 행위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빛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 그림자이다. 결코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자에 비유되는 것들은 주목받지 않는 삶 그리고 기록되지 않는 감정, 말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관계에 의미가 있다고 불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주인공적인 서사를 갖지 못한다. 사화적 성취나 명확한 결말 없이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존재의 흔적이라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는 점을 소설 속에서 얘기한다.

 

“중심이 아니어도, 완전하지 않아도, 삶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이렇게 두 가지 요소인 철거를 앞둔 상가 건물과 그림자가 결합했을 때, 우리의 삶이 가지는 의미는 삶은 오래 남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기록되기 위해서만 존재되지 않는 점, 그리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하루는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벡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어떤 삶이 의미 있는가”라는 의미보다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의 그림자’는 삶의 의미를 성취적 삶, 성장하는 삶에 대한 지속적인 삶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곧 사라질지 모르는 자리에서 이름 없이 조용히 살아내는 시간 속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이 남기는 가장 주요한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닐까 되새김질해 본다.

 

“삶은 증명되지 않아도, 중심에 서 있지 않아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미를 갖고 있다”

 

어줍지 않은 의미를 갖다 붙여 보았다.

 

 

 

 

반응형

'Review > 읽은 것들에 대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아내의 죽음으로 닫혀 있던 까칠한 서점 주인이 책과 사랑을 통해 다시 삶과 사람과의 관계의 의미를 회복해 가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소설  (1) 2026.01.12
정해연, ‘홍학의 자리’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과 자기합리화가 어떻게 일상의 불안과 폭력을 사건으로 증폭시키는지를 그린 심리 스릴러  (0) 2026.01.05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거짓된 희망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끝없이 이어지며 파멸의 자리를 맴도는 과정을 그린 소설  (1) 2025.12.29
천선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사라진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이야기  (0) 2025.12.15
나쓰메 소세키, ‘마음’ 한 사람이 과거에 품은 죄책감과 고독에 짓눌려 자신의 삶을 고백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갈등과 어둠을 드러낸 작품  (1) 2025.12.08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 '허클베리 핀'을 완벽하게 재해석한 작품으로, 인종적 우월주의의 부조리를 묘사하고 가족과 자유를 찾는 여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작품  (0) 2025.12.01
천명관, ‘고래’ 거대한 꿈을 좇은 세 여자의 서사를 통해 파란만장한 삶의 몰락, 인간의 욕망에 얽힌 비극과 생의 순환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소설  (1) 2025.11.24
더글라스 케네디, ‘원더풀 랜드’ 가까운 미래의 미국은 분열된 두 체제 속에서 스파이로 투입된 요원의 가족과 자유, 감시와 선택,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갈등을 다룬 소설  (1) 2025.11.10